의지가 아닌 감정으로 습관을 만듭니다. 이완.
변하지 않는 건 그들인가 당신인가?
'아 정말 사람 안 변하지' 명절에 가족들을 만나면 자주 하던 생각이다. 다른 사람 말은 듣지 않고 자기 생각만 몇 번이고 반복하는 가족. 오래 살아서 고생만 시킨다며 빨리 자신이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가족. 자기 것만 티 나게 챙기면서도 아닌 척하는 가족. 어렸을 때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불만을 올해도 말하는 가족.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다들 느끼는 게 다르다. 내가 느낀 '저 사람 또 저러네' 하는 포인트를 다른 사람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반대로 나는 전혀 느끼지 못한 포인트에 '저 사람 참 안 변해' 느끼기도 했다. 문제는 그 사람에게 있을까, 그걸 본 사람에게 있을까? 사람은 변하지 않아라고 느껴지는 순간, 삶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근본적 문제를 찾고 싶다면, 가까운 사람과의 갈등을 돌아보라.
사고 싶은 차가 생기면, 도로에 그 차만 있는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딜 가도 아이의 목소리와 모습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차와 아이가 쉽게 의식되는 것도 필터링 덕분이다. 뇌는 오감을 통해 다양한 데이터를 얻지만, 그중 우리에게 필수적인 데이터만 필터링해 전달한다. 감정도 필터링된다. 지속해서 누군가의 행동이나 말이 거슬린다면, 그건 무의식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에 상처가 나면, 의식적 노력 없이도 회복한다. 하지만 상처의 아픔은 피하기 어렵다. 상처가 낫기 전까지 상처는 지속적으로 아프다. 회복 중이라도 상처를 건드리면 쓰라리게 아프다. 우리는 상처가 덧나지 않게 주의 깊게 보살핀다. 감정의 상처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불편한 감정을 술이나 재밌는 영상을 보며 회피한다. 상처가 난 감정도 덧나지 않기 위해서는 보살핌이 필요한데 계속 무시와 억눌림으로 일관한다. 무의식은 이 감정을 회복하길 원한다. 회복을 위해 불편한 감정을 필터링한다. 반복적으로 불편한 감정이 올라온다면 감정을 돌아보라는 신호다. 삶이 무기력하다면, 평소에 어떤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불편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가까운 가족, 연인과의 관계에서 있었던 갈등을 돌아보는 것이 좋다. 상황적인 문제와 원인에 주목하기보다는, 감정적 아픔에 집중해야 한다. 공을 누가 던졌는지 아는 것이 공에 난 상처를 회복시켜주지는 않는다. 상처의 아픔이 상처를 회복시켜 준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우리의 상처를 회복시켜 줄 수는 없다.
정신분석에 '투사'라는 개념이 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분노, 불안의 감정을 타인의 문제로 미루는 방어기제다.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잘못에 책임을 전가한다. 누군가의 폭력적인 말로 화가 났다면, 그 사람에게 사과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사과에도 분이 풀리지 않거나, 사과를 받지 못하는 상황일 때다. 조금 다른 예를 들어보자. 길을 걸어가다 날아오는 공에 맞아 살짝 피가 났다. 공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화가 나지만, 내 몸은 스스로 치료를 시작한다. 몸은 원인이 내게 있건 남에게 있건 가리지 않고 치료한다. 몸이 치료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가 의료의 도움을 받더라도, 최종적으로 세포를 잇고 회복하는 것은 몸이 해내야 한다. 마음의 상처도 같다. 다른 사람이 낸 상처에 사과를 받을 수 있지만, 그 상처를 회복하는 것은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다.
우린 나만 치료할 수 있는 상처를 치유해질 누군가를 찾고 있다.
멜라니 클라인은 '대상관계이론'에서 어린 시절 투사한 감정이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설명한다. 어릴 때 부모가 화를 자주 내서 상처를 받은 아이가 있다. 아이는 그 감정을 해결하지 못하고 부모의 문제로 책임을 전가했다. 그 아이는 커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한다. 이 사람이라면, 부모에게 받았던 상처를 치료해 줄 거라는 기대를 한다. 결혼 후 기대와 달리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충분히 치료되지 않으면 실망하게 된다. 배우자가 조금만 짜증을 내도 "왜 이렇게 나한테 화를 내" 하며 반응한다. 배우자가 큰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어렸을 때 부모가 화를 낼 때 받았던 상처가 다시 건드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의식은 상처를 치유할 힘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안다. 그래서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자신에게 그 상처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인지 판단한다.
결혼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지만, 감정은 결혼도 해결한다.
안드레 애거시는 전 세계 1위 테니스 선수였다. 자서전에서 그는 성장시기의 아픔을 고백했다. 애거시는 네 살 때부터 매일 강압적인 훈련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테니스 머신"처럼 다뤘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고, 세계적인 성공을 이뤘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았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불안과 자기혐오를 배우자에게 투영하며 관계에 문제를 일으켰다.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이혼으로 이어졌다. 이후 애거시는 내면에 집중했다. 심리 치료를 하며 자신의 감정과 과거의 상처에 직면했다. 이후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한 그는 두 번째 결혼을 했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가까운 사람의 행동과 말에서 '참 사람 변하지 않아' 생각이 난다면, 기회다. 지금 느껴지는 감정에 집중해 보자. 당신이 지금 놓치고 있는 중요한 감정은 무엇인가? 그 감정에 집중하고 받아들인다면, 당신의 삶에 지속적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원인에서 헤어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