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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블링 Apr 28. 2022

02 집수학? 엄빠표 수학? 그게 된다고?

내 도전을 자극했던, 우리 아진이 이야기

그 해 우리 반은 조용한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 구성원 자체의 성향이 그랬고, 담임 시간인 수학 시간은 유난히 더 그랬다. 응용문제를 제시하고 “풀어볼 사람?” 이라도 할라치면 그 고요함은 절정을 달렸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굳이 손들었다가 틀리면 더 혼날 것 같고, 공부 안한 티가 날 수도 있으니 가만히 있으면 반은 간다는 생각에서 그러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코미디 영화에서 ‘띠로리~’라는 배경 효과음이 나오면 딱 어울릴 법한 그런 시간. 담임의 인내심 게이지가 거의 다 차오를 때쯤, 벌떡 일어나는 아이 두 명이 있었다. 한 명은 반장. 그리고 한 명은 아진이다.

“오~~~역시 우리 반 에이스들이구만!”

아이들이 살았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든다. 어쩌다보니 이 두 명이 우리 반의 ‘학습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반장은 누가 봐도 모범생이고 아주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였다. 입을 댈 곳이 없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스타일 이었다. 담임쌤에 대한 의리로 일어나는 것인지, 그저 본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리 싹싹하지 않은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생기면 항상 손을 들어 주었다. 

그리고, 아진이. 약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누구든 아진이를 처음 보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나’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첫인상과는 다르게 아진이는 보면 볼수록 진국인 아이였다. 아진이 어머니를 만나며 그 첫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진이 어머니는 ‘우리 아진이는 참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좋은 딸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참 좋게 들렸다. 사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담임과 상담할 때 자기 아이를 그렇게 칭찬하지 않으신다. 단점을 알려줘야 담임이 신경 쓸 것이라는 생각인 것 같기도 하고 겸손인 것 같기도 하다. 

아진이의 썩 좋지 않은 첫인상이 완전히 지워진 일은 이것이다. 아진이의 옆자리에는 주혜라는 아이가 앉아 있었는데 주혜는 힘든 환경에서 사는 아이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고 저녁은 기관에서 해결해야 했다. 할머니가 애지중지 키우고 계셨기 때문에 다행히 엇나가지는 않았지만 자신감이 다소 떨어지는 아이였다. 수학 시험 성적은 거의 0점에 가깝게 받고 있었다.

수학시간마다 짝끼리 멘토링을 하는 방법으로 복습을 시키고 있던 중이었다. 아진이의 태도가 눈길을 끌었다. 단순히 주혜에게 문제 풀이만 알려 주는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가며 개념 설명부터 찬찬히 해주고 있었고, 문제를 풀어보게 한 뒤에 잘 못 풀면 구박을 하기도 했다. 착하거나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도 아닌데, 묘하게 ‘마음을 다해서’ 가르쳐 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자리가 바뀌었다. 주혜와 교실 대각선 끝에 앉게 되어서도 아진이는 수학시간이면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주혜를 찾아갔다. 

“너 이거 이해했어?” “아니.헤헤”

“이리 와 봐. 이건 말이야~.. 어쩌고 저쩌고.. 이제 풀어봐”

“......”

“아니, 다시 봐봐~ 이해가 안 되면 이걸 여기다 넣어봐봐. 답이 나오지? 신기하지? 이제 거꾸로 생각해봐. 이게 그래서 그런 거야”

아진이와 주혜의 멘토링은 일년 내내 이어졌다. 주혜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 아이였는데,아진이에게 과외받다시피 공부를 하다 보니 수학만큼은 성적이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그 수학 성적 덕분에 특성화고 중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취업이 잘 되는 과로 골라갈 수 있었다. 아진이는 주혜의 수학 성적이 오른 것이 자신의 챙김 덕분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축하해 줄 뿐 생색을 내거나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신기했다. 중학생이 어떻게 그런 태도를 가질 수 있지? 원래 친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자기 시간을 내어가며 열심히 가르쳐주는게 가능한 건가. 사실 상위권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에게 공부가르쳐 주는 것을 익숙해 한다. 아마도 학교 생활에서 그런 역할을 요구받아왔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냥 가르쳐 주는 아이는 많이 보았지만 아진이는 정말 정성을 다해 가르치는 것이 보여서 더 궁금했던 것 같다.

수학만큼은 항상 95점 이상인 아진이에게 초등시절 공부를 어따ᅠ갛게 해 왔는지 물어보았다. 아진이는 학원을 다니지 않는 대신 아버지와 함께 초등 때부터 공부해 왔다고 했다. 그제서야 머릿속 퍼즐이 맞춰졌다. 아진이가 주혜에게 그렇게 정성껏 공부를 가르치고 챙긴 태도는 아버지의 그것을 알게 모르게 배워서 가지게 된 것이었다.


최고의 학습은 다른 사람을 가르칠 때 일어난다. 완벽하고 꼼꼼하게 알지 못하면 설명을 할 수 없다. 그래서 항상 수업을 많이 해봤자 선생님만 똑똑해 진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의도한 것인지 우연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진이는 아버지에게 배운 태도로 수학시간마다 다른 아이들을 도우면서 공부해 왔고, 그래서 자신도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진이를 보면서 궁금한 것이 한 가지가 더 생겼다. 

현행 위주로 집에서만 공부한 아이가 과연 고등학교에 가서도 계속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까? 학원의 스파르타식 공부를 하지 않아도 상위권이 될 수 있을까?      

아진이가 졸업식을 치르고 난 4월의 어느 날, 톡이 왔다. 아진이였다. 

“선생님!!! 저 첫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 했어요~!!” 

전율이 느껴졌다. 아, 되는구나!     


아진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학교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중학교에 종종 찾아왔다. 햄버거도 사주고, 팥빙수도 사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진이는 중학교까지 선행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학교 진도는 누구보다 꼼꼼하게 공부했다고 했다. 그런데 선행을 하지 않은 상태로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고 보니 다른 아이들이 출발선에서 이미 한참 앞서 있는 것이 보여 불안했고 공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뒤쳐져서 불안한만큼 열심히 하다보니 성적이 올랐고,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것이었다. 그 결과는 다시 자신감을 만들어 주었고, 자신감을 바탕으로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진이는 그 다음 모의고사에서도 수학 100점을 받았다고, 전교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꾸준히 연락을 해 왔다.     

아진이를 보고 나니 학교의 ‘상위권 집 공부파’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엄마와 집에서 공부한다는, 옆 친구에게 수학 노트 쓰는 법을 알려주던 민재가 과학고에 합격한 소식, 바이올린을 잘 켜는 집공부파 모범생 은영이가 바로 옆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고 있다는 소식, 엄마랑 집에서 영화보며 영어공부한다는 은지가 서울의 00외고에 합격한 소식 등, 사교육을 받고, 선행학습에 돈을 쏟아 부어야 고등학교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님을 확신하게 되자, 나는 그 때부터 우리 집 초등학생을 좀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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