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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블링 Aug 29. 2022

04 엄마표 영어의 부작용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는 법.

한국인 이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을 영어 울렁증은 토종 한국인인 내게도 당연히 있다. 

학교에서 원어민 선생님과 단 한번도 눈을 마주친 적이 없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어쩔 수 없이 휴게실에 원어민과 단둘만 남겨진 상황에서도 “Good morning”하는 그 분에게 “헤.. 헬로우”만 간신히 던지고 나오는 것이 내 영어 스피킹의 한계였고, 머릿속에 맴도는 “와짭(What’s up)”을 뱉지 못함은 늘 내 마음속의 응어리(?)였다. 수학교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이후에도 ‘주토피아’ 영화의 영어대본을 백 번이상 쉐도잉 할 정도의 애착을 가지며 영어공부를 지속해 왔지만 영어는 항상 내 입밖으로 나와주지 않는 정복하지 못하는 대상이었다. 


그런 내게 '노출을 해 주는 것이 전부'라는 엄마표 영어라는 것은 대단히 매력적인 것이었다. 

8세까지도 영어 노출을 전혀 하지 않다가 9세부터 영어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 조기 유학까지 가게 되었다는 간증은 특히나 더.


모든 한국어 영상을 끊고 영어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애들 아빠는 아이들에게서 ‘헬로카봇’을 보는 기쁨을 뺏는다며 반대했지만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책도 읽혀야 한다는데, 어쩌지?"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 어딘가에서 질문했더니 ‘파리책’이랑 ‘코끼리책’만 일 년 읽혔더니 입이 터졌다 라는 ‘감동적인’ 대답을 듣게 되었다. 그 두 시리즈만 자기 전에 한 권씩 읽어 주었다. 


아이들은 영어 영상에 푹 빠졌고, 자기 전에 누워서 영상에 나왔던 대화를 쭈~욱 외워서 읊어 주거나 코끼리와 돼지의 대화를 자기들끼리 나누는, 내 기준 엄청난 아웃풋을 보여주었다.  

   

노력 대비 결과가 좋은 걸 보니 욕심이 생겼다. 

방학 때 기본 자음 파닉스만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어리버리 하더니 좀 지나자 더듬더듬 책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정말 허접하기 짝이 없는 엄마표 영어였지만, 과정이 간단했던 덕에 잘 유지할 수 있었고, ‘엄마는 영어를 참 좋아해!’라는 메시지를 넣어주는 것은 성공할 수 있었다. 아이는 엄마가 좋아한다는 영어를 좋아하게 되었고, 더 읽으려 했고, 말하려 했다. 물론 지금도 문법에 맞지 않는 말을 내뱉기도 하고, 내키는대로 글자를 쓰기도 하지만 영어 영상을 즐기고 거부감이 없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는 법. 

내 기준의 작은 성공으로 상당한 자신감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내 노력만으로 아이를 잘 만들어갈 수 있다는 이상한 신념 또한 가지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내 전공인 수학은 그냥 날로 먹을 수도 있겠다는 근거 있는 자신감.


그 때는 정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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