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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용 Jan 10. 2024

피난가도 될듯~~

서진이의 선물

학년말은 이래저래 분주하다. 그 중 교실 정리정돈에 정성을 들여야한다. 새학년이 되면 새로운 주인(교사,학생)의 보금자리가 될 터이니, 완벽한 청소는 필수다. 아이들은 책상 서랍과 사물함을 깨끗이 비워야하고, 교사는 모든 학습준비물과 개인 물품을 치운다.


 사물함과 서럽장을 뺀 뒷면은 가관이다. 이마저도 아이들과 함께 힘을 합쳐야 가능하다. 하나,둘,셋 기합에 맞춰 사물함과 서랍장을 드러낸다. 지난 1년간의 잔해가 그대로 남아있다. 오매불망 찾던 학용품부터 훨훨 날리다 자취도 없이 사라졌던 비행기 등등. 수북히 쌓여있는 먼지 가득한 물건을 꺼내는 것도 아이들에겐 추억 소환을 제공한다. 재활용 분리수거가 몸에 벤 나는 그 와중에 수모형과 블럭과 레고를 죄다 분리해서 원박스에 넣어준다. 청소기 돌리는 것보다 이 분리가 더 시간이 걸린다. 


 더욱이 올해는 나에게 마지막 교실이었기에 청소에 만전을 가한다. 내 교직을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말끔히 정갈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맘이다. 며칠에 걸쳐 청소를 하면서 그동안 버리고 비웠건만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가지고 다니던 물품들을 이젠 다 정리할 작정이다. 플라스틱 정리힘은 재활용장으로 내려가려고 칠판 밑에 차곡차곡 쌓았다. 그것들을 눈여겨 보는 아이가 있었으니, 바로 서진이다. 


서진이는 센스가 있고 자발적이며 소위 솔선수범하는 아이다. 교사가 문틀의 먼지를 청소기로 치우고 있으면 어디선가 빗자루를 들고와 빨리지 않는 먼지를 몰아주는 그런 아이다. 쓸만한 학용품 등은 아이들이 그동안 열심히 모은 칭찬 갯수로 경매를 진행하여 소진했다. 재미와 스릴이 있어 예전부터 쓰는 남은 학습준비물 처리 방법이다. 이거?  물건을 들고 물으면, 여기저기 여러 명이 손을 든다. 그럼 시작은 10개가 아니라 50개, 그래도 응찰하는 사람이 많으면 100으로 시작하기도 한다. 우수수 손을 내리며 실망하는 아이들이 생긴다. 그러게 평상시에 밥도 잘먹고, 청소도 열심히 하고, 대답도 잘했어야지...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해 준다.


며칠에 걸쳐 경매가 진행되면서 인기가 있는 물건은 거의 정리가 되었다. 이제 버릴까? 그러긴 좀 아까운데? 하는 물건만 남았다. 아이들도 시들하다. 그럴 땐 '나눔'이다. 이건 무료야.. 필요한 사람? 공짜는 애나 어른이나 우선 솔깃하다. 우루루 손을 들고 앞으로 뛰어 나온다. 행동이 빠른 아이 차지가 되기도 한다. 서진이는 매번 빠르다. 체력도 순발력도 좋은 아이다. 앞자리에 앉기도 했다. 가져갈 일이 걱정돼 튼튼한 천가방을 챙겨줄 정도로 많은 물건을 겟했다. 거기엔 12칸짜리 다용도정리함도 있었다. 이건 사용한 년수도 길고, 투명했던 외장이 흐릿해져 낡은감이 많아 재활용장으로 갈 운명이었다. 몇 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진이는 굳이 그걸 가져가겠단다. 들고 가는 것도 쉽지 않아 보여 노끈으로 칭칭 동여매줬다. 혹시라도 엄마가 왜 이런걸? 하며 싫어하시면 바로 버리라고 세네번 당부를 했다.


1월 5일, 종업식 날이자 6학년 졸업식 날이다. 아이들 하교 시간에 맞춰 복도에 서진이 어머니가 와 계신다. 누나가 오늘 졸업이라 겸사겸사 들르셨다며 그간의 고마움을 서로 인사로 나눴다. 그러면서 엊그제 가져간 정리함 얘길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진이가 그걸 가져와서 하나하나 정성껏 닦고 자기 물건을 정리했다고 한다. 순간, 서진이의 진지한 모습이 떠오르며 전율과 함께 감동이 온다. 어머니도 고맙다고 하신다.


서진이는 종업식 날 아침, 쇼핑백 한 가득 선물을 가져왔다. 대강 훓어봐도 온갖 것들이 들어있다. 

 "선생님 피난 가도 되겠는데?" 였는지 " 선생님 피난 가라고?" 였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거의 구호물품에 가까운 선물을 받은 나의 소감이었다. 그것 또한 어머니께 물으니, 처음엔 더 많이 챙겼었단다. 자기가 선생님 물건 많이 받았으니까 챙겨드려야한다면서....^^ 집에 있는 펜트리에 작정하고 들어간 모양이다. 그 날, 학교에서부터 집에 와서까지 5명에게 서진이 얘기를 했다. 한 번 한 얘긴 스스로 시들해져서 생생하게 전하지 못하는 편인데, 이번엔 아니었다. 하면 할수록 서진이의 마음이 전해지며 고맙고 또 고마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한마디는 ' 선생님은 글을 길게 쓰는 걸 좋아하니까...'하면서 편지지 한장을 가득 채운 것이다. 평상시 공부시간에 내가 서진이에게 늘 하던 말이 ' 더 길게, 더 자세히'였었다. 서진이의 편지를 보니 글쓰기는 제대로 가르친 것 같다. 그것도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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