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으로 첫 날
33년의 교사생활을 명예퇴직으로 마무리하였다.
1월,2월은 늘 그랬듯 겨울방학으로 지냈다. 다만 다음 학년도의 학년반이나 다른 학교로 전근에 대한 이야기가 멀리서 메아리처럼 아스라이 들릴 뿐, 다른 년도의 1.2월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2월 19일, 학교에서 송별회 형식으로 퇴임식을 치를 때까지도 내 신분의 어색함은 없었다. 학교에서 3명이 함께 퇴직을 하면서 우린 혼자가 아니라 기쁨도 3배가 되었다. 아쉬움이나 서움함이 들어선 자리도 여유도 없었다. 미리 입을 맞춰 소감은 1분 이내로 준비하자고 했다. 막상 말을 잇다보니 1분도 무척 길었다. 난 딱 3문장이면 되겠다 싶었다.
명예퇴직 신청을 하기로 마음먹은 지난해부터 간간히 나의 교직 마침에 대한 소회를 떠올려 보곤 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과 낯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것은 '감사'였다. 주도면밀하지 못하고 지극히 감성적인 나의 성향으로 꼼꼼하고 차분해야 하는 교사 생활은 좌절과 억지스러움이 종종 있었다. 나의 퍼스널 칼라와 너무나 동떨어진 색상의 어색하고 큼직한 옷을 걸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종종 들었었다. 그러나, 천성이 긍정적이고 수용적인(그냥 그렇게 착하게 사는 게 좋은 것이다는 신념으로) 나는 조직에 부합되는 모나지 않는 나로 조금씩 비뀌긴 했다. 그러면서 삶의 재미도 뚝 떨어지긴 했다.
감사하게도 나는 그토록 바라던 자유인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젯밤은 쉬 잠들지 못했다. 역사적인 날이니 기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얼해야 할까? 무얼해야 뿌듯하고 잊을 수 없을까. 별반 떠오르는 이벤트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선택지가 별 거 없구나. 고작 늦잠자기, 낮에 등산하기, 찜질방가기, 집에서 뒹굴기...또 뭐가 있을까. 누군가를 만나거나 어딜 가는 것은 생각 만으로도 에너지가 빨린다. 요즘은 자꾸 I(아이)로 바뀌는 게 확실한 거 같다. 하루종일 집에서 말 한마디 없이 지내도 전혀 심심하거나 외롭거나 지루하지가 않다. 자발적 고독감의 진면목을 알아버린걸까.
우선, 늦잠부터 자려고 했다. 정각 9시에 의식없이 잠들어 있기.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았다. 어제 뒤치락거리느라 새벽에 잠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기상버튼은 영락없이 6시에 작동되었다. 다시 잠들려고 노력해봤지만 그럴수록 더 말똥거리는 정신을 이불 속으로 끄집어 들어가기는 역부족이다. 에구, 내 몸이 더 잘 아는구나. 새 학년이 시작하는 3월 첫날이라고~ 그 어느때보다 정신 바짝 차리고 긴장하게 만들어버린다. 난 오늘 만날 아이들이 없는데도 말이다.
민간인, 자유인으로서 첫 날.
난 뭐가 그리 불안한지 이날의 내게 소속을 만들어주고 싶었나보다. 쭉 머리로만 구상하던 일을 명함으로 만들었다. 카톡 프사에 명함을 업로드하면서 왠지 모를 안정감이 들었다. 늘 자유를 꿈꿨지만, 진정한 날개를 갖지 못했다. 아직은 내가 들어가 있을 울타리가 있어야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