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에 심리검사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논문도 쓰지 않고 대학원을 졸업할 정도로 체계적이고 통계에 입각한 수학적 느낌 물씬 풍기는 글 자체를 두려워하는지라 연구나 개발은 나와 먼 이야기였다. 그러나, 무한정 주어진 물리적 시간을 우선 뭐든지 꿰 넣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기회가 되는대로 지원을 하고 끼어들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심리검사개발 프로젝트다.
같은 조에 배정된 샘과 톡으로 의견을 주고 받다 그 샘이 묻는다.
" 혹시, 브런치에 글 쓰시나요?'
난, 브런치에 활발히 글을 올리는 사람이 아닌지라 화들짝 놀란다.
"네....자주는 아니지만, 이제부턴 매일 한 편씩 올리려고요." 말끝을 흐리며 묻지도 않은 나만의 계획을 드러낸다. 그 샘도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작가였다. 내 이름이 평범하지 않은 터라 혹시? 하며 물었나보다.
그 샘이 내 글을 읽었다는 말 한마디에 순간적으로 여러가지 생각이 밀려들었다. 나를 들킨 것 같은 당혹감도 있었지만,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에서 나와 먼 네이밍인(그러나 희망하는)'작가'로 인식되며 누군가에게 다가갔다는 설렘이 훨씬 컸다. 그러면서 무작정 감사했다. 어떤 평을 하지 않았지만 내 글을 읽어줬다는 그 사실만으로 그저 감사했다. 그러면서 또 한 번 나를 만난다. 인정받기 좋아하는 나....바뀐 게 있다면 예전엔 아닌 척하면서 속으로만 부글부글 속을 끓이며 인정받고자 필사의 시나리오를 써댔다면, 이제는 가끔 민망할 정도로 내 스스로 드러내놓고 나를 홍보하고 있다는 것....그렇게 되기까지 전제 조건이 있다. 절대로 내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더라도 실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욕망을 내려 놓고나니 쉽게 나를 드러내며 봐 주기를 바랄 수 있다. 어떤 피드백을 주든, 무응답이라도 개의치 않는 것이 먼저다.
줌회의에서 조목조목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두 번 정도 봤지만 어떤 사람인지 몰라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중이었다. 그러다 오늘, 그 샘의 브런치 글 딱 하나를 읽으며 아~~ 그렇구나.하면서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틀릴 수도 있지만 어느정도 그 샘의 성향이나 결이 전해졌다. 그 샘은 단단하고 똑부러지며 공과 사의 구별이 확실한 사람 같았다. 내가 갖추지 못해 자괴감의 원인이 되는 부분인지라 더 쉽게 동물적으로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브런치는 수정과 퇴고 없이 날 것 그대로 올리는 공간이라 나를 온전히 드러내게 된다. 좋고 나쁨이 아닌 이렇고 저렇다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하게 한다. 그래서 부담없이 끄적일 수 있는 놀이터다. 이게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