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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용 May 27. 2024

마이 디어 프렌즈, 다시보기

나이 들면 너그러워지는가.

언젠가 다시 볼 인생 드라마가 몇 편 있다.

구씨를 통해 나의 이상형을 발견한 드라마-나의 해방일지,

영원히 그리워 할 배우가 생긴 드라마-나의 아저씨,

역사 시간에도 활용 가능한 웰메이드 서사시-미스터 선샤인,

나이 들수록 두고두고 다르게 다가올 움직이는 이야기-마이 디어 프렌즈.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 컨텐츠는 거의 요리, 집, 수경재배, 성경 말씀 등이다.

무슨 알고리즘인지 어느날부터 '마이 디어 프렌즈' 쇼츠가 자꾸 떴다. 영화를 무척 좋아하지만 두번 보는 것은 심사숙고가 필요한 호기심 지향적 자극추구형 인간인 나에게 다시보기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짧은 영상에서도 눈물샘이 자극되는 어의없는 반복된 상황에 어쩔 수 없었다.

 

특별한 주인공이 없는 구성이 이야기를 다채롭게 빛내는 드라마였다. 그 중, 2016년의 나는 박완(고현정)에게 꽂혔었다. 이뻐서, 상대역이 조인성이어서, 많은 이모들에게 딸 이상의 사랑을 넘치게 받는게 부러워서였다. 그런데도 그 때 나의 한 줄 평은 ' 고현정, 너무 이쁘고 연기도 잘하는데, 머리 좀 묶지. 드라마 몰입에 방해되었음'이었다. 다분히 여자다운 질투 ㅋㅋㅋ였던 것 같다.


 2024년, 그 때로부터 8살 나이가 많아진 지금의 나에게 절절하게 다가온 것은 관계였다. 바로 박완과 장난희, 엄마와 딸의 성장 스토리다. 가슴 속에 감춰두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 엄마에 의해 죽을 뻔한(죽음을 의식하였으나 엄마를 거스를 수 없었던 딸의 순종) 상처를 드러내며 악다구를 쏟아내는 박완의 절절한 외침이 참 아팠고 대견했다. 자질구레하고 맥락 없는 일상성이 아닌 기승전결 구성에 입각한 드라마인지라 그들의 말과 행동이 그지없이 적절하고 부지런하며 구차함과 지루함없이 빠르게 전환되었지만,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다시 보면서 깜짝 놀란 건 ' 어? 고현정의 머리가 하나도 거스르지 않네?'였다. 수시로 머리를 묶을 것처럼 뒤로 쓸어내리지만 풀어 헤치고 있어도 전혀 답답하지 않았다. 그저 다 그 장면에 최선이었고 어울려 보였다. 내가 그사이 너그러워진건가?


요즘 들어 생긴 버릇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재생속도를 1배속으로 보지 못하고 자꾸 빠르게 빠르게 설정한다. 자막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성질이 급해져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마이 디어 프렌즈'를 다시보면서 딱 한 사람(키도 연기도 너무 과해서?)이 나오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철저히 정상적으로 시청했다. 16회를 언제 다 본담~ 했는데 며칠만에 순삭이다. 


늙은 모습이 싫다며 사진 찍기를 거부하다가 나중에 홀로 와서 사진을 찍은 희자 이모가 한 말,

"오늘 지금 이 순간이 자신들에게 가장 젊은 한 때' 

맞다. 나이들어가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은 드물지만, 은근 젊음을 잃어가는 나를 마주하는 순간이 늘어간다. 거스를 수 없는 무력감 대신, 지금의 젊음을 맘껏 알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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