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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노 Jan 16. 2022

죽은 화분에 꽂힌 영양제




죽은 화분에 꽂힌 영양제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마트 행사에서 뜻하지 않게 받아 온 작은 화분은 꽃 한 송이를 피우고 저물더니 새빨간 방울토마토를 맺었다.
식물의 열매를 맺어본 게 처음이었다.
 내 삶이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가 있을 만큼 완벽하진 않았기에, 매일 아침 집 밖 햇빛이 잘 드는 한 켠에 가져다 놓는 수고를 해야 했지만, 수고스럽게 느끼진  않았다.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해도 충분히 기특했다.



 비가 멈추지 않는 며칠이 지나고, 잎 끝이 노랗게 바래기 시작했다.
 나는 마트에서 스파게티 면과 비스크로제 크림, 양파 세 알, 깐 마늘 한 봉지, 크랜베리 주스를 고르며 원예 코너에 있던 식물 영양제 한 박스도 카트에 실었다.
 양파 껍질을 까고 냄비에 물을 담고 면을 삶았다. 양은 1인분이면 충분했다. 장바구니에서 박스를 꺼내어 뜯고 초록색 물이 담긴 영양제 한 병을 꺼내어 화분에 꽂아 두었다.
다음 날, 한 병이 모두 비워져 있었다. 빈병을 뽑고 새로 꽂아 주었다. 그렇게 네 병을 갈았다.
 하지만 조금씩 회복해가던 잎은, 얼마 전 사흘 연속 비가 내린 날 이후 결국 회복하지 못했다.



 이제 새벽은 어두웠고 커튼이 달려있지 않은 부엌 창으로 차가운 외풍이 들어왔다.  그 앞에 손을 꼭 쥐고 죽은 바싹 마른 미라처럼, 모든 잎이 말려들어간 죽은 화분이 놓여 있었다. 화분엔 생기 넘치는 초록색 영양제 반 병이 그대로 꽂혀 있었지만 어제나 오늘이나 양은 전혀 줄지 않았다.
나는 그제서야 그것이 살아있었음을 적나라하게 실감한다. 햇볕에 반짝이던 잎도, 시린 바람에 붉게 달아오른 아기 뺨처럼 붉은 토마토 방울을 볼 때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어디선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물을 빨아들이고 영양제를 흡수하며 살고자 소리 없이 이루어진 행위와 노력들이, 더 이상 회복하지 못하고 생명을 잃어 바스러지고 난 후에야, 나는 그것들이 얼마나 치열했던가를 처절히 깨닫는다.   



하지만 이제 그런 노력은 끝이 났다. 남은 반 병은 여전히 그대로일 뿐이다.
서글퍼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편안해 보이기도 했다. 마른 잎 들은 박물관에 전시된 옛날 유물처럼 기묘한 생명력을 하나 꽂은 채로 전시되어 있다.
 나는 한참을 울었다. 애초에 식물을 잘 기르는 편이 못되어서 물을 주는 것을 잊어버려 죽이기도 하고, 어쩔 땐 물을 너무 많이 주어 죽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화분은 애달팠다. 그것이 얼마나 살고자 했는지 느껴져서일 거다.



 어쩌면 나는 한 번 정도 화분에게, 힘내라고 말해주었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식물에게 힘내,라고 말하는 게 바보 같았다. 지금은 후회한다. 힘내라고 얘기해 주었더라면  어쩌면  힘을 내어 남은 반 병의 영양제를 빨아들이고 생명을 찾았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한 번 바보처럼 보이는 게 무슨 대수 인가 싶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혼자 치열했는가를 이제야 알게 되어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애정은 말라서 쩍쩍 갈라진다. 바싹 말라버린 것은 애정을 아무리 한 솥 붓는다 해도 쉽게 돌아오지 못한다.  한쪽의 애정은 고갈되고 남은 한쪽은 애정에 목이 탄다.


 
나는 한참을 울고 난 뒤에야 화분이 죽어서 슬픈 게 아닌 것을 깨달았다.
나는 사랑을 주지 못한 것을 슬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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