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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Jul 30. 2022

엄마는 도대체 왜 같은 말을 계속할까?

같은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올해로 만 83세가 되신 친정 엄마가 한 달간 밴쿠버를 방문하셨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나라 간 왕래를 못했다가 규제가 풀리자마자 비행기를 예약하셨다.  

그 연세에 혼자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넘게 날아오시는 것 자체가 어메이징 한 일이지만 엄마한테는 별로 어려울 것 없는 익숙한 일이다.  워낙에 평화로운 밴쿠버를 좋아해서 거의 일 년에 한 번씩은 오셨었는데 이번에는 세계적으로 퍼진 이놈의 전염병 때문에 진짜 오래 기다리신 것이다.  


 한국에 계신 엄마와 전화 통화는 매주 한 시간도 넘게 했었지만 오랜만에 실물을 뵈니 많이 변하긴 했다.  우선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빠졌고, 틀니는 바꿀 때가 됐는지 거무스름하게 색이 많이 변해있었다.  깨끗하고 매너 좋은 멋쟁이 할머니라 자부하는 엄마가 음식 먹을 때 이렇게 쩝쩝거리는 소리가 많이 나는지 또 한 번 놀랐다. 가끔씩 얘기할 때 음식물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예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금 더 이기적이고 조금 더 고약해지셨다.


이렇게 변해가는 본인 모습이 엄마는 얼마나 속상할까.  나도 30년 후엔 이런 모습일까 싶어 정말 서글프다.  하지만 이런 짠함도 잠시.  남편과 단둘이 자유롭게 생활하다가 갑자기 엄마와 24시간 함께 하며 생활을 하려니 나의 참을성에 스멀스멀 한계가 온다.  엄마의 잔소리 에너지는 나이를 먹어도 약해지지 않는다.  그동안은 늘 웃으며 받아주던 나도 이제 50이 넘으며 내 자아가 불쑥불쑥 올라온다.


잔소리가 없을 때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이야기


얼마나 현명하고 센스 있게 잘 살아왔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는지

얼마나 남들보다 열심히 자식들을 잘 키웠는지

얼마나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하는지

얼마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춤도 잘 추고 활발하고 재미있는 사람인지

얼마나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지

얼마나 몸 관리 식단 관리를 잘하는지

얼마나 옷을 잘 입고 대담한 액세서리를 잘 맞춰서 하는지

얼마나 다리가 긴지, 그래서 길이가 맞는 바지를 한국에서 사기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주위에 잘살고 성공한 친구들이 많은지

얼마나 잘살고 성공한 친구들이 거꾸로 본인을 부러워하는지

얼마나 재테크를 잘했는지

얼마나 일찍부터 주식을 시작한 신여성으로서 주목을 받았는지

얼마나 현명하게 외국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그들이 본인을 좋아했는지

얼마나 내조를 잘해서 아빠 사업을 클 수 있게 만들었는지

얼마나 여행을 똑똑하게 잘 계획하고 다녔는지, 그래서 아빠가 얼마나 편했는지

얼마나 동네 이웃들이 친절하게 잘해주고 어른 대접을 해주고 챙겨주는지

얼마나 스크린 영어 공부 클래스 선생님과 학생들한테 지금까지도 인기가 있는지


아...  나열하다 보니 끝이 없다.


분명히 대부분은 사실이다.  좀 과장이 많긴 해도 사실은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이야기 듣기가 힘들고 피곤한 것일까?   너무 많이 되풀이돼서?  물론 그것도 있다.  아무리 좋은 얘기도 두 번 이상하면 잔소리라 하지 않았던가.  너무 스스로 본인 자랑만 해서 거북한 것인가?   

물론 연세 드신 분들의 특징이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하는 거라 이해하고 듣고 넘기기를 반복했으나 나도 한계에 도달해서 애꿎은 남편한테 짜증을 쏟아내게 된다.




며칠 전 저녁 식사 시간에 와인 한잔을 곁들이며 건배를 했다.  별생각 없이 "이 모든 것에 감사한다"라고 했는데 갑자기 엄마 눈에 눈물이 핑 고이는 것을 봤다.  이게 울 일이 아닌데 왜 그러지?  엄마도 많이 약해졌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도대체  이렇게 자랑을 반복하는지를.  본인이 얼마나  살아왔는지, 그래도 나름 성공한 인생을 살았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확인받고 싶은 것이라는 것을.  딸들이 알아주지 않는  같으니 계속 얘기하는 것이다.  인생  살아왔다는 것을 스스로라도 확인하고 위안받고 싶은 것이다.  그동안의 모든 것이 고맙다는 말이 엄마의 지난 수고를 조금이라도 알아준 것 같아 눈물이 났나보다.  나도 그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나 있는 열등감이 우리 엄마한테도 분명 있다.  어릴 때부터 거슬러 올라가 보면 사연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어렸을 때 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셨고 친구들 다 갔던 대학을 가지 못했다.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그 당시 할아버지가 지인들 정치 자금 대주시느라 재산을 탕진하셨었다고 들었다.  그때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어떻게든 대학을 보냈을 거지만 엄마가 안 계시니 아무도 챙겨주질 않았다고 하셨었다.  평생 이런 열등감을 이기기 위해 남들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살아온 것은 사실이다.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울 엄마가 당당하게 이 세상과 맞짱 뜨기 위해선 강한 사람이 돼야만 했던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또 막상 일상에서 엄마를 대하면 또 힘들다.  나도 참 못됐다.

웃으며 받아주던 얘기들이 너무나 듣기 싫고 참을성이 없어지는 것을 보면 나도 엄마처럼 늙어가는 것이다.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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