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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타르트 Apr 27. 2023

시절인연

나는 여름에 한번, 겨울에 두 번 괌을 찾았다.          


마치 우리에겐 이름이 하나뿐이듯, 

괌은 하나의 계절만 가지고 있어서 사계절을 사는 내가 어느 계절에 괌을 만나도 늘 여름이었다.                    

괌은 미국 땅이라기엔 어딘가 동남아를 닮아 정겨웠다. 

그곳은 사계절이 없다는 이유로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휴양하러 떠날 수 있는 고마운 곳이었다.                    

관광할만한 곳이 별로 없고 종일 무더운 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뻔한 물놀이가 다였지만 나는 매번 그 뻔한 물놀이가 그리워서 괌에 갔다.                     

지금 내가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곳에선 언제든 내가 물놀이를 할 수 있는 평화롭고 뜨거운 여름이 머무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괌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늘 편안하고 만만하기까지 했다.     

그리워했던 그 모습 그대로일 것을 아는 마음에 불안함이라곤 없었다.     

              

괌의 여름에 유독 마음을 빼앗겼던 나는 언제나 뜨거운 그 태양 아래서 이따금 서운한 맘이 들곤 했다.     

나를 둘러싼 크고작은 인연들은 왜 괌의 계절처럼 항상 그자리에 머물러주지 못하는지.  

        



시절마다 내게는 죽고 못 살 것같은 인연들이 있었다.     

때로는 연인이었고 때로는 친구였고 때로는 그냥 지인이기도 했다.                    

그들은 나의 한 시절을 크게 행복하게 만들어주고는 점점 멀어지거나 아주 떠나 버렸다.         



분명 어느 한 시절 가장 크게 함께 웃었다가도 시간이 흘러보니 어느새 어색 해져버린 인연을 마주하는 것은 아침 일찍 눈을 뜨는 일만큼이나 익숙해지지 않았다.     

내가 변한 것인지 그들이 변한 것인지 세월의 장난인지 알 수 없었다.        

            

소중했던 인연이 흘러가게 내버려 둘 수 없었던 나는 어떻게든 과거의 추억을 붙잡아 현재와 미래에 덕지덕지 붙여보았지만, 그럴수록 너덜너덜해질 뿐이었다.      


멀어지는 인연을 불안이라 여기며 더욱 애써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던 어느 시간 속에서 문득 나를 깨운 단어가 있었다.                   

           


시절 인연                         


     

내게는 그 시절에 맞는 인연들이 오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인연은 하나의 계절이 아닌 사계절처럼 변해가는 것임을 받아들이자, 

미련처럼 붙들고 있었던 사람들을 비로소 놓아줄 수 있게 되었다.          

놓아주는것이 생기니, 다음 시절에 새로이 다가올 인연이 기다려지기도 하였다.                    


항상 머물러있는 것은 어쩌면 괌의 한 계절이면 충분할지 모른다.     

살다가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그리워지면 그땐 짐을 챙겨 괌으로 떠나면 그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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