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일기
표지 사진 : Photo by. @JOFRAU
스위스는 아직도 장마다. 스위스에도 한국처럼 장마시즌이 있는지 몰랐는데 이 정도면 솔직히 장마라고 해도 될 것 같다. 6월 말 7월에 접어들면서 작년보다 비가 좀 자주 오네 했었는데 8월이 시작되는 오늘까지도 비가 내렸다. 작년에 비해 많이 짓궂어진 비는 갑자기 굵어지기도 하고 폭풍우를 만들어냈다가 우박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다시 잦아들었다가 다시 몰아치기도 했다. 그런 짓궂은 날씨는 오늘도 계속되었다. 다행히 우박은 없었지만.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실제로 친한 친구 중 한 명은 비가 오면 날씨가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해가 반짝 뜨는 날을 더 좋아한다. 구름 한 점 없고 햇살이 따뜻한 그런 날씨. 그래서인지 요즘 날씨에 적응하기가 꽤 힘들다. 춥다. 한국은 지금 폭염이라는데 폭염을 2년째 겪지 않고 있는 것도 다행인가 싶지만 그래도 한 편으로는 한국의 여름이 그립기도 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찌는 듯한 더위 자체가 그립기보다는 그런 더위에 먹을 수 있는 시원한 빙수 한 그릇, 그게 그리운 거 같다. 여기는 아직도 초봄이거나 어느새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는 듯 선선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으니까. 작년 스위스의 여름은 꽤 더웠는데 그래서 물놀이도 자주 갔었는데 올해는 언제 수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비가 오는 날에는 당연하지만 우산을 챙겨 외출한다. 그런데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만 우산 쓰고 있는 건가?'
주변을 유심히 돌아보면 정말 나만 우산을 쓰고 있을 때가 많다. 분명 비가 오는데, 우산을 써야 할 정도의 비라고 생각이 드는데 나만 우산을 쓴 채 우산 없는 사람들과 횡당보도를 건너고 있다. 그럴 때마다 누가 봐도 이방인의 모습이겠다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런 모습은 이곳 사람들 뿐만 아니라 유럽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인 것 같다. 웬만한 비에는 우산을 쓰지 않는 모습. 후드 티나 후드 집업을 입고 있다면 후드를 뒤집어쓰면 그만이고, 모자를 쓰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고, 후드도 모자도 없다면 그냥 비를 맞고 걸어 다니고 어떻게 보면 그런 모습들이 꽤 자유로워 보이기도 한다. 굳이 우산을 쓰지 않고 그저 내리는 비는 비일 뿐 옷이 젖으면 젖는 것이고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하는 그런 마인드가 느껴졌달까, 그리고 그게 좀 매력적이었달까. 비를 싫어해서 옷이나 가방이 비에 젖을까 봐 우산을 꼼꼼히 받쳐 들고 있는 나의 모습과 비교가 되었다.
오늘도 비가 많이 왔지만 카페테라스는 오픈되어 있었다. 파라솔이 있으니까. 비록 테이블에 비가 좀 쳐들어오지만. 그럼에도 테라스에 앉은 사람들은 개의치 않아 보였고 테이블은 그들만의 즐거운 수다로 가득했다. 나는 테라스에 앉아 있다가 빗줄기가 굶어져 자리를 옮겼는데 나처럼 자리를 옮기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 모습이 조금은 신기하게 조금은 특이하게 느껴졌다. 또 조금은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고.
비가 오는 날이 해가 반짝하는 날 보다 싫은 이유는 옷이나 가방이 젖으니까 그러면 찝찝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생각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젖으면 안 되나? 말리면 되지.'
이곳 비 소식은 아직 진행 중이고 언제 다시 해가 반짝 뜰지 모르니까 언제 뜰지 모르는 해를 기다리기보다 비가 와도 비는 비 일뿐, 젖으면 젖는 거고, 말리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비 오는 날을 즐겨야겠다.
우산 아래 나직했던 속삭임 가슴 한 켠에 퍼져 네가 들려
오늘 하루 내 안부를 묻듯이 편안한 빗소리
아련히 물든 기억 너란 빗속에
Rain
Dreaming in the rain
태연, Rain 가사 중
2021.08. 스위스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