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일기
나
브라이덜 샤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받게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늘 드레스 코드는 화이트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평소에 친구들과 드레스 코드 같은 거 맞춰서 입고 다닌 적이 없는데 처음에는 무슨 일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내 알게 되었다. 조금은 서툴고 또 조금은 어색한 친구들의 메시지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 사이에 서로 모른 척하기는 너무 오글거리고 그래서 평소처럼 그렇게 만났다. 나만 하얀색 옷을 입고.
무슨 날인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면서도 간 그곳에서 예상치 못했던 감정이 불쑥 터져 나왔다. 오글거리지만 친구들의 손길 하나하나가 고스란히 느껴졌달까.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리고 그걸 또 모른 척하고 지나갈 친구들이 아니지. 놀릴 사진 찍느라 바쁜 친구들은 그렇게 나를 달랬다. 울다가 웃다가 너무 재밌고 행복했다. 너무 고마웠다.
너
스위스는 오전 10시, 한국은 오후 6시부터. 드레스 코드는 하얀색!
반가운 메시지를 받았다. 벌써부터 재밌고, 눈물 흘릴 친구가 기대되었고 또 같이 놀릴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노트북을 꺼내 세팅을 하고 하얀색 옷으로 맞춰 입고 연락을 기다렸다. 화면 속 솔드 아웃, 그러니까 곧 신부가 될 내 친구는 너무 예뻤다. 결혼식 당일도 아니고 심지어 본식 드레스도 아니었는데 하얀 원피스를 입은 친구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나를 포함해 우리는 곧 신부가 될 친구에게 아낌없이 축하를 건넸다. 왠지 모르지만 모두 엄청 들뜬상태로.
비록 나는 화면 속으로 친구들을 만났지만 그래서 많이 아쉬웠지만 진심으로 마음만큼은 같이 옆에서 축하하고 있다고 전해지길 바랐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그 마음을 말하기도 전에 친구들은 내 얼굴, 그러니까 핸드폰을 이리저리 들고 다니며 같이 사진을 찍었다. 순간 AI가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나중에는 어지러우니까 천천히 움직여달라고 까지 말했다. 그걸 또 순순히 받아들일 친구들이 아니지. 핸드폰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서로 웃고 말았다. 나는 행복한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장면 장면마다 연신 화면을 캡처하며 내 친구의 결혼을 축하했다.
축하해. 울지 말고. 행복하자.
우리
브라이덜 샤워 두 번 받은 사람 손!
친구가 결혼 전에 우리 집에 와서 하루 자고 가라고 제대로 놀자고 연락을 했다. 나는 아주 흔쾌히 친구 집으로 향했고, 나를 데리러 나온 친구의 차 안에서 핑크색 풍선을 발견했다.
“아 진짜 왜 뒷좌석을 열어? 앞에 타!!!”
당황해서 소리치는 친구의 목소리에 나는 너무 웃겨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웃었다.
“지금 들킨 거지?”
그렇게 우리 둘의 브라이덜 샤워는 시작되었다. 친구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차 안에서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고, 친구는 화를 내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목소리와 표정으로 한숨만 쉬었다. 집 앞에 도착하자 나보고 굳이 먼저 들어가라며 짐은 자기가 내리겠다고 떠미는 간절한 친구 손 때문에 우리는 한바탕 또 웃었다. 먼저 들어간 방 안에는 풍선이 가득했다. 바쁜 와중에 이걸 혼자 불어서 채워놓았을 친구 모습에 감동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미처 완성시키지 못한 BRIDAL SHOWER 알파벳을 보고 또 한 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대망의 클라이맥스.
"옥상에서 할 건데...... 이거 마저 불어서 가지고 와."
이왕 들킨 거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친구 모습이 너무 웃기고, 귀엽고, 재밌었다. 나는 내 브라이덜 샤워 아니냐고 내가 불어서 가지고 가서 붙여야 되는 거냐고 확인 차 다시 물었다.
친구는 단호박이었고 그 단호함 앞에 나는 더 이상 웃을 힘도 없었기에 자리에 또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친구가 시킨 대로 열심히 풍선을 불어서 옥상으로 가지고 올라갔고 벽에 하나씩 붙였다. 풍선은 또 얼마나 많은지. 굉장히 신박한 브라이덜 샤워였다. 재밌었다. 행복했다.
우리들
조금은 서툴고 또 조금은 어색했던 우리들의 모습이 지금은 더없이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서로의 진심 어린 축하와 축복이 가득했기 때문은 아닐까. 함께 웃을 수 있고 함께 울 수 있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건 정말 큰 행복이고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쁨은 나눌수록 배가 된다는 그 말을 이렇게 또 확인하게 된다.
결혼을 앞둔 친구가 지금보다 더 행복했으면 좋겠고, 함께 축하를 하며 배꼽 빠지게 웃고 또 울었던 친구들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고, 그런 좋은 친구들의 축하를 받았던 나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자, 그래서 다음은 누구?
스위스 일기(2022.02)
Photo by. 그라치아 GRAZIA (JOFRAU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