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의 이름, <날씨의 아이>의 기도, 그리고 메세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계속해서 다뤄왔던 자연재해, 재난으로 인한 사회의 상처를 위로하려는 염원은 <스즈메의 문단속>에 이르러 유종의 미를 거뒀다. 재난이 나타나기 전에 장소에 머무르고 있는 추억을 떠올려 목소리를 듣는 장면은, <너의 이름은>의 이름을 기억하려는 행위, <날씨의 아이>에서 끝내 기도를 이어가는 것과 이어져 과거를 잊지 않겠다는 강한 집념이 느껴진다. 로드무비의 형식을 빌려 사회 전역에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대담함과 오프닝에서부터 말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해내는 명료함은 이전 작품보다 뛰어났다. 결국,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분명하게 내일을 건넸다.
<스즈메의 문단속>이 전작보다 뛰어난 것은 서사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이 메시지에 도달함으로써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가 이어져 3부작의 형태를 완성했다. 그만큼 <스즈메의 문단속>은 강한 메시지를 드러내고 완결짓기 위해 재난이라는 소재의 특성을 그 어떤 전작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설정이 존재한다. 영화의 오프닝부터 '미미즈'가 나타날 때 스즈메와 소타(또는 소타의 할아버지)를 제외한 인물들은 미미즈를 목격하지 못한다. 반면에 미미즈는 분명 등장인물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생애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미미즈가 왜 나타나는지에 대한 것은 속설 혹은 전설만이 내려져 올 뿐 명확한 맥락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재해의 이미지는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에서부터 이어져 왔다.
<너의 이름은>에서는 혜성의 우연한 분리로 마을이 사라졌고, 운명적인 인연으로 미츠하를 만난 타키의 기억에서도 마을은 점점 기억에서 사라져간다. <날씨의 아이>에서는 도쿄에 오랫동안 비가 멈추지 않고 있으며 히나에 의해 잠시나마 맑은 날을 얻을 수 있었지만, 어떤 명확한 이유도 없이 다시 비가 내리고 도쿄가 물에 잠기며 끝이 난다.
<스즈메의 문단속>이 개봉한 후 '미미즈의 정체', '여정을 나서는 주인공의 맹목적인 움직임'의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평들이 일부 존재했다. 그러나 재해에는 맥락이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따졌을 때 수적인 계산이 존재할 뿐 그 너머의 원리는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이 세상을 이루는 거대한 규칙의 굴레이다. 즉, 그 세상 위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에게 재난은 불가피한 것이며 개인의 힘으로는 절대 저항할 수 없다.
그간 작품들의 결말에서 재난에 대한 비가역성이 더욱 선명하다. 타키와 미츠하는 무스비라는 인연의 힘으로 혜성의 충돌로부터 많은 사람을 구해냈지만 결국 마을은 사라졌고, 히나는 잠시나마 주변인들에게 행복을 전했지만 도쿄는 물에 잠겼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도 다르지 않다. 결국 스즈메와 소타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지만, 미미즈 자체를 멈추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들의 염원은 더욱 애절하게 느껴진다.
소타가 외치는 해당 대사야말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재난 3부작에서 등장인물들에 투영하고 싶었던 태도이다. 오랜 역사 동안 지진이 끊이지 않았지만, 매번 재난이 올 때마다 인간의 힘은 미약했고 저항은 무의미해 보였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그 재난을 멈출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다만 재난의 일상성을 전면에서 받아들이면서 이를 피하지 못한 사람들의 흔적을 잊지 않겠다는 것이다.
스즈메가 우연히 만난 소타를 따라 마주한 장소에서 또 다른 소중한 인연을 만난다. 그리고 각각의 폐허에는 한때 누군가에게 소중했던 기억이 자리하고 있다. 그 기억을 더듬으며 귀를 기울이고 마침내 장소를 돌려드린다는 겸허한 말과 함께 문을 닫는다. 해당 시퀀스는 이제는 마주칠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을 추모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마주해야 할 우리와 함께했던 이들의 슬픔이다. 영화의 끝에 다다랐을 때 스즈메는 과거의 폐허를 헤매는 자신을 손을 건네고 미래를 위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며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간절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 애니메이션의 성취이자 문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