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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Jun 13. 2023

2. 아, 나간다고!

긴장감이 감도는 와중에도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은 반가웠다. 몇 년 만에 먹는 내 입맛에 딱 맞는 한식인가! 어느 날은 엄마가 수제비를 만들어 줬다. 어느 때처럼 연신 맛있다 맛있다 하며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내가 식사를 끝낸 후 수제비를 맛본 엄마가 너 이런 걸 어떻게 다 먹었냐고 하더라. 반죽도 잘 안 됐고, 간도 이상하다며 말이다. 나는 그제야 '좀 그런가?' 했다. "그래도 맛있던데!" 엄마가 해 준 음식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싹싹 긁어먹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새끼가 가엽기도 하고 잘 먹는 모습이 기특했을 것이다. 나름 평화가 유지되던 시절이었다. 


긴장과 평화가 반복되었다. 영원한 평화는 없다. 평화와 전쟁은 찰진 수제비 반죽처럼 찰떡인 관계다. 우리의 평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내가 돌아오고 두 달 후 그야말로 전쟁처럼 싸웠다. 누구와 누구의 싸움이 아니라 모두와 모두의 싸움이었다. 각자의 불만에 과거 얘기들까지 화산처럼 터져 나와 걷잡을 수 없이 싸움이 번졌다. 오전 7시에 시작된 싸움은 점심시간이 가까워져서야 끝났지만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긴 후였다.("이럴 거면 왜 집에 돌아왔니?" -"어차피 잠깐 살고 나가려고 했어! 내가 여기 살고 싶어서 사는 줄 알아?") 그 뒤로 우리 집엔 평화가 모두 걷히고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각자 마음을 정돈하며, 싸울 일을 만들지 말자는 결심을 한 거 같았다. 


그 싸움 이후 나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집에 있으면 싸운 날의 기억이 계속 재생되고, 왠지 2차전이 시작될까 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백수가 되어 쉬는 걸 좀 만끽하고 싶었는데, 집에 있으면 직장에 있을 때만큼이나 심정이 복잡했다. 그래서 취미로 시작한 수영에 열과 성을 다하기 시작했고, 수영 끝나고 점심을 먹은 후에는 간단히 가방을 챙기고 바로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은 언제나 믿을 수 있는 도피처이다. 혼란한 마음을 일기에 모두 써 내려가고, 잡히는 책들을 줄줄 읽고 도서관에서 저녁 시간을 맞이했다. 밖에서 간단히 사 먹거나 집에서 혼자 이른 저녁 식사를 했다. 씻고 나서는 침대에 누워 무드등을 켜고 조용히 밤을 즐기다 잠들었다. 잠들기 전에는 바로 다음 달에 어디로든 거처를 옮기겠다는 결심을 하고 말이다. 


처음 떠나는 집도 아니고, 내가 어서 오길 바라는 친구들이 있는 도시로 가는 건데 생각보다 추진력이 생기지 않았다. 며칠 발품 팔아 집을 구하고 거의 1년에 한 번씩 했던 이사를 하면 한 번 더 하면 되는 건데 말이다. 스스로가 답답하고 여전히 집에 오래 있기 싫었지만, 동생이 썼던 침대와 옷장, 알람이 필요 없는 부모님의 기상 시간, 놓치면 최소 30분을 기다려야 하는 버스에 나는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나가려고 하면 할수록 시골에서 느낀 편안함과 여유가 날 잡아 세웠다. 아, 그리고 얇아진 지갑도 한몫을 했다. 


그렇게 나는 시골 캥거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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