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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Oct 30. 2023

5. 내가 운전을?(2)

빨간 아반떼는 내 마음에 풀악셀로 들어왔다. 14년식이었지만, 십만 킬로도 채 타지 않았고, 실내 금연 오케이. 사고 이력도 거슬리지 않은 정도였다. 게다가 내가 사고 싶었던 준중형에 합리적인 가격까지! 학창 시절에 동방신기 팬으로 오래 살아온 이력이 있어 그런가, 빨간색이 그때의 열정과 순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 차가 내 마음으로 돌진한 게 아니었다. 내가 차로 돌진하고 있었다.


[링크] 언니 이 차 어때요?

-네가 빨간색을? 옷도 빨강은 안 입자나?


모두의 반대에 부딪혔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 모두 이 차와 나의 만남을 불발시키기 위해 강하게든 유하게든 만류했다. 초반엔 빨간색이 뭐 어때~ 난 괜찮아!라고 받아쳤지만, 물어보는 족족 좋은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아반떼와의 불장난을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빨간 아반떼는 내 마음에 강렬하게 남아 이따금 도로 위에서 마주치면 아련하게 바라보곤 한다.)  


운전 연수를 받은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벌벌 떨며 받았던 연수는 유쾌하게 끝났지만, '돈만 있으면 일단 사겠지!' 했던 차 구입은 지난하게 이어졌다. 감염병의 시기를 거치며 크게 오른 중고차 값은 자꾸 나를 좌절시켰다. 그래도 연수까지 받았고, 이미 차를 타고 다닐 몸이 되었는데(?) 안 살 수 없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나와 동생은 준중형을 포기하고 경차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2주 후, 마침내 자동차 등록소로 향할 수 있었다.


2년 전 맥북을 구입할 때 갱신되었던 '인생 최고 소비액'은 중고 경차 구입으로 또다시 갱신되었다. 운전 연수, 보험료 납부, 자동차 등록, 자동차 값 송금까지 하면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이 기록이 깨지지 않을 것 같다. 바디프로필을 찍기라도 할 건지 훅 줄어버린 통장잔고를 보니 속이 좀 쓰렸고, 차 타고 처음 집으로 오는 길에 '어? 이게 왜 이래? 왜 안 돼?'를 두 번이나 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흐뭇했다. 6월에 차를 사 2개월 동안 6시 30분에 시작하는 새벽 강습도 잘 다니고,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도서관에 가고,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친구 집도, 카페도 다녀왔다.


나 이러려고 돈 벌었구나. 내 차 꼬미와 함께 하는 시골 생활은 전보다 훨씬 넓고 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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