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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f Bong Oct 13. 2023

노력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추억_ 1 : 스무 시간의 노력

지난 학기의 첫 수업 실습 메뉴였다.


2학기도 벌써 중간을 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  새삼 이 메뉴가 생각나는 것은  내 노력이 다소 과했다는 내 스스로의 평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메뉴는 돼지 통삼겹살을 뼈를 제거하고, 통째로 수비드(Sous vide) 방식을 이용해 85도 온도에 10시간을 조리하고 다시 10시간을 냉장고에 넣어 무거운 것으로 눌러 모양을 잡아 주어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이 이 메뉴의 가장 중요한 조리과정인데 3시간 수업에 이 과정을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아쉽지만 이 부분만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카톡에 올려주고 미리 보게 하는 게 나름의 방법인데 학생들이 봤는지 확인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이 과정은 내가 다 하게 되는데 내가 실습을 하는 건지 실습을 준비하는 건지 애매한 상황이 되어 버린다. 출근하자마자 시작해서 10시간을 조리하고 조리가 끝나면 냉장고에 넣고 퇴근해서 다음날 확인해야 하는 전 과정을 말이다.

수비드 통삽겹살


그래도 다른 차원의 실습메뉴를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준비했다. 중간중간 온도는 일정하게 유지되는지 조리상태는 문제가 없는지 확인도 하면서 말이다.


다음날 통삼겹살이 모양이 제대로 잡힌 것을 확인하고 수업 전에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포션을 해서 넣어 놓았다. 학생들이 실습에서 수행하는 것은 그린머스터드소스를 만들고 비트피클, 칠리오일을 준비해서 포션 된 통삼겹살을 보기 좋게 시어링(Searing)해서 플레이팅 하면 끝.


나는 기대했다.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환성을 지르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20시간에 걸쳐 깔끔하게 포션 되어 있는 통삼겹살을 보면서 '와우' 정도는 해줄 줄 알았지. 그런데 미리 공유한 동영상은 봤는지 어느 누구도 질문하지 않고 영혼 없는 맑은 눈동자(?)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결국, 나 혼자 실습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열심히 20시간을........


어쨌든, 수업은 잘 끝났지만 내 노력에 비해 너무 아쉬운 수업 분위기였다.

내년에 내가 또 이 걸해야 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노력이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위로해 봤다. 분명 나는 내년에 또 혼자 하는 이 실습을 할 것이 분명하다.


항상 노력이 보상을 주지 않고 우리를 속일지라도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다.

그만큼 성장하는 것이고 경험하는 것이지 않을까?


분명 재밌었을 거야 이 녀석들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렇게 생각해 본다.(으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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