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_ 1 : 스무 시간의 노력
지난 학기의 첫 수업 실습 메뉴였다.
2학기도 벌써 중간을 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 새삼 이 메뉴가 생각나는 것은 내 노력이 다소 과했다는 내 스스로의 평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메뉴는 돼지 통삼겹살을 뼈를 제거하고, 통째로 수비드(Sous vide) 방식을 이용해 85도 온도에 10시간을 조리하고 다시 10시간을 냉장고에 넣어 무거운 것으로 눌러 모양을 잡아 주어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이 이 메뉴의 가장 중요한 조리과정인데 3시간 수업에 이 과정을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아쉽지만 이 부분만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카톡에 올려주고 미리 보게 하는 게 나름의 방법인데 학생들이 봤는지 확인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이 과정은 내가 다 하게 되는데 내가 실습을 하는 건지 실습을 준비하는 건지 애매한 상황이 되어 버린다. 출근하자마자 시작해서 10시간을 조리하고 조리가 끝나면 냉장고에 넣고 퇴근해서 다음날 확인해야 하는 전 과정을 말이다.
그래도 다른 차원의 실습메뉴를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준비했다. 중간중간 온도는 일정하게 유지되는지 조리상태는 문제가 없는지 확인도 하면서 말이다.
다음날 통삼겹살이 모양이 제대로 잡힌 것을 확인하고 수업 전에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포션을 해서 넣어 놓았다. 학생들이 실습에서 수행하는 것은 그린머스터드소스를 만들고 비트피클, 칠리오일을 준비해서 포션 된 통삼겹살을 보기 좋게 시어링(Searing)해서 플레이팅 하면 끝.
나는 기대했다.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환성을 지르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20시간에 걸쳐 깔끔하게 포션 되어 있는 통삼겹살을 보면서 '와우' 정도는 해줄 줄 알았지. 그런데 미리 공유한 동영상은 봤는지 어느 누구도 질문하지 않고 영혼 없는 맑은 눈동자(?)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결국, 나 혼자 실습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열심히 20시간을........
어쨌든, 수업은 잘 끝났지만 내 노력에 비해 너무 아쉬운 수업 분위기였다.
내년에 내가 또 이 걸해야 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노력이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위로해 봤다. 분명 나는 내년에 또 혼자 하는 이 실습을 할 것이 분명하다.
항상 노력이 보상을 주지 않고 우리를 속일지라도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다.
그만큼 성장하는 것이고 경험하는 것이지 않을까?
분명 재밌었을 거야 이 녀석들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렇게 생각해 본다.(으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