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20코스, 깊이 생각하면 뭐가 되나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by youlive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백수생활을 한지도 어느덧 1년이 다되어 간다. 나는 이때까지 무엇을 경험했고,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가. 생각해 보면 딱히 얻은 것은 없지만 발견한 것이 하나 있었다. 아직도 여전히 '방황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다. 예전 같으면 쓸데없는 생각과 행동을 한다면서 나에게 뺨을 때리면서 정신 차리라고 말한 후에 다시 사회생활한다고 사람들 무리 속에 억지로 들어가서 생활했을 것이다. 그것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꼭 그렇지도 않다. 어느덧 하루동안 일을 3~4시간만 하고 집에 돌아오면서 나에게 '오늘 하루도 잘 버텼다.'며 나를 토닥이고 있으니 말이다.



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기만 한다면 나 자신에 대한 '해답'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나는 깊이 생각할 뿐만 아니라 열심히 나에 대한 해답을 위해 행동과 실천을 계속했다. 어느 날은 나의 해답이 '내가 원하는 액수만큼의 돈을 벌기'였고, 어느 날은 나의 해답이 '인내심 있게 꾸준히 일하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었고, 어느 날은 '완벽하게 mbti에서 J로 살면서 시간 알차게 보내기'였고, 어느 날은 나의 해답이 '타인에 대한 무한한 친절을 베푸는 것'이었다. 이렇게만 행동하면 내 인생은 다시 한번 더 잘 살게 될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들이라고 믿었다. 나에게는 일단 동아줄들이 4개가 있었던 것이다. 이 중에 하나만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면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동아줄들은 1년도 지나지 않아서 금방 끊어져 버렸다. 동아줄을 하나씩 잡으면서 하루를 보낼 때마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지 하면서 나를 토닥였지만 일은 생각보다 쉽게 풀리지 않았다. 나는 겉으로는 멀쩡한 척하면서 웃고 있었지만 속은 '분노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 이 동아줄들이 나의 삶을 완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이 아니었던가? 썩은 동아줄이었던가. 시간이 지나면서 풀리지 않는 일들이 있었다.


꽤 모아질 줄 알았던 돈은 어느새 잘못된 투자로 많이 잃어져 있었고, 틈만 나면 직장을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 우울감과 쓸데없는 것에 에너지 소진 후에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생활이 길어졌으며, 나에게 무엇을 물어보는 타인에게는 무표정으로 불친절하게 대했다. 어느 날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놓아버리며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나는 완전함에 도달하고 싶을수록 너무나도 불완전한 자신을 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깊이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을 때, 최소한의 생활비만 벌면서 한 달에 한두 번씩 '해파랑길 걷기'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그냥 걸으면서 1코스씩 목표지점에 다다르는 것이었다.



처음에 이 해파랑길 걷는 것이 꽤 몸과 정신에 무리가 갔다. 보기보다 쉽지만은 않아서 '괜히 시작했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금방 포기도 하고 싶었다. 이유 없이 목적 없이 걷기만 계속하기 때문이다. 주변의 바다와 마을, 산과 하늘의 경치는 무한히 아름답지만 그것만의 아름다움만 느끼고는 싶지 않다. 나는 온전히 나 있는 그대로 만족하고 싶었다. 그렇게 얼마큼 시간이 흘렀을까. 1코스씩 겨우겨우 끝내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서 돌이켜볼 때 어느덧 벌써 20코스까지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2026년 2월 7일 토요일, 해파랑길 20코스가 시작되었다. 해파랑길 20코스, 길이 17.6km, 소요시간 약 6시간 30분, 난이도 보통이다. 하지만 후기로는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고 했는데 이번에 코스는 완전히 '산코스'이기 때문이다. 해파랑길이라고 해서 바닷길을 끼고 평지를 걷는 길을 상상하지만 실제로는 가끔씩 산을 올라야 하는 코스가 있다. 해파랑길 6코스와 8코스가 산코스였다. 하지만 그때는 길이 바다를 옆에 두고 걸을 수 있는 길이 없었기 때문에 이해가 되었는데, 이번에 해파랑길 20코스는 분명히 바다 옆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멀쩡하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산길로 가라고 표시를 해두었던 것이다.





나를 다시 돌이켜보면 나는 상당히 보수적인 데다가 고집이 있는 성격에 원리원칙을 따지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말을 할 때도 누군가가 듣기에는 '와... 솔직한데?' 할 정도로 말을 툭 내뱉을 때도 있다. 누가 이러한 성격을 좋아할까. 싫어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왜냐하면 나도 이런 성격이 싫기 때문이다. 그 점이 나 자신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애써 거부하고 어떻게든 나의 성격 중에 남들이 보기에 좋은 것만을 꺼내보려는 노력을 했지만 완전히 실패했을 때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본래 성격은 영원히 고쳐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도 나이가 30대 들면서부터는 가끔씩은 나의 FM 같은 성격을 버리는 경험도 한다. 특히 이 해파랑길 코스에서 말이다. 왜냐하면 이 여행은 온전히 내가 만드는 것이기에.



호기롭게 도전을 한 것이지만 해파랑길을 걷다 보면 건강이 한 번씩 고장 난 것처럼 몸의 컨디션이 좋지가 않다. 60대이신 엄마의 건강은 더 그렇다. 이미 19코스를 걸으면서 나는 그전부터 계속 아팠던 발목이 또 아프기 시작했고, 엄마께서는 무릎이 많이 아프신지 계속 절뚝거리시면서 걸으셨다. 19코스 끝, 숙소에서 나름 마사지도 하고 파스도 붙이고 약을 먹는 등 여러 가지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임시방편은 다 해보아도 소용은 없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30,000보 이상 오랫동안 걷다 보면 몸은 조금씩 무너진다. 그래서 이번에는 20코스를 7~8시간씩 걸릴 것 같은 산길이 아니라 2~3시간만 걸리는 바다와 함께하는 길로 우회해서 가보기로 했다. 이렇게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왜 굳이 산길을 가려고 하는가?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잔머리도 굴려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특히 내 인생을 생각할 때도.





역시 깊이 생각할수록 답은 나오지 않는다. 나는 어쩌면 다른 성격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없이 밝게 웃으면서 떠드는 사람을 유심히 관찰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의 속까지 알 수는 없지만 그저 '행복해 보이는'사람이었다. 나도 저렇게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 인생 한 번뿐인데 남들을 위해서도 살아보자. 나를 위해서 산다고? 웃기지 마. 나에게 가둬진 채 뭘 그렇게 고민하고, 신경 쓰고, 억지로 열심히 고집 있게 뭔가를 하면서 살까. 그냥 한없이 남처럼 웃으면서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삶도 그다지 나쁘지 않을 텐데. 그렇게 나도 한때 미소 짓거나 웃은 적이 있었다. 회사에서 영업실적을 위해서 밝게 웃으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생활을 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잘해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럴수록 훨씬 더 타인에게 잘해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행복감도 말이다. 이게 내가 살아가는 삶이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하지만 나의 인생은 여기서 다시 한번 더 꼬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어느 날부터 나는 표정이 어둡고 건강이 좋지 않게 되었다. 어딘가 계속 아프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웃었지만 집에 오면 늘 울었다. 타인이 싫었고 나도 싫었다. 한 번은 무서운 상상을 했다. 버스에 치여서 죽고 싶다거나, 누군가와 서로 머리 쥐어뜯으면서 몸싸움을 하고 싶었다. 이유는 몰랐다. 내 안에 이유 모를 불안감, 억울함, 그리고 금방 터져 나올 것 같은 울분은 내 가슴속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러고 나서 제일 친했던 사람에 대한 폭언을 했다.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버렸다. 사실은 나는 본래 친절한 사람은 아니었음을. 원래는 있는 그대로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야 살 수 있는 사람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얼른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1년을 더 버틴 끝에 회사를 나올 수 있었지만 그 뒤로도 직장을 1년도 못 채우고 여기저기로 다녀야만 했다. 1년 이상을 못 채운 것은 일이 힘들었다기보다는 '나의 감정을 나의 생각을 공유할만한 사람이 없어서'인 것이 가장 컸다.





나는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때 그 동료와 여전히 사이가 좋았더라면 회사를 나오지 않고 오래 일을 할 수 있었을까. 1년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버틸 수 있었을까. 답은 역시나 '모르겠다.'였다. 왜냐하면 나는 꽤 괜찮게 사람을 대하고 의사소통이 통할 때도 심리적인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내 안에는 천사보다는 악마의 마음이 더 작동을 한 것 같다. 그리고 이 악마의 마음이 작동되는 것은 현실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수록 남과 조금이라도 의견이 다르고, 각자의 의견을 좁히지 못할수록 더 그랬다. 나는 다시 고집을 부렸고, 원리원칙대로 행동하였고, 논리적으로 말했고, 보수적이었고, 끝도 없이 무뚝뚝했다.


다행인 점은 그런 성격이 해파랑길을 걸을 때는 때로는 좋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어쨌든 해파랑길을 걸으면 끝도 없이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에 나만의 고집을 있어야 한다. 웬만해서는 해가지기 전에는 숙소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원리원칙대로 시간에 맞추고 대중교통 타는 시간도 늦추지 않아야 일을 쉽게 진행할 수 있다. 해파랑길을 걸으려면 지루함을 엄청 견딜 수도 있어야 한다. 말도 별로 할 필요가 없는 여행이기에. 온전히 체력으로 승부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워낙 말이 없는데 해파랑길 다닐 때는 더욱더 그랬다. 이럴 때마다 묵직하게 한 길로 쭉 걷는 내가 답답해 보여도 때로는 부산에서 강원도까지 걸어가려는 내가 대견스럽기도 했다.





계속해서 똑같은 해변길로 쉴 새 없이 가고 있는 듯 하니 도착지점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느새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해파랑길 20코스는 영덕블루로드 3구간으로 강구항에서 시작하여 영덕해맞이공원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원래는 7~8시간이나 걸리는 산길코스이지만 나는 나와 엄마의 건강을 고려하여 우회해서 해변길로 걸었다. 드디어 집게발 조형물과 창포말등대가 보이면서 종점에 도착하기 20분 전에 오르막길이 나왔다. 여기 오르막길만 잘 오른다면 도착인 것이다.


어쨌든 내가 여기 경북 영덕까지 오게되다니.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뜨거운 감정이 복받쳤던 것일까. 이 여정에서 뜨거운 눈물과 함께 소리 질렀다.


자연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그들은 뭔가를 생각하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존재할 뿐인데도 무척이나 아름답다. 인간도 그러한가. 나도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사는 대로 살고 가는 대로 가도 괜찮을까? 이제 답을 어느 정도 내린다면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한 그래도 괜찮다고 본다. 더 이상 깊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끊는 습관을 들여보자. 그냥 생긴 대로 살아버리자. 해파랑길 20코스를 마무리하면서 나는 만족해하면서 웃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오늘은 마음껏 웃어 보이는 내 모습을 인지하는 게 예전보다는 훨씬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