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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자연 Jha Eon Haa Sep 02. 2024

동성 동반자에게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이 인정되다

2023두36800 보험료부과처분취소


    2024. 7. 18. 대법원에서 동성 동반자도 국민건강보험의 피부양자가 될 수 있다는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대법원은 동성 동반자라는 이유 만으로 국민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하는 위법한 차별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동성 동반자에게 국민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것과, 가족법상 배우자의 범위를 해석하는 문제는 다른 국면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동성 동반자에 대한 법적 지위를 처음으로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법원은 왜 동성 동반자에 대하여 국민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하였을까요? 일상에서 평등과 차별은 자주 쓰이는 개념인데, 우리나라 법은 평등과 차별을 어떻게 정의할까요?


1. 평등과 차별의 의미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헌법 제11조 제1항), 국가는 평등원칙에 따라 입법을 하고 법을 적용해야 합니다. 헌법상 평등원칙이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자의적으로 다르게 취급함을 금지하는 것으로서, 일체의 차별적 대우를 부정하는 형식적·절대적 평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차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실질적․상대적 평을 뜻합니다(대법원 2007. 10. 29. 선고 2005두14417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평등원칙은 행정기본법에서도 규정되어 있습니다. 모든 행정기관은 행정기본법에 따라 나라를 운영해야 하는데, 행정기본법 제9조는 “행정청은 합리적 이유 없이 국민을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합니다. 그래서 국민건강보험공단도 평등 원칙에 따라 국민의 건강보험 관련된 일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가 평등 원칙에 반해서 행정을 처리하면, 즉 국가가 국민을 차별대우하면, 그 처분은 위법한 것이 되고 소송을 통해 취소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처분이 평등한 것인지, 부당한 차별인지는 어떻게 판단할까요? 평등과 차별은 두 집단 간의 비교에서 나타나는 것인데, 우선 1)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다르게 대우했는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같게 대우했는지를 확정해야 하고(차별대우의 확인), 차별대우가 확인되면 2) 그 차별대우가 합리적이고 정당한 것이었는지 여부를 심사합니다(대법원 2019. 9. 9. 선고 2018두48298 판결, 헌법재판소 1996. 12. 26. 선고 96헌가18 결정, 2001. 11. 29. 선고 99헌마494 결정 등 취지 참조). 구체적으로 첫 번째 단계에서 두 집단이 특정되어야 하고, 그 집단들이 동일한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에서 합리성과 정당성을 판단할 때에는 헌법의 '과잉금지원칙(비례성 원칙)'이나 '자의금지원칙'이라는 기준을 통해 살펴봅니다.


2. 피부양자제도에서 차별대우가 있었는지 여부: 1) '이성의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 동반자' 집단이 본질적으로 동일한데, 2) 그 두 집단을 달리 취급하였는지 여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성의 사실혼 배우자에게는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지위를 인정하면서도, 동성 동반자에게는 그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이성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 동반자' 두 집단은 '이성'과 '동성(同性)'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사실혼과 같은 생활공동체 관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본질적으로 동질적이라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1) 동성 동반자는 직장가입자와 단순히 동거하는 관계를 뛰어넘어 동거 · 부양 · 협조 · 정조의무를 바탕으로 부부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인데, 사실혼 배우자도 직장가입자와 사이에 그러한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고, 2) 피고가 직장가입자의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그가 직장가입자의 인생의 동반자로서 생계를 함께하면서 공동생활을 영위하기 때문이고,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인우보증서를 제출하였기 때문인데, 동성 동반자도 인우보증서를 제출할 수 있으며, 3)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이유는 그가 '이성' 동반자이기 때문이 아니며, 동성 동반자도 '동반자' 관계를 형성한 직장가입자에게 주로 생계를 의존하여 스스로 보험료를 납부할 자력이 없는 경우 피부양자로 인정받을 필요가 있고, 그 요건도 달리 보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성 관계인 사실혼 배우자 집단에 대해서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고, 동성 관계인 동성결합 상대방 집단에 대해서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에 대하여 하는 차별대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이하 '이 사건 차별대우'라고 합니다.).


    한편, 대법원은 현행법이 동성 간 혼인 또는 사실혼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여, '동성 부부' 혹은 '동성 사실혼 배우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동성결합 상대방' 혹은 '동성 동반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3.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동성 동반자 집단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대우하여 헌법상 평등원칙을 위반하였는지 여부 O


    대법원은 이 사건 차별대우는 자의금지원칙에 따라 따져보았을 때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자의금지원칙에 따라 국가의 차별이 위법한 지를 판단할 때에는, 그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는지를 검토합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 차별대우가 동성 동반자를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여 헌법상 평등원칙을 위반하였다고 보았습니다.


    우선 피부양자제도의 본질에 입각하면 ‘동성 동반자’를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습니다. 직장가입자가 자신의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로 등록하기 위해서도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과 동일하게 실질적인 건강보험의 필요성이 인정되고 소득 및 재산요건에 부합해야 할 뿐 아니라, 인우보증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그리고 위와 같은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법령에 의하여 명시적으로 금지되지 않는 이상 피부양자로 인정되어야 하는데, 그럼에도 동성 동반자를 직장가입자와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부양자에서 배제하는 것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에 해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이러한 차별은 함께 생활하고 서로 부양하는 두 사람의 관계가 전통적인 가족법제가 아닌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인 건강보험의 피부양자제도에서조차도 인정받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행위이고, 그 침해의 정도도 중하다고 보았습니다.


    나아가 대법원은 동성 동반자를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에 준하여 피부양자로 인정한다고 하여 전통적인 의미의 혼인과 이에 기반한 가족제도를 해친다거나 법적 안정성 또는 제3자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도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 사건은 건강보험이라는 특수한 사회보장제도와 관련한 피부양자 인정에서의 형평성 유지에 관한 것으로, 건강보험제도와 피부양자제도의 취지, 목적 등을 떠나 생각할 수 없고, 다른 사회보장제도의 경우 각 제도의 취지, 목적 등에 비추어 별도로 판단할 문제입니다. 특히 대법원은 동성 동반자에 대해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에 준하여 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문제와, 민법 내지 가족법상 ‘배우자’의 범위를 해석·확정하는 문제는 충분히 다른 국면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대법원은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로 인정한다고 해서 피부양자의 숫자가 불합리하게 증가한다거나 건강보험의 재정건전성을 유의미하게 해친다고도 볼 수 없고, 특별히 고려하여야 할 공익도 상정하기 어려우며, 부모와 자녀 등 다른 가족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충돌할 염려도 없다고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대법원은 건강보험의 피부양자제도가 저출생, 가계구조의 다양성과 소득요건의 중요성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가족 결합의 변화하는 모습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 요구되고, 이를 토대로 건강보험제도가 국민의 삶의 질과 건강 수준을 향상하고 나아가 사회보험으로서 사회통합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설시하였습니다.


4. 우주에서 가장 사랑이 넘치는 부모님


    미국의 드라마 모던 패밀리를 아시나요? 이 드라마에는 우주에서 가장 사랑이 넘치는 부모님이 등장합니다. 바로 미첼과 캠이랍니다!


캠, 릴리, 그리고 미첼. 캠과 미첼은 릴리에게 사랑을 듬뿍 주는 귀여운 부부입니다.


    미국과는 다르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동성 법률혼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동성 부부에게 법률혼 배우자의 지위를 인정하는 것에는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하다 하더라도, 국민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자격마저 인정되지 않는다면 그분들은 최소한의 사회적 보호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특히 동성 동반자분들이 직장 가입자와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하여 서로 응원하며 삶을 살아간다면, 그리고 실질적으로 국민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자격이 인정되어 보호되어야 할 사정이 있다면, 동성 동반자 분들에게도 피부양자 자격이 마땅히 인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관련하여 진일보적인 방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 동반자 집단의 본질적 동질성을 판단할 때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제도의 취지를 고려한 것, 국민건강보험제도의 피부양자 자격에 대한 판단과 가족법상의 배우자는 다른 차원에서 판단할 수 있다는 입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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