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헌마468등
70년간 유지되었던 친족상도례 조항에 대하여 헌법불합지 결정이 선고되었습니다.
최근 연예인과 그 가족 간의 금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되기도 하였는데요,
해당 헌법재판소 결정은 우리 사회의 변화된 가족의 모습을 비춰줍니다.
그럼 친족상도례란 무엇이고, 해당 조항은 왜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 걸까요?
해당 헌법재판소 결정은 여러 안타까운 사건들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선 청구인 김○○은 지적장애 3급의 장애인으로, 삼촌 등을 준사기, 횡령 혐의로 고소하였습니다. 그러나 삼촌 등이 청구인과 함께 사는 친족으로서 형면제 사유가 있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청구인 장△△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부친을 대리하여 부친의 자녀들을 업무상횡령 혐의로 고소하였지만, 직계혈족으로서 형면제 사유가 있다는 이유로 공소권없음의 불기소처분을 받았습니다. 청구인 김□□은 새아버지를 횡령 혐의로 고소하였으나, 청구인의 동거친족으로서 형면제 사유가 있다는 이유로 공소권없음의 불기소처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청구인들은 형법 친족상도례 조항에 대하여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게 되었습니다.
친족상도례란 친족 간 재산범죄의 처벌과 소추조건에 관한 특례입니다. 여기서 '친족'이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소추조건이란 형사소송을 개시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입니다.
구체적으로 형법 제328조에 따라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의 권리행사방해죄는 그 형을 면제하게 됩니다. 그리고 형법 제328조는 강도죄와 손괴죄를 제외한 다른 모든 재산범죄(절도죄, 야간주거침입절도죄, 특수절도죄, 자동차등불법사용죄, 사기죄, 컴퓨터등사용사기죄, 준사기죄, 편의시설부정이용죄, 부당이득죄, 공갈죄, 특수공갈죄, (업무상) 횡령죄와 배임죄, 배임수증재죄, 점유이탈물횡령죄, 장물죄 등)에 준용되었습니다.
형법(2005. 3. 31. 법률 제7427호로 개정된 것)
제328조(친족간의 범행과 고소) ①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간의 제323조의 죄는 그 형을 면제한다.
마지막으로 형을 면제한다는 것은, 법리적으로는 유죄의 판결인데 다만 처벌만을 면제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검찰 실무상 법률에 따라 형이 면제되는 경우, 공소권없음의 불기소처분이 이루어집니다. 그 결과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친족 간의 재산범죄들은 대부분 불기소처분이 내려졌습니다.
형법의 친족상도례 조항은 헌법의 어떤 기본권과 관련되어 있을까요? 헌법재판소는 해당 조항이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다고 보았습니다. 친족상도례 규정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이 법관에게 적절한 형벌권을 행사해 줄 것을 청구할 수 없게 되고, 이는 곧 재판절차진술권의 침해라는 것입니다. 재판절차진술권은 헌법 제27조 제5항에 의해 보장됩니다.
헌법 제27조 ⑤형사피해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
재판절차진술권은 형사소추권을 검사에게 독점시키고 있는 현행 형사소송체계에서(기소독점주의), 형사피해자가 형사 사건에 관해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절차적 적정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기본권입니다(헌재 2003. 9. 25. 2002헌마533; 헌재 2011. 10. 25. 2010헌마243 참조). 또 법관이 형사재판을 할 때 피해자의 진술을 귀담아 들어 적절하고 공평한 재판을 하여야 한다는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 형사피해자에게 법관으로 하여금 적절한 형벌권을 행사할 것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헌법으로서 적극적으로 보장한다는 의미도 가집니다(헌재 1989. 4. 17. 88헌마3 참조).
특히 헌법 제27조 제5항의 보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즉 재판절차진술권의 구체적인 내용은 입법자들이 법률을 제정하면 비로소 정해지게 됩니다. 이렇듯 입법자들에게 재판절차진술권을 구체화할 수 있는 재량이 주어지고, 그것이 재량의 범위를 넘어 명백히 불합리한 경우에 비로소 위헌의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친족상도례 규정이, 재산범죄에서 일정한 친족관계를 요건으로 하여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하도록 규정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심판대상조항은 직계혈족이나 배우자에 대하여 실질적 유대나 동거 여부와 관계없이 적용되고, 또한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에 대하여 동거를 요건으로 적용되며, 그 각각의 배우자에 대하여도 적용됩니다. 이렇게 넓은 범위의 친족 간 관계의 특성은 일반화하기 어렵다고 보아야 하는데,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할 경우 때때로 형사피해자인 가족 구성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것이 되어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습니다.
또 친족상도례 규정은 강도죄와 손괴죄를 제외한 다른 모든 재산범죄에 준용됩니다. 이러한 재산범죄의 불법성이 일반적으로 경미하여 피해자가 수인 가능한 범주에 속한다거나, 피해의 회복 및 친족 간 관계의 복원이 용이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렵습니다. 특히 피해자가 독립하여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무처리능력이 결여된 경우에도 심판대상조항을 적용 내지 준용하는 것은, 가족 내에서 취약한 지위에 있는 구성원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습니다.
그런데 친족상도례 규정은 위와 같은 사정들을 전혀 고려하지 아니한 채 법관으로 하여금 형면제 판결을 선고하도록 획일적으로 규정하여, 거의 대부분의 사안에서는 기소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형사피해자는 재판절차에 참여할 기회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친족상도례의 규정을 두고 있는 대륙법계 국가들의 입법례를 살펴보더라도, 일률적으로 광범위한 친족의 재산범죄에 대해 필요적으로 형을 면제하거나 고소 유무에 관계없이 형사소추할 수 없도록 한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특히 그 경우에도 대상 친족 및 재산범죄의 범위 등이 우리 형법이 규정한 것보다 훨씬 좁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헌법재판소는 친족상도례 규정이 심판대상조항은 형사피해자가 법관에게 적절한 형벌권을 행사하여 줄 것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입법재량을 명백히 일탈하여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것으로서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고, 적용 중지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였습니다.
70년 동안이나 유지되었던 친족상도례 조항이 헌법불합치로 판단되었습니다. 앞서 유류분 위헌 결정과 마찬가지로,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도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보여줍니다.
한편 제가 로스쿨에서 공부할 때, 재판절차진술권이 헌법이라는 최상위 법에 규정된 점이 조금 의아하였습니다. 재판절차진술권은 다른 헌법 조항들에 비해서 절차적이고 부수적인 내용으로 느껴졌고, 해당 내용을 형사소송법으로도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재판절차진술권의 의미를 잘 담은 이번 결정을 읽으면서, 재판절차진술권을 다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