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가 이번 주 '이거 아나'에서 소개할 시사상식 용어는 '사도광산'입니다. 지난 25일 신문 1면에 실린 기사 제목을 좀 모아 볼까요. '굴욕 외교가 부른 파행' '무능한 한국 외교' '외교 무능만 확인' '정부의 안일함이 화 불렀다'. 다양한 언론사에서 한목소리로 한국 정부의 외교 실력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사도광산에서 비롯된 일본과의 정치적 갈등을 한국 정부가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사도광산은 일본 니가타현 북서쪽에 있는 제주도 절반 크기 사도섬에 자리합니다. 17세기 당시 세계 최대 금 생산지였죠. 일본은 태평양전쟁이 본격화한 이후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이곳을 이용했는데요. 일제 강점 말기인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인 약 1500명이 강제 동원돼 혹독한 환경 속에서 구리 철 아연 등 전쟁 물자를 채굴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강제 동원 역사가 있는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습니다. 강제 동원 역사를 외면하고자 유산 대상 기간을 에도시대(1603~1868년)로 한정했습니다. 조선인 강제 동원이 이뤄진 20세기를 기록에서 빼려는 꼼수였죠. 그러자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전체 역사를 반영하라"며 등재 보류를 권고합니다.
한국 정부는 지금껏 세계문화유산위원회 위원국으로서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에 반대표를 예고하며 일본 정부를 압박해 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태도를 바꿔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물 설치' '추도식 매년 개최' 등 강제 동원 역사를 숨기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유네스코 등재에 동의하기로 일본 정부와 합의합니다. 여기에 일본 정부도 동의했고, 지난 7월 사도광산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유네스코 등재는 세계문화유산위원회 21개 위원국이 모두 동의해야 가능합니다. 위원국인 한국이 반대하면 무산될 수밖에 없는데요. 한국이 끝까지 반대하면 '표 대결'로 등재를 결정하게 됩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이 표 대결을 강행해 아무런 외교적 수확도 얻지 못하느니, 차라리 강제 동원 전시 및 추도식 개최라는 조건을 걸고 합의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이죠.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마음가짐이 다르다는 말이 있죠. 일본 정부는 이 말에 꼭 들어맞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올해 열린 첫 번째 추도식은 시작 전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더니, 끝난 후에도 그 여파가 이어집니다.
일본은 사도광산 강제 동원 피해자 유족을 공식 초청하면서도 비용을 한국 정부가 부담하게끔 했습니다. 또 광산의 역사적 성과를 강조하고자 행사 이름에 '감사'라는 단어를 포함하려고 했지만, 한국 정부의 반대 때문에 '추도식'으로 명칭을 변경하기도 했죠. 행사 내용에서 강제 동원 노동자의 고통과 불법성을 인정하는 구체적 언급도 빠졌습니다. 여기에 더해 추도사 내용에서 강제 동원, 강제 징용 등의 표현이 빠지면서 한국 정부는 추도식에 불참하기로 합니다. 강제 동원 조선인 등 희생 노동자를 기리겠다며 마련된 추도식이었지만, 한국 측 불참 속에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했죠.
일본의 이런 태도는 처음이 아닙니다. 일본은 2015년 군함도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때도 강제 노역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정보센터 건립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정보센터는 군함도 근처가 아닌 도쿄에 설치됐고, 조선인 강제 노역에 대한 정보에 "조선인 차별은 없었다"는 내용을 기재했죠.
사도광산 역시 군함도와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죠.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또다시 뒤통수를 맞은 꼴입니다. '외교 참사'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