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은 역대 군사·독재정권이 권력 유지나 민심 억압용으로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들던 '전술'입니다. 군이 행정·사법권을 장악하니 보통 큰일이 아닙니다. 지난 3일 밤 비상계엄 발령 직후 계엄사령부가 내놓은 포고령(제1호)을 보면 그 위력을 알 수 있습니다. 몇 개만 살펴볼까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를 금한다.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포고령은 위 항목을 나열한 뒤 다음 문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상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9조(계엄사령관 특별조치권)에 의하여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
띄어쓰기라도 좀 고쳐서 인용할까 하다가 그냥 원문 그대로 옮겼습니다. '친일파 처단' '반동분자 처단' 등 표현에서나 보던 '처단'이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등장합니다. 비상계엄령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이 글 역시 '처단'의 대상이 될 겁니다.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수색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경험이나 학습으로 아는 독자 여러분이 많으실 겁니다.
이번 비상계엄은 45년 만에 발동됐습니다. 1979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10·26사건 이후 처음입니다. 같은 해 12·12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지나 1981년 1월 24일까지 유지했습니다. 어쨌든 20세기 이후 비상계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 무시무시한 사태가 '21세기 문명사회' 대한민국에서 현실이 되다니요.
안에서보다 밖에서 들여다보는 게 훨씬 객관적일 수 있습니다. 이번 비상계엄을 우리나라 밖 외신은 어떤 논조로 다뤘을까요. 미국 AP통신은 "윤석열 대통령의 놀라운 행보는 1980년대 이후 보지 못했던 권위주의 지도자 시대로의 복귀를 떠올리게 한다"고 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는 윤 대통령이 야당을 제압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의 선언은 많은 한국인을 분노케 했고 1980년대 후반 민주주의 전환 전 군사 통치 방식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냈다"고 평가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강력한 동맹 중 하나인 한국이 모범적이지 못한 민주주의 원칙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의 민주주의 전복과 파괴는 워싱턴에 어려운 딜레마를 안겨준다"고 전했습니다.
미국에 그치지 않습니다. 일본 NHK는 "평시에 군대를 동원했다는 것은 쿠데타나 다름없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영국 BBC는 "법적 권한 남용이자 정치적 오산… 민주주의 국가로서 한국의 평판을 더 훼손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윤 대통령이 정권을 살리려고 했지만, 자신의 몰락을 거의 확실하게 만들었다. 스스로 사임하지 않으면 국회가 탄핵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일간 가디언도 "처절한 도박으로 보인다"고 꼬집었습니다.
일부 나라는 한국을 '여행 위험 국가'로 분류했습니다. 대외 신뢰도는 추락하고 살얼음판 한국 경제는 '쇠망치'를 맞았습니다. 겨울밤 6시간짜리 정치 드라마가 빚은 결과입니다. 국민은 참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