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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산동 이자까야 Dec 10. 2024

2024년 12월 7일의 '기록'

기자. 한자로는 '기록할 기(記), 놈 자(者)'. 글자 그대로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하루하루 언론의 형태와 수가 다양하고 많아지는 디지털 시대에도 종이 신문은 여전히 '기록의 매체'로 불립니다. 좀 폼 재고 말하면 신문을 '역사의 기록자'라고도 하죠.

아시는 독자도 많겠지만, 1947년 9월 1일 창간한 국제신문은 1980년 11월 25일 신군부에 의해 강제 폐간됐습니다. 폐간호 1면 머리기사는 제목만 무려 4줄이었는데요. 옮기면 이렇습니다.


'이 신문이 마지막 국제신문입니다… 독자여 안녕 / 창간 33년 2개월 25일… 지령 제10,992호로 종간 / 파란만장의 시대에 역사의 기록자임을 확신하며 / 애독자 여러분과 함께 숨 쉬어온 전 사원 고별인사'.


당시 국제신문은 폐간호 역시 굴곡진 우리 현대사의 기록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평소와 다름없이 마지막 신문을 제작하고 배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종이에 활자로 하나하나 인쇄된 기사는 영원히 수정할 수 없습니다. 신문은 기록으로 남아 계속 보관되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신문은 정확히 보고, 판단하고, 기록해야 합니다. 신문기자는 훗날의 '역사 교과서'를 만든다는 사명감으로 일해야 합니다.


오늘(9일) 자 몇몇 신문 1면은 '기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하고 국회 본회의장을 떠난 국민의힘 의원 105명을 기록했습니다. 지면 전체에 105명의 얼굴과 이름, 지역구 등을 사진과 활자로 새겼습니다. 탄핵 찬성 또는 반대를 떠나 아예 투표를 하지 않아 의도적으로 '투표 불성립' 요건을 만든 장본인들입니다. 이들 신문은 '기록으로 남겨둔다' '영원히 박제한다'며 특별한 편집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반대하면 투표용지에 '부' 또는 '否' 자를 적어 투표함에 넣으면 될 것을.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고, 의원 모두 투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8명 이상 이탈 표가 두려웠던 겁니다. 비겁했습니다. 국민을 대신해 투표하는 건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이 모든 걸 저버렸습니다. 결국 윤 대통령 탄핵안은 투표 성립 요건(200명)에 미달해 폐기됐습니다.


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성난 국민은 국회를 에워싸고 국민의힘 의원 108명의 이름을 목청껏 부르며 투표하러 돌아오라고 했지만 단 3명만 응답했습니다. 투표한 국민의힘 의원 3명 중 김상욱 의원은 "당론에 따라 반대표를 던졌다"고 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누구도 그의 결정이 옳다, 그르다 할 수 없습니다. 그의 권리입니다. 다른 국민의힘 의원들도 김 의원처럼 떳떳하게 투표하면 어땠을까요. 누가 "찬성하라"고 했습니까, "투표하라"고 했지.


당당하지 못했던 여당을 향해 국민 분노가 커집니다. 이 와중에 윤 대통령 탄핵을 강하게 반대했던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이 지난 8일 유튜브 방송에서 '1년 후 국민은 달라진다'는 취지로 발언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입니다. 윤 대통령 탄핵안 표결에 불참한 뒤 비판 여론을 우려하는 같은 당 의원에게 "나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 앞장서서 반대했고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뒤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 (하면서) 무소속 가도 다 찍어주더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주권자 국민을 등지고 대통령을 지키는 게 의리일까요. 투표하지 않은 의원 105명이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한다면 "꼭 투표해 달라"고 유권자에게 호소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2024년 12월 7일, 이날 우리 역사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제신문 기사는 아니지만) 그 기록을 첨부합니다. 제23대 국회의원 선거는 2028년 4월 12일에 치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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