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보면 젊음도 붉은 꽃도 한때입니다.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천하를 발아래 둔 것 같은 위세도 언젠가 꺾입니다. 흥하면 쇠하기 마련입니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은 자리에 앉으면 천년만년 영화를 누릴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물며 국민이 잠시 빌려준 권력을 본디 제 것인 양 마음대로 쓰다간 사달이 납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은 세상에 무서울 것 하나 없는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육군 3성 장군에게 전화해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의원들을 끄집어내라"고 했습니다. 개개인이 헌법기관이자 국민의 대표 자격으로 '민의의 전당'에 모인 국회의원들을 죄다 끌어내라고 지시한 겁니다.
비슷한 시간에 이뤄진 일로 추정됩니다. 윤 대통령은 국가정보원 1차장에게도 전화를 걸어 "이번 기회에 싹 잡아들여 정리해라. 국정원에도 대공 수사권을 줄 테니 우선 방첩사령부를 도와서 지원해라"고 명령했습니다. 국가 근간인 헌법이나 주권자 국민은 안중에도 두지 않은 '무시무시한 권력'입니다.
그러나 그 붉던 꽃이 이제 시들었습니다. 최고 권력을 과시하던 윤 대통령은 내란 혐의 피의자가 됐습니다. 경찰 검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 대통령을 '내란 수괴'로 간주하고 경쟁적으로 수사합니다. 상설특검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자신이 말 한마디로 부리던 수사기관들이 동시다발로 발톱을 세우고 달려듭니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사상 처음 출국금지까지 당했습니다.
급기야 11일엔 용산 대통령실도 표적이 됐습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이 이날 압수수색을 시도했습니다. 영장에 적힌 피의자는 '대통령 윤석열'입니다. 압수수색 대상은 대통령 집무실과 국무회의실, 경호처 등입니다. 내란, 군형법상 반란 등 혐의로 현직 대통령을 겨냥해 강제 수사에 돌입한 겁니다. 경찰이 신병 확보(긴급체포)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막으려고 '방탄대오'를 형성했던 국민의힘 의원들도 서서히 균열 조짐을 보입니다. "2차 탄핵소추안은 당론 없이 자율 투표를 하자"는 주장부터 "탄핵 찬성을 당론으로 정해 달라"는 요구까지 나옵니다. 민심은 물론 당심(黨心)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더는 버티기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생각은 아직 좀 다른가 봅니다. 이날 한 신문은 '윤 대통령이 여당에서 제기된 조기 퇴진 요구와 관련해 하야보다는 탄핵소추가 되더라도 직무 정지 상태에서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습니다. 자신을 보호하려고 여당이 '질서 있는 퇴진' 카드를 꺼냈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래저래 참 안타깝습니다. 나는 새를 떨어뜨리려다가 자신이 추락해버렸고, 한 발짝 움직여 숨을 곳 없는 궁지에 몰렸습니다. 부디 그가 내릴 마지막 결정은 국민과 나라를 위한 것이기를 바랍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은 없습니다. 영원한 권력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