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가 초·중·고교에 다닐 때는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나 태블릿PC를 만지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인터넷 강의를 들을 때만 허용됐는데요. 요즘 학생들 말을 들어보면 태블릿PC를 활용해 자료 조사를 하고 발표 자료를 만들어서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등 신세대적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도입까지 추진 중이라는 소식도 들었죠.
지난해 6월 교육부는 디지털 교육 혁신을 위해 2025년부터 AI 교과서를 도입한다고 밝혔습니다. 일단 내년 1학기에는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수학·영어·정보 과목부터 적용하기로 했죠. 2028년까지 국어·사회·과학 과목도 AI 교과서로 전환될 예정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교육부는 AI 교과서로 맞춤형 학습 콘텐츠를 제공하면 학생 참여도는 올라가고, 학습 격차는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AI 교과서 도입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제동을 걸었죠. 지난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AI 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 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처리했습니다. 교과서는 모든 학교가 의무적으로 채택해야 하지만, 교육 자료는 학교장 재량에 따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데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내년 3월부터 AI 교과서를 도입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AI 교과서가 교육 자료로 격하되면 무상교육 범위에서 벗어나 비용 부담은 전적으로 학교 또는 학부모가 지게 됩니다. 교육청이 예산을 집행할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죠. 이에 대해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교육 발전을 저해하고 현장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법으로 큰 우려가 있다. 교육 평등 측면에서도 AI 교과서가 참고서로 격하돼 이를 도입하는 학교와 안 하는 학교가 갈리면, 특히 어려운 지역 아이들일수록 새로운 기술을 통한 교육 기회를 박탈당할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며 개정안 처리에 반대했습니다.
여당 의원들도 AI 교과서를 교육 자료로 규정하면 사용 여부가 학교장 재량으로 결정돼 보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며 반대했는데요. 반면 야당 의원들은 AI 교과서는 배포하는 데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고, 학생들의 개인정보 유출과 문해력 하락의 우려가 있다며 개정안 통과를 추진했습니다.
현장 도입을 불과 3개월 앞둔 AI 교과서가 격랑 속에 빠지자 학교 현장은 혼란 그 자체입니다. 도입 여부가 불확실해진 AI 교과서를 당장 내년 1학기부터 사용하는지, 그러지 않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현직 교사들은 입을 모아 "교육부가 AI 교과서를 쓰라고 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교육적으로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학생들의 문해력과 집중력, 나아가 스스로 생각하는 힘과 성장 과정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걱정했죠.
현직 교사가 전해준 학교 상황을 한 번 들어보실까요.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A 교사는 AI 교과서 도입 여부가 불확실해지는 바람에 교사 대부분이 수업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내년부터 현장 도입을 한다면 3개월 정도 남은 건데, 아직 AI 교과서 도입 여부조차 몰라요. 당연히 관련 수업 준비는 전혀 못 하고 있고요. AI 교과서를 쓰라고 하면 어떻게든 쓰겠지만, 아이들에게 좋진 않겠죠. 초등학생은 생각보다 미숙합니다. 초등학교 3, 4학년은 연필도 제대로 못 잡는 아이들이 수두룩해요. 그런 아이들에게 학교에서도 디지털 기기를 쥐어주면 성장 과정에서 악영향을 미칠 게 분명합니다."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B 교사는 내년 1학기부터 시행된다던 AI 교과서 도입 여부가 불투명해졌는데도 확실한 공지가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했습니다. "아직 학교 측에서 AI 교과서 도입 여부를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교사조차 준비가 안 됐는데 AI 교과서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고요. 사실 대부분의 교사는 AI 교과서 도입에 반대할 겁니다. 학생들 문해력과 집중력, 창의력 향상에 안 좋을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