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조선시대까지‘왕토사상’에 의해 모든 토지의 소유자는 왕이었다. 조선 후기가 되어서야 일부 민전이 용인되었고, 1912년 토지조사령과 1914년 조선부동산등기령에 따라서 ‘토지’에 관한 개인의 소유권 정보가 국가의 공적장부에 등록됐다. 이때 토지의 위치, 면적, 형태는 ‘지적(地籍)’에, 권리는 ‘등기(登記)’에 등록되면서 우리나라의 근대적 토지공시제도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동일한 대상물이 서로 다른 공적장부에 이원화되어 등록·관리되는 ‘한 가족 두 지붕’ 토지관리 제도로 국민 불편과 행정력 낭비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근대적 토지관리 제도가 도입된 지 110여 년이 훌쩍 넘어섰다. 줄자와 종이를 사용한 지적측량으로 등록했던 ‘지적(地籍)’은 2012년 ‘지적재조사사업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전 국토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국책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전 국토가 더 정확하고, 정밀한 토지정보를 갖출 것이다. 하지만 토지관리에는 또 다른 큰 문제가 있다. 바로 ‘토지’라는 하나의 대상물이 사실관계는‘지적’, 권리관계는‘등기’로 이원화되어 공시되고 있는 것이다.
토지공시제도의 이원화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 불편이다. 현재 ‘지적’은 행정부, ‘등기’는 사법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때문에 매매, 증여 등 토지소유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토지소유자가 구청과 등기소에 방문해 중복적인 행정 처리를 요청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실제로 토지분할측량을 통해 ‘지적’만 정리하고 법원에 등기신청을 하지 않아서 지적과 등기의 불일치가 발생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부동산등기부와 지적공부와 불일치 사례가 약 560만 건에 달한다.
두 번째로는 불필요한 행정력의 낭비이다. 지적공부를 관장하는 시·군·구청과 부동산 등기부를 관장하는 등기소가 별개의 기관으로 양립되어있기 때문에 수많은 인력과 국가예산이 중복적으로 소요되고 있다. 완벽하게 분리된 기관이기에 상호 간의 업무연계도 원활하지 못한다. 게다가 지적의 등록은 ‘지번순’, 등기사무는 ‘등기 순’으로 각각 처리됨에 따라 공부상의 착오와 오류의 발생 확률도 매우 높다. 국가의 공적장부의 오류는 국가 공신력의 문제를 넘어서 국민들의 소유권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본과 대만, 인도네시아는 토지제도의 창설 당시 우리나라와 같이 이원화되어 근대적 토지관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1960년 부동산등기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해 등기와 지적을 통합하였고, 대만과 인도네시아도 현재는 토지공시제도를 일원화해 운영하고 있다. ‘지적과 등기의 통합’은 국민들의 불편을 해소할 뿐 아니라 국가 예산절감, 국가의 부동산제도 공신력 향상 등 긍정적 효과가 예상된다. 국내에서도 1970년대부터 일원화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었으나, 부처 간 이해관계로 인해 50여 년간 지금까지도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부처 간 이해관계를 넘어서 국가의 토지공시제도의 발전을 위해 ‘한 가족 두 지붕’ 토지관리 제도를 바로잡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