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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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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Dec 04. 2023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10.

잘 다듬어진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장승처럼 서있는 <한상 가득> 한정식집에 차를 세웠다. 식당 뒤편으로 주차장이 꽤나 넓게 있었고, 주차된 차는 몇 대 없었다. 나는 그녀가 내리기 쉬운 쪽으로 차를 세우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가 자꾸만 마음과 다르게 삐딱하게 세워지는 거다. 그동안은 머리보다 핸들을 잡고 있는 손이 저절로 먼저 움직이며 늘 칼처럼 반듯한 주차를 했었었다. 그녀가 사이드미러로 옆을 봐주며 도와주는데도 긴장한 것인지, 우스꽝스럽게도, 바보 같이 주차가 잘 되지 않았다. 몇 번씩 차를 빼고 다시 핸들을 돌려 후진하고, 또 빼고 후진하고를 반복하며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 주차 잘하셨어요. 우리 그냥 내려요. ㅎㅎ
- 나 원 참. 운전경력 40년인데 오늘 왜 이럴까요?


우리? 가슴이 쿵쾅거렸다. 분명 혈압 같은 건 없는데도 이상하게 눈동자와 손목이 잔잔하게 떨리기도 하고,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졌다.  긴장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나는 어리숙하게 허우적거렸다. 정신을 차리자, 청원피스 밑으로 벌어진 틈 사이 하얗고 통통한 다리 본걸 들키지 말자, 다짐을 했으나 식사 중에도 나는 계속 실수를 했다.




한상차림 옥돔세트를 시켜놓고 우리는 마주 앉았다. 조잘대는 예쁜 애님의 오동동한 입술을 보며 옥돔에서 제일 두툼한 부위의 살을 꼼꼼히 뼈까지 발라가며 그녀의 하얀 밥 위에 얹어주었다. 그녀는 밥도 하얗고 예쁘게 먹었다.


- 선생님도 많이 드세요. 친구들 오면 꼭 제가 꼭 데려오는 맛집이에요.... 윽, 컥컥
- 아이코, 생선 가시가 있었나? 괜찮아요? 물 드실래요?        


나는 냅킨과 물컵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어찌할 바를 몰라 허우적거렸다. 다행히도 여러 번 입을 헹구고 나서야 그녀는 생선뼈를 뱉어냈다.


- 미안해요. 가시가 다 발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따라 눈이 침침한가?
- 아니에요. 제가 제대로 확인도 안 한 거죠. 뭐.ㅎㅎ


그녀는 그 많은 반찬 하나하나를  조금조금씩 맛보며 빠짐없이 하나하나 새끼참새처럼 집어먹더니, 금세 배불러했다.

10년째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는 그녀는 벌써  40대이고, 미혼이고, 앞으로도 미혼으로 살 예정이라며 당차고 야무지게 본인의 삶을 일목요연하게 밝히고 있었다. 마치 젊었던 시절, 여자를 소개받은 자리처럼  나 역시 내 근황을 이야기해야 했다. 교사로 정년퇴직하고 지금은 숲해설사로 살고 있고, 앞으로 남의 손 빌리지 않고 내 손으로 깔끔하게 살다가 가는 게 목표라고 최대한 담백하게 얘기해 주었다. 숙연해질 이야기에 그녀가 맞장구를 쳤다.


- 저는요, 빨리빨리 늙어서 빨리빨리 죽고 싶어요.
 - 예?
 - 한 여든 살 정도 되면 욕심이나 후회, 희망, 도전, 질투, 좌절, 사랑 이런 마음이 없어질 것 같아서요. 지금은 그런 감정들 때문에 힘이 들거등요.
- 안타깝게도 나이가 들어도 그런 얄궂은 감정들은 없어지지 않던데요? ㅎㅎ


특히, 사랑. 나는 그동안 힘에 부쳤을 어린 그녀의 삶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고 어두침침한 도로를 조용히 드라이브했다. 예쁜 애님은 나에게 나이 들면 달라지는 것들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물었다. 30년 넘게 교단에 있었으니 이제는 좀 자유롭게 이것저것 배우고 즐기고 싶다고 했더니, 쉽지 않을걸요~라며 그녀가 다리를 내 쪽으로 바꿔 꼬며 말했다. 예쁜 애님의 몸이 내쪽으로 60도는 돌아앉은 듯했다. 내 옆에서 습관처럼 엄지와 검지로 붉은 입술을 조물딱거리며 말하는 그녀는 귀엽고 더없이 예뻐 보였다.


- 밥 먹자고 했을 때 이상하게 저는 어린 시절, 소년이 소녀를 만났을 때처럼 얼마나 설레던지요.

 

무슨 용기였는지 나는 운전하다 말고 갑자기 가슴에 손을 얹으며 진심을 말해버리고 말았다. 마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듯이 아주 경건하게. 정말 그런 마음이었다. 어린 소년시절, 좋아했던 소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그 어떤 성적 감정이 아니라, 그냥 정말 만나는 것 만으로 벅찬 감정. 그런 어린 시절 순수했던 소년의 마음이었다.


- 흡


예쁜 애님이 내 고백에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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