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이라는 장르
김현철, 시티팝 장인이 아닌 ‘한국 퓨전 재즈’의 아버지
김현철 음악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 시티팝 좋아하는구나?” 하며 대화를 잇는다. 김현철은 우리나라 시티팝 장인으로 불리우고 있다. 하지만 사실 그의 음악은 재즈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니까 보사노바와 팝, 펑크 사이를 오가는 ‘퓨전 재즈’라고 칭할 수 있겠다. 실제로 김현철 본인 또한 고교 시절 데이브 그루신, 리 릿나워, 래리 칼턴, 펫 매스니, 밥 제임스 등 재즈 아티스트들의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김현철의 음악은 시티팝의 영향을 받았을까?
1970-80년대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시티팝은 요트 록 (소프트 록, 팝 록, 재즈 퓨전, R&B, 디스코 등을 포괄하는 장르)에 기반을 두고, 신스 팝의 요소를 더한 새로운 장르이다. 음악 구조 또한 기존 팝송보다는 재즈나 프로그레시브 록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신스 베이스, 드럼 머신 등이 쓰인다. 김현철의 음악에도 동일한 악기들이 쓰였으니, 그의 음악에서 시티팝스러움이 느껴진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
1989년 데뷔때부터 이미 음악 신동으로 불렸던 김현철은 재수 시절 포크 밴드 ‘어떤 날’의 베이시스트 조동익과 지하철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시작으로, 자신의 곡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김현철은 본인이 고교 시절 포크 음악에 빠져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물론 해외 아티스트들의 재즈 음악도 다양하게 들었지만, 기본적으로 당시 시대적으로 유행하던 포크 음악을 접할 기회가 더욱 많았을 것이다.
그의 음악세계의 다채로움
<김현철 Vol.1>, 스물 한살짜리 싱어송라이터가 직접 작사, 작곡, 프로듀싱 한 이 데뷔 앨범은 대한민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는다. 이 앨범에는 그의 히트곡인 ‘오랜만에’, ‘춘천가는 기차’, ‘동네’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후로 영화 <그대 안의 블루>의 OST ‘그대 안의 블루’와 ‘달의 몰락’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점차 이름을 알린다.
1995년 발매된 4집 <Who stepped on it>에는 그에게 ‘한국 시티팝 장인’이라는 별명을 안겨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히트곡 ‘왜 그래’가 수록 되었다. 개인적으로 김현철의 음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브라스 사운드인데, ‘왜 그래’는 전주부터 특유의 경쾌한 색소폰 소리가 이어지며 곡을 매끄럽게 이끌어준다. 비슷한 스타일의 곡으로는 1999년 발매된 7집 <어느 누구를 사랑한다는 건 미친 짓이야>의 수록곡 ‘연애’와 타이틀곡 ‘어느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미친 짓이야’를 추천하고 싶다. 산뜻하면서도 너무 들뜨지는 않는,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곡이다.
이외에도 김현철의 곡 중에는 가을 밤에 듣고 싶어지는 감성 가득한 곡들도 많다. 4집에 수록된 ‘나를…’은 헤어진 연인에게 전하는 아련한 감성, 5집 <동야동조>의 타이틀곡 ‘일생을’은 이별의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애절함을 담은 곡이다. 7집의 ‘사랑에 빠졌네’는 이제 막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몽글몽글한 감성이 담백하게 담겨져 있다.
6집 <거짓말도 보여요>의 타이틀곡 ‘거짓말도 보여요’와 5집 <동야동조>의 수록곡 ‘그렇더라도’은 슬픈 가사와는 상반되는 잔잔하고 덤덤한 멜로디라인으로 여러 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 매력을 가진 곡이다.
누군가는 시티팝이든 퓨전 재즈든, 비슷한 뿌리에서 시작되었으니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의 시대 문화로 일컬어지는 시티팝의 장인보다는, 당시 낯설었던 퓨전 재즈를 본인만의 감성으로 만들어낸 1호 아티스트로 칭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김현철 자체가 새로운 장르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나는 김현철의 음악이 좋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