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하는데 유독 쓸 말이 떠오르지 않거나 쓰기 싫어서 딴짓을 계속 이어가는 날이 있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다. 이런 날의 공통점은 비단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은 그 시간, 그 순간에 갑자기 마음이 산만해지는 게 아니라 이미 아침부터 그런 내면의 흐름이 감지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느낌적인 느낌'이기에 한 마디로 뭐라 정의할 순 없지만 어쨌거나 이런 날엔 뭘 많이 할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최대한 단순하게 보내지 않으면 어느새 선택 장애님도 찾아와 들어앉아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집에서 한참 고민했다. 날은 춥고 몸은 피곤한데 집에 있긴 싫고, 집에선 늘어질 것 같기만 한 그런 하루라서 카페에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집을 나서기까지 계속 갈팡질팡이었다. 옷을 갈아입는데도 '나갈까? 말까?'를 저울질하다 갈아입었다. 다 갈아입고 나서도 또 한 참 멍하니 서서 '그냥 나가지 말까? 에이, 고민될 땐 무조건 나가는 게 맞아!' 사이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다행인 건 어쨌거나 지금 난 카페에 앉아있다는 것이다.
매번 고민될 땐 무조건 원안대로 진행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선택 장애게 얼린 사람처럼 갈팡질팡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마치 누군가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서서 보이지 않은 싸움을 하곤 한다. 날씨라도 따뜻하면 그나마 덜 고민하는데, 추워지니 고민이 더 잦아진다.
겨우 몸을 움직여 카페에 갔지만 삶의 관성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평소엔 잘 먹지 않는 조각 케이크 하나를 커피와 함께 주문하는 것부터 주문한 음료와 케이크가 나오자마자 일단 먹으면서 하염없이 SNS를 둘러보질 않나, 다 먹고 나서도 여전히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고 딴짓을 이어가는 걸 보면 오늘은 정말 날이 아닌가 보다. 최근 들어 카페에 잘 가지 않다 보니 한참 카페에서 작업할 때의 효율이 리셋된 기분이다.
그래도 딴짓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 합리화일지 모르겠지만 딴짓은 한 편으론 몸풀기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도 딴짓을 하다가 떠오른 생각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이런 걸 보면 정말 인생의 모든 순간은 버릴 게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무리 시답잖은 생각이나 쓸데없는 행동도 엮어 보면 하나의 글이 되고 콘텐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딴짓은 다르게 말하면 영감을 발견하기 위해 안테나를 세우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다 보면 뜻밖의 아이디어를 만나게 된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내용과 무관한 행동일지라도 하다못해 그 행동을 하는 내 마음 상태를 연결 지어 글을 이어갈 수 있으니 이 또한 하나의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건 지양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오후 4시가 넘으면 애데렐라가 되어야만 하는 사람에겐 당부하고 싶다. 아이 하원시간이 다가오는 지금 솔직히 마음이 졸리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 보면 한참 글감이 쏟아져 나올 때가 있지만 지독하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땐 그냥 마음껏 딴짓을 해보길 제안해 본다. 때론 쓰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까지 마음을 풀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끝까지 그 마음이 생겨나지 않는다면 그럴 땐 과감히 내려놓는 것도 방법이다. 또는 짧은 메모를 난사해 보던가.
한 편의 에세이가 되었든 끄적거리는 메모가 되었든 기록의 물줄기만 마르지 않는다면 다시 물꼬가 트이는 순간이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 최소한의 것을 남겨보자. 하다 못해 나처럼 '딴짓'을 하다 '딴짓'에 대해, '딴짓을 하는 나'에 대해 써보기라도 하자. 혹시 또 모른다. 종일 딴짓만 하다 이 글을 본 사람이 영감을 얻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