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부족과 피로누적의 콜라보 때문일까, 그제 밤부터 목이 간질거리더니 급기야 어제는 종일 마른기침이 나왔다. 낮에 코칭을 받으러 외출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는데, 저녁이 될수록 기침은 심해지고 목소리가 갈라지더니 결국 목이 쉬어버렸다. 그리고 살짝이지만 두통도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느낌이 어째 싸했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병원에선 크게 목이 붓지도 않았고 콧물이 많거나 하진 않아 보인다고 했다. 아무래도 피로누적이 원인인가 보다. 당장 내일 있는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약을 먹고 자고 일어나니 컨디션은 좀 나아진 기분이다. 그러나 목소리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잔기침도. 들숨이 목구멍을 간지럽히는 순간 기침이 연달아 터져 나왔고 그럴 때마다 골이 울리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무조건 쉬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머릿속에서는 이거, 저거, 요고, 조고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아이 등원을 마치고 돌아와 가볍게 끼니를 해결한 뒤 우선 영화를 한 편 틀었다. 매주 금요일에는 저녁때 교회 예배가 있는데 그것마저 다른 분께 부탁을 드렸더니 마치 커다란 구멍이 생긴 듯 하루가 텅 빈 느낌이었다. 아내랑 드라마는 종종 보지만 집에서 영화는 자주 보지 못했던 터라 오늘같이 쉬기로 마음먹은 날 보면 좋겠다 생각했다.
영화를 보는데 점점 졸음이 밀려온다. 아무래도 약기운 때문인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어설프게 잠들긴 싫어서 끝난 뒤 침대에 누웠다. "나 30분만 자고 나올게" 아내에게 이야기하고 방에 들어갔는데 나와보니 1시간 40분 정도가 지나있었다. 몸이 꽤 피곤하긴 했나 보다. 그래도 푹 잠든 덕분에 몸은 좀 개운하다.
몸은 개운하긴 한데 시간이 벌써 오후 3시가 다 됐다. 아뿔싸! 어린이집 하원시간이 다가온다. 오늘 글도 써야 하고 콘텐츠도 만들어야 하는데. 마음이 촉박해진다. '근데 나 오늘 쉬기로 한 거 아냐?' 평소와 다른 마음이 툭하고 올라왔다. 잠시 고민했다. '그냥 맘먹은 거 푹 쉬어?' 정말 '잠시'였다. '오늘 나의 상태가 또 글감인데 이걸 왜 그냥 버려. 얼른 글 써야지.'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을 쓰는 지금. 마음이 즐겁다. 아마 정말로 하루 종일 뒹굴 거리거나, 쉬어 간다고 드라마 정주행을 한다거나 했다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글을 쓰며 보낸 시간이 3년이다. 어느새 글을 쓰는 시간은 나에게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
해야 할 일을 했다는 효능감, 내 삶의 이야기 퍼즐 한 조각을 만들어 냈다는 즐거움,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쉴 수 있는 삶에 대한 감사함,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만족감.
다른 무엇보다 오늘치 기록을 쌓아간다는 것이 좋다. 특별한 무언가가 없어도, 별 것 없이 흘러가는 보통의 하루도, 너무 단순해서 지루하기까지 한 그런 일상일지라도 돌아보면 모두 나의 마음을 지켜준 안온한 날들이었음을 감사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쓰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었다.
이제는 기침도 제법 멈춘 것 같다. 약은 계속 먹어야겠지만 기침이라도 좀 잦아드니 살만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살아온 습관 때문인지 하루를 온전히 쉬어간다는 게 영 어색하다. 아니, 정확히는 어떻게 하는 게 쉬는 건지도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나마 오늘은 한숨 푹 자기로 선택한 것, 영화 한 편 보기로 선택한 것이 평소와 다른 선택이었다. 때론 평소와 다르게 애쓰지 않고 그냥 흘려보낼 수 있는 시간을 선택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