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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유 Dec 07. 2022

주제는 사과입니다

사과하는 주제에 애써보는 이야기

“네? 먹는 사과요?”


 통화를 끊기 직전, 마지막으로 급히 던진 질문은 고작 사과는 먹는 사과냐는 것이었다. 

 안 먹는 사과도 있단 말이냐.. 질문의 수준이 스스로도 의심스럽지만, 사실 좀 궁금한 부분이다.




 처음으로 참여하는 글쓰기 모임.

 비록 난 처음이라 해도 오래 진행 되어온 모임의 중간에 합류 하는 입장인지라 “미안해요 사과”가 주제인데 혼자 “아삭아삭 사과” 이야기를 들고 가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먹는 사과 이야기가 맞다고는 하는데.. 

“먹는 사과 쓰기다.”라며 호기롭게 키보드 앞에 앉으니, 정작 먹는 사과보다 미안한 사과에 대한 이야기만 쏟아진다.     


 아니다. 쏟아진다는 건 빌려온 표현일 뿐, “얌얌 사과”보다는 “미안 사과”로 떠오르는 생각이 조금 많다는 거지. 정말 이야기가 쏟아지지는 않는다.

 단지 먹는 사과보다는 조금 많이, 그동안 주고받았던 사과들이 떠오른다. 

 그냥 떠오르기만 한다. 진정한 사과부터, 그 언제인지도 모를 영혼 없는 사과, 최근 내가 사과받고 싶었지만 도리어 사과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억울함까지 생생하게 떠올랐지만, 마음속의 시나리오일 뿐. 

 그것들이 쉽게 둘둘 뭉쳐 글이 되지는 않는다.      




 막상 먹는 사과를 떠올리려 해봐도 동그랗게 반짝이는 백설 공주의 사과는 멀리 있다. 내 생각의 입구에는 잘라놓은 몇 조각의 사과가 더 먼저 줄을 서 있다. 그 누구도 탐내지 않을 사과. 심지어 먹다 남은 건지, 자르는 중인 건지 그 자른 면도 파삭파삭하고 파리한, 앞구르기 하며 봐도 맛없겠다는 느낌부터 풍기는 그런 사과만 상상된다.


 그 마른 사과 같은 감성의 내가 무슨 창작 활동인 글쓰기를. 게다가 그걸 사람들과 모임까지 할 수 있을까. 

 혼자 쓴 글을 많은 사람 앞에서 소리내어 읽고, 그들에게 감상의 소리를 듣고, 그 사이 찰나의 침묵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시간까지 견디어 내야 한다. 게다가 받은 만큼 나도 누군가의 글을 듣고, 짧은 시간 진중하게 감상해 역시 말로 남겨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정지된 글과 달리 시간은 흐른다. 점점 기한이 다가오고, 자괴감만 스며드는데 여전히 문장들은 더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멈춘 문장들을 바라보고만 있는 건 더욱 괴롭고 불편하다.     


 잔상만 더럽게 많이 떠오르는데 서로의 말이 더럽게도 이어지지 않는 이 더러운 기분.

그동안 “저 글쓰기를 좋아해요”의 “쓰기”라고 믿어왔던 부분은 한낱 메모에 불과했나. 

인정하지 못해서 역시 더럽게도 괴로울 뿐.      


 그 와중에 무수하다고 가늠했던 메모의 양조차 정착 들추어보면 그저 빈했다. 초라한 메모들끼리라도 꾸역꾸역 엮어보려 했으나 미처 글이 되기에는 아쉽다. 



 

 밭을 일구어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고, 정성껏 길러내어 단 한 알의 사과를 따기까지의 긴 인내와 시간을 보내라는 것도 아닌데, 난 고작 2주를 버티지 못하며 빈 화면과 종종거렸다.

 끈기 없는 얌생이의 성향을 가진 자는, 제 미래가 불투명한 게 빤히 보이면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 않는 법. 


 결국 미완성의 첫 글로는 “먹는 사과”지만 “미안해요 사과”를 들이밀며

 “죄송한데 제 글은 우선 여기까지입니다. 차차 좋아지겠지요.”라는 심심한 사과와 함께 마무리하고, 

 역시 똑같은 말로 첫 모임의 마지막 인사를 할 것이다.      


 오늘의 주제는 사과였고, 내 주제에는 사과부터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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