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sd Jul 24. 2022

뛰어들지 않으면 모를 '가난'의 정의

바버라 에런라이크 - 노동의 배신

  이름 있는 공기업에서 근무하시는 아빠 덕분에 나는 금전적으로 부족함 없이 살아왔다. 살면서 해 본 아르바이트라고는 동네 대형마트에서 어린이날 행사로 어린이들에게 하루 동안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고 일급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 종종 서울역을 갈 때마다 봤던 노숙자들을 통해 우리 주변에는 가난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빈곤층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텨가며 살아가는지는 결코 알 수가 없었다.


  가난을 경험해 보고자 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빈곤층 사람들에 대해 편견만을 가질 뿐. 그 속의 진실은 결코 알 수가 없다. 책을 읽기 전 나는 작가가 빈곤층의 사람이거나, 외국인 노동자로서 경험한 이야기를 기록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부럽지 않게 충분한 급여를 받으며 글을 쓰는 기자였으며, 책의 내용은 우리가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기 쉬운 자본주의 세상 속 빈곤층 사람들의 노동 현실을 글로 작성하기 위해 그녀가 계획한 일종의 프로젝트를 다룬 것이었다.


  이야기는 크게 4가지 장에 걸쳐 진행된다. 면접, 지원과정을 자세히 다루고 투잡을 뛰며 노동자들과 동료애를 쌓았던 1장, 백인이 많은 곳으로 옮겨 각종 사회문제를 겪고 청소부로 일을 하던 2장,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고통을 겪고, 또 행복을 경험하며 일의 능률이 오르는 모습을 보였던 3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변할 수 없는 이유가 담긴 4장.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정이었지만 이 네 과정은 바버라에게, 또 나에게 노동자들의 힘겨운 현실을 조금이나마 일깨워 주었다.


   계획에 돌입하기 전, 바버라는 자신만의 규칙을 세웠다. 원래 지니고 있었던 기술에 의존하지 않기, 임금이 제일 높은 일자리를 구하고 유지하기, 가장 임대료가 싼 방을 구하기. 지키기 어려워 보이는 규칙들은 아니었기에, 나는 이 프로젝트의 성공이 쉬이 이뤄질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내 예상은 멋지게 빗나갔다. 바버라는 결국 자신이 정한 규칙을 어느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계획을 세울 때엔 그리 어렵지 않은 규칙이라 여겼으나, 현실의 벽 앞에선 그조차도 완전히 지켜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규칙이 무너져가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나는 바버라가 발을 담갔던 현실, 즉 ‘가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노동의 세계에도 인종차별이 존재한다. 바버라는 레스토랑에서 첫발을 들이자마자 웨이트리스로 일을 하게 된다. 유색인종들이 동일한 상황에서 카운터일을 보거나 청소부 일을 맡는다는 점을 볼 때, 이것은 일종의 특혜인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혜가 주어진 것은 아마도 바버라가 하얀 피부와 금빛 머리칼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을 지닌 바버라도 손님이 주문한 어린이 세트를 갖다 주지 않는 실수를 하고, 매일 비타민을 먹듯이 진통제를 집어삼키는 신세에 놓인다.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에 있는 자든, 그렇지 못한 자든 노동이라는 족쇄에 묶인 이상 그 고통은 큰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만족할 줄을 몰라요. 우리가 주고 또 줘도 그들은 계속 받으려고 해요.” 이 문장이 그렇게 아프게 들릴 수가 없다. 어쩌면 이 책에서 지배자, 즉 경영진이 생각하는 노동자에 대해 가장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이지 않을까 싶다. 그들은 노동자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이 아니라면 노동자들에게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으며, 노동자들의 교육 역시 녹화되어 있는 비디오테이프를 보여 주며 형식적으로 행해진다. 이러한 장면에선 노동자들에게 합당한 대우 없이 그저 이윤 창출의 도구로만 여기는 지배자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행한 일의 양에 비해 돈은 충분히 받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 바버라는 그가 상대하는 손님들을 귀찮고 짜증 나는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


  메인 주인 포틀랜드로 옮기고, 백인들이 많으니 전보다는 나은 환경일 것으로 생각했던 바버라의 예상은 그 반대의 결과로 돌아왔다. 숙소로 정한 모텔 앞만 해도, 주유소와 편의점이 있지만 좀 더 유용한 가게를 이용하려면 유료 도로를 건너야 한다는 불친절한 제약이 있었다.


  이밖에도 노동자들의 삶을 짓누르는 요소들은 적잖게 존재하지만 노동자들은 마음대로 직장을 옮기거나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일은 우리가 사회에서 ‘왕따’로 전락하지 않도록 구원해주는 것이었다.”라는 구절에 잘 드러나 있다. 그동안 일을 하던 직장을 옮기게 된다면, 그동안 기존 일터에서 쌓아 온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 때문일까, 노동자들은 자신의 직장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 동시에, 그곳이 지닌 몇몇 이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만족하며 살아간다.


  노동자들이 지배자에게 할 수 있는 소소한 반항에는 절도와 규칙 위반이 있다. 어떻게 보면 큰 의미가 없는 행위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동료들은 계급 불평등이라는 낭떠러지에 작은 틈새를 차지한 데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다.”라는 말처럼 상류층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들로 비추어 본다면 꽤 큰 의미를 담고 있지 않나 싶다. 어쨌거나 상류층 사람들은 당시 바버라가 놓여있던 환경인 청소 노동자들에게 생계의 이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스트레스와 행복의 모습이 대비되어 표현된 3장에서 바버라는 극도로 반대되는 감정을 보여준다. 옷가게에서 소란을 피우는 아이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그들에게 적대감까지 느꼈지만, 손님들에 대한 자신의 그런 악감정이 이유 없이 싫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기존의 숙소보다 가격은 낮지만 시설은 좋은 모텔을 구하자 일의 능률이 갑자기 오르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행복의 질을 높여주는 본인의 환경과, 긍정적인 마인드의 중요성이 이 부분에서 돋보였다.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다다라 쥐꼬리만 한 급여에 대항해 노조를 결성하자는 계획을 짜던 중 직원 마를린이 이렇게 말했다. “단지 돈에 관한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의 존엄성이 달린 문제예요.” 하지만 그러한 노동자들의 자리를 비워버리고 새로 채우기만 하면 되는 경영진들에 의해 함부로 이루어질 수 없는 노조 결성은 그저 꿈이나 기적적인 요소로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바버라는 세상엔 ‘아무 기술도 요구하지 않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학력이나 스펙을 위해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악착같이 노력하는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해답이 되는 말이었다. 생계유지에 드는 비용은 저임금 노동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버겁기 때문에, 끊임없이 경쟁하며 자신의 능력을 채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직원을 ‘동료’나 ‘팀원’이라고 지칭하며 조직 속으로 흡수하는 것이 경영진의 권력이다.” 대학 강의 시간에 배운 내용이 떠올랐다. 오직 ‘인간’이라는 동물만이 동료니 뭐니 하는 허구의 단어들을 사실로 믿게 만들고 그것을 통해 연대감을 형성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연대감과 동료애 등을 통해 직장을 그만두고 싶어도 마음대로 그만둘 수 없게 하는 것. 어쩌면 이것 또한 우리를 얽매고 있는 자본 사회의 족쇄 중 하나가 아닐까.


  노동자들은, 정확히는 책의 중심이 되는 ‘가난한’ 노동자들은 그들에게 가해지는 숱한 억압을 묵묵히 인내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아마 그들이 노동을 통해 겪는 어떠한 고난보다, 노동을 하지 못함으로써 겪는 빈곤의 고통이 더 크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껏, ‘가난’이나 ‘빈곤’이라는 말로부터 나는 너무 멀리 있었고, 그저 편견만을 가진 채 그 가난에 짓눌린 이들을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가난에 눌리지 않으려 발버둥 칠 필요가 없는 이들은 가난이나 빈곤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말이 갖는 무거움에 대해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현대의 사회가 사회 구성원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들 노동자를 조금이나마 그들이 속한 빈곤의 수렁 속에서 지상으로 구원해 줄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날 그가 과거를 추억하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