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Style by AK Feb 23. 2024

가슴 무너지는 죽음

수잔 워지스키 아들의 죽음

며칠 전 내가 가르치던 학생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 19세인 대학교 새내기, 마르코이다. 이보다 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소식이 있을까? 나도 이런 마음인데 그 아이의 부모와 가족은 대체 어떻게 버텨내고 있을까? 나는 마르코의 형, 누나, 동생들까지 모두 5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으며, 15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 가정과 함께 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엄마는 수잔 워지스키, 작년에 은퇴한 유튜브 CEO이다. 현재는 구글 자문으로  구글 CEO 선다 피차이와 운영을 논의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이런 청천벽력 사건이 일어나게 된 거다.


나는 수잔을 2008년 처음 만났다. 그녀의 이웃인 의사부부의 세 자녀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마침 자신의 아들과 딸에게 피아노를 가르칠 선생님을 찾던 차에 내 레슨시간에 방문을 했다. 갓난아기였던 타니아를 안고 레슨에 들어와 잠시 참관한 후 다음 주부터 자신의 아이들에게 레슨을 해달라는 연락을 해왔다. 그 이후로 나는 그녀의 5자녀를 모두 가르치게 되었다.


그녀는 음악을 무척 좋아하고, 음악을 할 줄 아는 것을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 그런 엄마의 영향인지 아이들도 모두 음악을 좋았했고 셋째였던 마르코도 피아노를 아주 잘 쳤다. 너무 바빠져서 약 3년 정도밖에 배우 지를 못했지만 자신의 레벨보다 조금 높은 음악을 골라 열심히 치는 걸 아주 좋아했던 도전정신이 아주 강한 소년이었다. 마르코는 내가 이제껏 만나본 아이들 중 가장 스위트하고 배려심이 많은 아이였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나는 수잔의 아이들에 대해 조금 깊게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는데, 수잔이 아이들을 참 잘 키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 모두 아주 예의 바르고, 배려심이 강하며, 진실하고 매우 착하고 순수하다.  형제자매들끼리 서로 사랑하고 양보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인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 중에서도 마르코는 더 마음이 여리고 착한 아이였다. 자신을 잘 표현할 줄 알고 똑똑하고 스위트하고 어디 하나 단점을 찾을 수 없는 아이였는데..


하루는 여름에 레슨을 갔더니 마르코가 너무 피곤하다며 엄살을 피웠다.

왜 피곤해, 마르코? 방학이잖아?

태권도 캠프에 일주일 동안 가야 해요. 매일 9-3시까지 태권도하고 왔어요,

아이고, 진짜 피곤하겠다.

다음 주엔 테니스 캠프예요.


이래서일까? 마르코의 죽음에 관한 기사를 보니 운동을 아주 좋아하는 청년이었다고도 적혀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마르코는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싶어 했다. 마르코가 시간이 나는 방학 동안 나는 알래스카를 가야 해서 시간이 안 맞아 못 가르쳤다. 얼마 전 문득 그 생각이 들어서 아쉽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수잔의 가족은 아주 특별한 가족이다. 수잔의 아버지는 폴란드에서 망명한 유대인인데, 조부는 폴란드의 수상을 지내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물리학자로 스탠퍼드 교수셨고 어머니는 저널리스트이자 고교 선생님이셨는데 80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도 그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신다. SNS에서 팔로우하는 사람도 많다. 여동생 두 명은 각각 의대교수와 스타트업 CEO이자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의 전부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스펙이 특별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유대감, 우애가 아주 남다르다는 것이다. 이종 사촌인 아이들의 관계도 여느 형제자매의 끈끈함보다 더하고, 자매간인 엄마들의 우애도 대단하다. 물론 수잔가족 자체의 유대감도 참 아름답다.


아버지인 데니스는 사랑이 철철 넘치는 아버지이고 엄마는 그 바쁜 와중에도 아이들의 디테일을 모두 기억하고 챙기는 슈퍼맘이다. 가정을 최고 우선순위로 두는 이 엄마 아빠의 영향으로 가족의 분위기는 사랑으로 똘똘 뭉친 너무 사랑스러운 가족이다.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안아주고 뽀뽀해 주는 엄마 아빠의 모습 그대로 큰 아들 아리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동생들을 보면 두 팔을 활짝 버리고 안아주고 머리에 볼에 뽀뽀를 해준다. 그런 형을 닮은 마르코도 손아래 여동생들을 같은 모습으로 사랑해 주고 예뻐해 주었다.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다. 수잔은 아무리 바빠도 저녁은 꼭 가족과 한식탁에서 먹었던 걸로 유명한다. 한 가정의 분위기가 이렇듯 부모의 모습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진작에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스러운 회한과 반성이 많이 생긴다. 사랑을 더 표현하고 사랑을 주는 법을 적극적으로 가르쳐 주었어야 했는데 아쉽다.


지난 월요일 나는 수잔을 만나고 돌아왔다. 넷째인 타니아가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싶다고 성화를 해서 빨리 시간을 만들어 수잔의 집을 방문했다. 타니아와 함께 킬킬 웃으며 아리 이야기를 해주는 수잔은 은퇴한 후라 그런지 여유롭고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다음날 마르코가 죽었다. 수잔의 그 아름다운 미소를 다시 볼 수 없을까 봐 나는 몹시 두렵고 가슴이 아프다.  


매거진의 이전글 슈퍼 리치 만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