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이 아니지만 장착하는 폴리스캠의 필요성을 떠올린다. 정작 경찰에 도입된 ‘웨어러블 폴리스캠’은 6년간(2015~2021) 시범 운영 후 지원 기기의 저성능으로 실효성을 잃고 공식화되지 못했다. 1인 크리에이터 시대, 브이로그의 유행으로 성능 좋은 바디캠 또는 액션캠이 익숙한 지금 쓴웃음이 난다. 계절을 만끽하려 뛰쳐나가는 캠핑족(백팩킹족 포함), 자전거/오토바이 라이더는 물론 일상의 즐거움을 공유하려는 이들에게 웨어러블 소형 카메라는 필수이다. 그 기록 장치를 내가 구입하고 몸에 장착한다면? 용도는 확연히 달라진다. 공격적으로 좁혀 들어오는 거리와 의도한 충돌에서 날 보호하기 위함이다. 나에게 던지는 무례한 표정과 자존감을 갉아먹는 말투를 실시간으로 기록할 수도 있다. 때를 기다려 재생 버튼을 누르면 고스란히 저장된 영상이 여과 없이 보일 것이다. 직접 보세요. 화면 속 당신의 모습과 태도를! 상대의 미세한 표정 변화도 놓치지 않고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감상할 것이다.
‘날씨 좋다’를 감탄사처럼 뱉으며 단풍잎과 겹쳐진 하늘을 자꾸만 올려본 10월 마지막 주말을 보낸다. 일요일 새벽 5시, 안부를 묻는 갑작스러운 통화를 마치고 뉴스를 검색한다. 아직 해도 뜨지 않는 새벽이지만 다시 잠들지 못하고 몸을 일으킨다. 이후로는 SNS는 물론, 온종일 특별 편성되었을 뉴스 보도를 의지를 갖고 피했다. 출근 인사와 함께 동조하길 바라는 듯 참사에 대한 화제가 곧바로 들린다. 일부러 시선을 피하고 입을 다물며 자리에 앉는다. 혼자일 수 없는 회사에 있지만 나는 어느 때보다 고요할 거리와 시간이 절실하다. 충격과 놀람을 열뜬 대화로 나누려는 마음에 진심은 없을 거라 단정 짓는다. 한없이 가볍게 흩어지는 말들이 진실한 슬픔을 담은 애도일 수 없기에 나까지 합류하여 감정을 쏟아내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포털 사이트 메인에 나열된 한 줄 뉴스 기사는 눈에 박히고 만다. ‘정부는 5일까지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
하교 시간 아이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 온다. 무슨 일인가 싶어 화면을 터치하는 순간에도 긴장한다. “엄마, 내일 생존수영 하는 날이라 수영장 가야는데 준비물 다 있지?” 너의 수업 준비물을 왜 나한테 물어? 회사에서 받는 별일 아닌 용건에 안도감은 잠깐일 뿐, 다정한 말투가 나올 리 없다. 까맣게 잊고 있었음을 인정하며 짜증을 삼키고 최대한 친절한 톤으로 응대한다. “<주간학습안내>에서 준비물 목록 봤어. 이따 저녁에 같이 챙기자.” 마음이 분주한 퇴근길, 환승역 플랫폼에 서있는 그를 멀리서도 알아본다. 언제나 캡모자에 크로스백을 메고 두 손은 가방 앞면을 꼭 붙잡은 채 불안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린다. 계절이 바뀐 탓에 유광 얇은 점퍼를 걸친 것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는 주위를 흘깃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힘껏 피해 스크린도어까지 자신의 몸을 붙인다. 옷이 닿을 만큼 가깝지 않은데도 용수철 튕기듯 움찔하는 몸짓에 처음엔 뾰족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지금 보호와 통제란 없는 곳, 숨 쉴 공간조차 확보하지 못한 참사 후 눈에 띄는 그의 과한 움직임에 이해와 안쓰러움이 생긴다. 저녁 식탁에서 아이는 여전히 내겐 눈물 스위치인 ‘세월호’를 말하며ㅡ참사라는 단어 때문에ㅡ 이태원, 핼러윈, 애도,,,에 대해 묻고 또 자신이 이해한 뜻을 말한다. 여름휴가 후 넣어 둔 물놀이 용품 중 물안경을 다시 꺼내자 “엄마, 물안경은 가져오지 말라고 하셨어. ‘생존수영’이잖아! 물안경이 어떻게 있겠어.” 아 그런 건가. 평소라면 헛웃음이 나왔겠지만 반쯤 나간 정신으로 자꾸만 가라앉는 기분을 달래 겨우 준비물을 챙기곤 침대에 쓰러진다.
다시 힘을 내 ‘생존’ ‘안전’의 의미를 떨쳐 버리지 못한 꽉 찬 한 주를 성실히 보낸다. 출퇴근하며 스무 페이지, 어떤 날은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한 책ㅡ지금은 <장면들>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ㅡ을 방패처럼 가슴 앞에 막아 꼭 붙잡고 여전히 붐비는 지하철 객실에서 내린다. 나도 모르게 환승역 플랫폼에서 온 힘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있을 그를 찾고 있다. 내년에는 분명 핼러윈 다음에 축제라는 단어를 이어 붙이지 못할 것이다. 아이와 밤늦게까지 만들었던 거미 막대사탕도 내년은 약속할 수 없다. 선명한 기록이 절실하지만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은 정반대의 마음으로 차가운 11월을 맞는다.
November 05,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