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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인 Jun 09. 2023

대비되는 것들로 채운다

대비되는 것들로 채운다


층층 접어 올린 옷들이 기울지 않게 선반 가장 아래 깔려 있는 치마를 꺼낸다. 버리지 못한, 현재 내 기준 미니스커트를 고민 끝에 고른다. 어제 입은 플리츠스커트와는 재질과 디자인 모두 다른 트위드 미니스커트다. 총장 82(cm)에서 42로 반쯤 사라진 길이만큼 분명한 대비다. 11월 끝자락에도 따뜻한 오후, 나름 용기를 낸 옷차림으로 일요일 외출을 한다. “엄마는 긴치마가 더 어울려.” 감정 섞이지 않은 아이의 객관적 평가에 듣는 나만 감정이 실리고 만다. “엄마 다리가 밉다는 말이야?” 맥락 없는 질문 공격에 아이는 당황하기보단 “추워 보여서!” 솔직한 평을 덧붙이며 나의 감정 끓는점을 낮출 뿐이다.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며 1층 상가 유리창에 비치는 내 모습, 정확히는 하반신을 자꾸만 체크한다. 대부분 가려있어 신경 쓰지 않았던 무릎이 울퉁불퉁 도드라져 보이고 오늘따라 종아리도 심하게 부은 것 같다. 지금이라도 집으로 돌아가 총장 80 평소 입던 치마로 갈아입을까 하는 생각이 걸음을 늦춘다.


자신의 외모에 책임을 져야 할, 세상 일에 정신이 뺏겨 판단이 흐려지지 않는(다는) 나이를 지났다. 미워진 무릎을 문득 발견하고, 눈꼬리 처짐으로 생긴 짓무름에 안연고를 바르며 갈팡질팡 어쩌지 못하는 게 지금의 나다. 임신한 배가 작은 탓에 꽉 찬 41주 동안 임부복이란 새로운 카테고리의 쇼핑을 경험하지 못했다. 평소 입던 원피스와 스커트를 입고 예정일 2주 전까지 무리 없이 출퇴근을 했다. 만삭이었던 2월 한겨울, 무릎이 훤히 보이는 옷차림에 할머니께 등짝을 맞은 찌릿한 감각이 기억난다. 가슴보다 앞질러 나온 배 탓에 스커트 길이는 분명 더 짧아졌을 테니 칠순이 넘은 할머니께 혼나도 싸다. 그럼에도 ‘절대 종아리에 닿는 치마를 입을 순 없어! 작은 키에겐 최적의 비율을 무시한 코디라고.’ 옷장에는 20년 넘게 고수한 취향대로 미니스커트-롱스커트가 적당한 비율로 배치되어 있다. 차이가 큰 것들을 멀리 떼어 놓고 한쪽을 소거하는 방식이 아니다. 대비되는 사물과 환경을 나란히 또는 시차를 두고 배열한다. 경우의 수가 많을수록 촘촘하고 견고한 행복에 가까워진다고 믿는다.


압박과 긴장도 높은 평일엔 정해진 규칙이라는 외부 조건에 큰 영향을 받는다. 내 의지대로 조율 가능한 선택지가 적어 움직임을 작게, 최소한의 에너지만 소모한다. 맘껏 웃지도 화를 그대로 표출하지도 않는 정말 ‘숨만 쉬자’는 생각으로 안전한 평일을 보낸다. 주말엔 완벽히 내 것인 시간을 열심히 움직여 채운다. 토요일 아침 수업에 가는 길, ‘곧 도착’인 버스를 놓칠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숨 가쁘게 뛰어도 괜찮다. 에너지를 소진할수록 가득 채워지는 주말이 왔다. 점심엔 가볍지만 신경 쓴 티가 나는 메뉴를 고민하고 셋이서 여유롭게 먹는다. 회사에서 내 책상을 붙박이처럼 지키며, 혼자 먹는 매일의 ‘아삭햄치즈 샌드위치’와는 다르다. 오후엔 도보 가능 거리의 갤러리를 방문한다. 전시 관람 때마다 특혜인 듯한 개인 도슨트는 물론, 운이 좋으면 작가와도 직접 만날 수 있다. 불필요한 에너지 소진을 줄이고 효율을 끌어올려야 하는 평일과 달리, 주말은 나를 즐겁게 하는 새로운 좌표를 발견하려 전방위로 움직이며 손발을 크게 휘젓는다. 우연히 손끝에 걸리고 발끝에 차이는 기쁨을 만날지 모르니까.


출근길 가슴 한구석으로 서늘한 바람이 허락 없이 훅 드나든다. 코트를 여민 한 손엔 <장면들-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를 들고, 밤엔 <코스모스>를 잠들기 전까지 읽는다. 다른 날은 아이의 추천도서 <괴질:그해 비가 그치자 조선에 역병이 돌았다>와 토머스모어의 <유토피아>를 재독하고 있다. 대비되는 것들의 조합 안에서 나는 유연한 움직임을 회복하고 숨 쉴 틈을 찾는다. SNS 광고에 충동 구매한 요가링을 종아리에 꽉 끼우고 맥주를 홀짝이며 <컨택트(Arrival)>를 본다. 이번이 세 번째다. 헵타포드(Hetapod), 7개의 다리를 가진 외계 생명이 보낸 원형의 언어를 따라 쓰듯 내 미워진 무릎을 둥글게 매만진다. 인간-HUMAN인 나는 루이스가 되어 소통을 갈망한다. ‘난 진아, 김. 진. 아. 야!’ 내일은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를 봐야지. 두 편 모두 애정하는 영화지만 SF와 액션범죄라는 장르 차 때문에 드니 빌뇌브 감독 작품이라는 걸 최근에서야 알았다. 잠시 입고 넣어둔 짧은 치마를 월요일 출근길 입고 나선다. 신경을 쓰며 계단을 오르고 결국 불편하여 일하는 내내 무릎담요를 덮고 있겠지만 말이다. 대비되는 것들을 나열해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힘껏 손을 뻗어 선택한다. 벌린 간격만큼 의지를 확장하고 잊었던 내 모습 찾기의 기쁨이 숨어 있다.


November 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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