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또 오빠방 난방 켜두고 나왔더라?” 새벽 2시는 넘어 잠드는 남편이라 빈 방에 난방이 작동된 건 내 기상까지 길어야 4시간도 안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잔소리를 쏘아붙인다. 남편은 깜박한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근데,,, 난방 안 끄고 그냥 켜둔 채 지내면 안 돼? 난 한 겨울에도 집안에서 반팔 반바지 입고 사는 로망이 있어.”라며 대꾸한다. “난 나보다 더 추위 많이 타는 남자 당신이 처음이야. 나도 연애할 때 남친 외투 한 번 덮어보는 로망이 있었네.” 마음에도 없던 말로 유독 추위 많이 타는 남편 탓으로 돌린다. 난방을 잘 켜지 않는 나로 인해 우리 집이 추운 건 사실이다. 돌 즈음 아이의 심한 건성피부와 아토피로 실내 온도를 낮추고 생활해야 했다는 이유가 첫 번째 핑계였다. 그 후로는 아이는 학교로, 남편과 나는 회사로 평일 낮 빈집에 난방을 꺼두는 것이 내 기준에선 당연한 일이다. ‘기름 한 방울 안 나오는’ 우리나라에서. 보일러의 ‘외출’ 기능은 난방비 아끼는 나의 짠 내를 적당히 숨겨주고 합리적으로 포장해 주는 고맙기까지 한 버튼이다. 한 달 관리비 몇 만 원 더 나오는 걸 텐데 난 왜 집안 전체에 훈훈한 열기가 돌고 거실 바닥의 따뜻한 기운이 쾌적하게 느껴지지 않는 걸까.
남편의 뇌피셜에 따르면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이런 습성은 ‘몸에 밴 가난’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나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하려는지 본인의 경우도 하나 예시로 든다. 편의점에 가면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 있는 냉동고는 선뜻 열지 못했다며. 바, 컵, 콘 다양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골라잡는 건 술이 취했을 때나 술김에 부리는 달콤한 사치라고 한다. 내 몸에 밴 가난이라고? 대한민국 1997 외환위기, IMF 시대 당시를 고등학생이었던 나와 남편은 둘 다 분명히 기억한다. 사진작가로 작은 필름현상소를 운영하신 아빠를 둔 나는 부유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IMF 구제금융, 경제 위기 등의 말은 뉴스에서만 매일 보고 들었을 뿐 체감한 변화는 없었다. 아,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며 엄마가 장롱 깊숙이 보관한 오빠와 나의 돌 반지뿐 아니라 끼고 있던 묵주반지까지 농협에 내어놓아 집안의 금이 모두 사라졌을 뿐이다. 삶의 큰 굴곡이나 어려움 없이 살아온 나인데 ‘몸에 밴 가난’은 무엇 때문일까? 친정에 가면 우리 집보다 더한 찬 바닥을 느끼고 거실등만 겨우 켜놓아 집안에 들어설 때부터 눈이 어두침침하다. “불 좀 다 켜두시지. 보일러 안 틀었어? 내내 안 돌리다 틀면 난방비 더 나온대도요!” 남편이 들으면 분명 웃을 만한 말을 내 입으로 하고 있다. 내 몸에 밴 가난이 있다면 부모님으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은 짠 내 DNA 때문인 걸까. 유전자는 강하니까.
자타 공인 얼리어답터인, IT기기에 정보도 관심도 많은 남편 덕에 가전제품 중 혼수(婚需) 상태(?)로 갖고 있는 품목은 단 하나도 없다.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는 물론 멀쩡했던 TV는 벌써 몇 세대를 거쳐 갔는지… 가구는 신혼집부터 2년마다의 전세살이로 5번의 이사를 거치는 동안 조립과 분해의 반복으로 자연스럽게 교체되었다. 남아있는 건 이불뿐, 사계절용 이불과 겨울용 무거운 솜이불은 지금까지 수년간 함께다. 매일 살닿는 거니 1-2주마다 매트리스커버, 베개커버, 침대패드, 이불을 부지런히 세탁하고 건조하며 청결만은 유지한다는 위안으로 끌어안고 살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 바꾸자 하곤 버리는 것에도 돈이 드니 난 낑낑대며 다시 넣고 꺼내길 반복한다. 올해야말로 겨울이 오기 전 침구 전면 교체를 결정, 솜이불과 극세사이불 대부분을 방출하였다. 비싸다는 구스 침구는 아니지만 가격은 동급에, 세탁과 건조까지 가능한 실용성을 갖추었다는 침구 세트를 큰맘 먹고 가족 수대로 장만한 것이다. 처음 며칠은 움직일 때마다 특유의 사각사각하는 소리와 커다란 부피감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러다 금세 “역시 호텔 납품되는 침구가 맞네, 수면의 질이 달라졌어”라는 부녀의 너스레에 잘한 쇼핑이라며 뿌듯해한다. 언제까지 유지될지 모를 새하얀 구름 같은 이불이 내 몸 가득 따스히 안기는 기분이 좋아 애착 인형처럼 꽉 끌어안는다.
구매를 설득하는 말에 ‘괜찮아’ ‘필요 없어’ ‘지금이 좋아’ 자동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말로 방어하지만 나도 잘 알고 있다. 우리 집에 들어오면 결국 ‘없으면 어쩔뻔했어’라 할 만큼 잘 활용한다는 것을. 월수금 16시 고요한 집안에 홀로 동작하는 로봇청소기가 그렇고 8시 자동으로 열리고 21시 닫히는 모든 커튼과 블라인드가 그렇다. 요 며칠 남편은 물걸레청소기를 돌리는 날 보며 물걸레 겸용 로봇청소기의 필요성을 늘어놓는다. 핫딜가로 백오십만 원,,, 가격을 듣고 이후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당신 노동의 가치를 생각해 봐. 난 절대 비싸단 생각 안 드는데.” 날 위해주는 말이 진심이란 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무선이라 지금도 할만해.” 같은 대답으로 방어태세를 취하고 더 힘껏 청소기를 밀며 걸레질을 한다. 오늘도 후리스(fleece) 후드티 지퍼를 턱 바로 밑까지 잠가 올린 남편은 으으 추워~라는 말을 남기며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복슬복슬 털슬리퍼를 신고 탁탁 걸음 소리를 내며. 나이 한 살 더 먹었으니 올겨울은 몸에 밴 가난 한 조각은 털어내며 우리 집 실내 온도도 1도쯤 높여줘야겠다.
January 08,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