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첫 주말, 손대기 싫을 만큼 차가운 거실 유리창 가까이 선다. 손을 위로 뻗어 손가락 끝이 닿는 곳에 마스킹 테이프로 포인트를 정한다. 여기부터 시작이다. 높이 120cm가 되게 아래로 내려와 표시, 양옆으로 50cm씩 벌린 지점에 또 표시, 길쭉한 삼각형 모습을 한 가상의 크리스마스트리가 그려진다. 양쪽 빗변을 타고 내려오며 일정한 간격으로 흡착패드를 8-9개 붙여주면 앵두 전구 트리를 위한 틀 완성이다,,, 이대로면 너무 쉽지. 올해로 3년째 사용한 흡착패드가 유리창에 가만히 붙어 있질 않는다. 저격수 마냥 한 손에 헤어드라이어를 들고 정확히 겨냥, 열을 받아 말랑해진 흡착패드를 체중을 실어 유리창에 꾹 눌러 붙인다. 떨어지지 마 쫌,,, 주문을 외우며. 고요한 토요일 아침 요란한 드라이어 소리에 거실로 나온 아이는 “엄마 또 전구 트리 하네?” “왜, 싫다고?” “아니 좋지, 자꾸 떨어지지만 않으면,,,” 무덤덤한 표정에 뼈 있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아이가 어릴 땐 아이 키만 한 PE / PVC 소재의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 빨강 초록 골드 실버 색상별 오너먼트로 장식하던 때도 있었다. 설치하고 해체할 때마다 떨어지는 가짜 이파리와 반짝이를 쓸고 닦는 게 귀찮아 크리스마스트리는 한 번 만들면 새해를 넘겨 설날 직전 치우는 게 불문율이었다. 원하는 선물을 족집게처럼 맞춰 제때 배달해 주는 산타가 아빠 엄마인 걸 안다고 커밍아웃한 순간, 거추장스러운 크리스마스트리와도 미련없이 이별할 수 있었다. 드라이어와 줄자 마스킹 테이프를 발로 쓱 밀어낸다. 주렁주렁 앵두 전구가 달린 10M 줄을 흡착패드에 신중히 걸어 위에서부터 내려온다. 나름의 작업을 마치고 바닥에 앉아 대칭 상태를 최종 점검하는데 남편이 플러그를 원격제어가 가능한 스마트 콘센트에 옮겨 꽂으며 휴대폰 앱으로 연결을 확인한다.
“이제 켜본다 짜잔~” 나만 설렌 점등식 예고에 부녀는 거실 창 쪽을 한 번 바라봐 준다. 내 취향대로 장식없이 심플한 100알의 앵두 전구 트리가 유리창에 반짝이며 불빛을 낸다. “트리가 엄마 닮았다. 그치?” 정확하진 않아도 대충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는 남편의 한 마디, 난 아무 반격도 대꾸도 없이 가만히 트리를 본다. 시선을 사로잡는 대형 사이즈, 빈틈없이 채운 화려한 장식이 달린 트리가 아니다. 균형을 이뤄 지그재그 완만한 굴곡을 따라 이어진 전선에 단일한 조명 색 led 앵두 전구가 작게 매달려 있다. 깜박이는 속도를 달리한 몇 가지 모드가 있어 지루하지 않은 조금의 변화, 이 정도가 딱 좋다. 헤어드라이어를 수차례 조준하는 노력을 3년째 계속할 매력을 찾는다. 눈이 부셔 눈을 감게 만드는 강렬함이 아닌 오래 바라볼 수 있는 따뜻한 빛이라 좋다.
주위가 어두워진 밤엔 더 예쁘겠다 말하면서도 트리를 꾸미고 싶다던 아이의 바람이 떠올라 슬쩍 묻는다. “네 방에 놓을 작은 트리 골라 볼래?” “괜찮아, 크리스마스 지나면 어차피 넣어둘 건데 뭐.” 뜻밖의 반응이다. ‘아, 너도 이제 정말 십 대구나.’ 서운함이 들었다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사십 대의 감성이 십 대 보다 과한가 싶어 민망해진다. 저녁을 준비하려다 아이의 소행일 트리 아래 창틀에 나란히 놓인 스노우볼 여러 개와 포인세티아 등 자잘한 장식을 본다. 정신없게,,, 떨어져 깨지면 어쩌려고,,, 하는 잔소리가 나오려다 꾹 참아 삼킨다. 그래 서로를 위한 이쯤의 이해는 필요하지. 올해 역시 셋만의 조용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겠지만 평소보다 큰 볼륨으로 캐롤을 틀고, 날 닮은 트리를 마주한 식탁 위엔 가장 좋아하는 메뉴를 준비하기로 한다.
December 02,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