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금비에게; 세상만사 괜찮더라

송골매의 [세상만사], 장기하와 얼굴들의 [그건 니 생각이고]

by 금비

시험이 끝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복도를 걷는데 한 문제 틀렸다고 엉엉 울고 있는 애를 보면 너무 재수 없지 않으신가요? 저도 그런 애들 한 대 쥐어박고 싶습니다.


그런데 17살까지만 하더라도 제가 바로 그 ‘엉엉 울고 있는 애’ 였습니다. 왜 그렇게 유난이냐 싶으시죠? 겨우 한 문제 틀렸다고, 혹은 여러 문제 틀렸다고 뭐가 그리 슬프냐 하시겠지만, 그 땐 그게 그렇게 힘들었어요.

어릴 적 이야기를 해 볼게요. 저는 항상 ‘잘 하는 애’ 였습니다. 제 자랑이 아니라, 공부, 운동, 음악, 미술 등, 무엇을 하던 항상 평균 이상은 해 냈어요. 3살에는 한글, 영어, 숫자 다 혼자 떼고, 심지어 시계 보는 법도 혼자 동화책 보면서 터득했답니다. 이러니 제 부모님은 제가 천재인 줄 아셨나봐요. 별에 별 것을 다 시켜주셨습니다. 동네에서 교육에 관심 좀 있으면 보낸다는 영어 유치원부터, 창의력 수학, 미술, 피아노, 검도, 수영, 스키, 논술.. 뭘 했었는지 기억도 나지를 않을 정도로 다양한 것을 시켜주셨어요. 저도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웬만한 수업도 다 잘 따라갈 수 있었고, 선생님도 항상 칭찬해 주셨으니까요. 숙제를 잘 해가지 않았던 것만 빼면요.


어른들은 다들 절 칭찬했어요. ‘역시 금비야~’, ‘내 딸도 금비 만큼만 했으면 소원이 없겠어’, ‘금비는 당연히 공부 잘 하지?’, ‘금비 엄마는 좋겠다~’, ‘금비는 스스로 00도 한다며?’ 칭찬은 고래도 춤 추게 한다고, 모든 어른들이 절 칭찬해주니 요즘 말로 기분이 째졌습니다. 부작용은 어린 마음에 나 자신이 엄청 잘난 사람인 줄 알고 착각하고 살았다는거? 지금 생각해도 좀 재수없는 꼬맹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생 때는 항상 왕따였던 것 같네요 하하.


하지만 제게 붙여지는 수식어의 무게만큼, 제 부담감도 커져만 갔습니다. 더 이상 저런 칭찬이 더 열심히 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닌, 저를 채찍질하는 무기로 변해갔어요. 나는 잘 하는 애니까 뭐든 잘 해야 할 것만 같았고, 나는 모범생이니까 항상 말 잘 듣는 애야 할 것만 같았고, 나는 어른스러운 애니까 어리광따위 부리면 안될 것 같았어요. 특히 공부에 있어서는 그 압박감이 더욱 심했던 것 같아요. 시험 성적이 조금이라도 낮게 나온다면 사람들이 절 봐주지 않을 것만 같았죠.


어쨋든 공부 좀 하는 초딩은 기숙사가 있는 말로만 대안학교인 곳으로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학교를 가게 된 이유도 웃겨요 참. 대안학교라 간 게 아니라, 같은 동네에 사는 어떤 언니가 그 학교에서 용인외대부고로 진학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내주신 겁니다. 어찌어찌 입학 면접에 합격한 저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2학기, 첫 중간고사를 맞이했습니다. 수학 성적은 88점이었죠.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학원에서 풀었던 시험 문제도,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주신 문제들도 쉽게 풀던 제가 88점을 받다니, 마치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그 순간 제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찼습니다. 당시 저는 학벌에 대한 집착이 심해서 '첫 수학 시험을 망쳤으니 1등은 물 건너갔고, 망친 점수는 절대 회복할 수 없을 거야. 내신도 끝났고, 명문 고등학교에 못 갈 거야. 그러니 명문 대학에도 못 갈 테고, 결국 돈도 많이 못 벌겠지' 같은 바보 같은 생각들로 머리가 꽉 차버렸습니다. 혼이 날까 두려운 마음으로 간 수학 학원에서 쌤은 어쩌자고 이렇게 쉬운 걸 틀렸느냐부터 시작하여, 초딩 때 너보다 수학 못하던 애는 지금 중3 거 나가고 있는데 너는 어쩔거냐 하는 비교까지. 너무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심지어 학교에서는 수학 선생님께서 중간고사 점수를 묻는 질문에 88점이라고 답하니 ‘너가?’라는 답변이 돌아오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두려워했던 상상이 현실이 된 거죠. 공부 좀 하는 게 유일한 자랑거리였는데, 한 번 실패하니 주변인들이 실망하더라고요. ‘금비 너가?’, ‘어쩌자고 그랬어’, ‘그러니까 문제 좀 잘 읽지’. 물론 지금의 임금비라면 ‘어쩔’하고 무시할 수 있는 시선과 말들이지만 어린 금비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이 절 사랑하지 않을 것 같았고, 무시할 것만 같았어요.


어느순간 저는 ‘잘하는 금비’가 아닌 ‘잘 해내야만 하는 금비’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시험에서는 항상 1개씩 틀렸고, 최대 등수는 2등이었어요. 시험기간에는 눈이 퉁퉁 불어 있는 것이 일상이었죠. 그리고 못나게도, 항상 1등을 하는 친구를 질투하고 못미더워했어요. 친한 친구였지만 동시에 속에서는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었죠. 뭐든 저 보다 더 잘 했고, 심지어 성격도 좋아서 모든 아이들이 그 앨 좋아했어요. 반면 만년 2등인 저는 못생기고 뚱뚱해서, 그리고 여자애가 드세다는 이유로 입학하자 마자부터 선배들에게 욕을 들었고, 친구들과도 친하지 못했죠.


나는 왜 이럴까. 1등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른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비호감에, 못생기고, 뚱뚱하고, 사람들은 날 싫어하고. 점점 자기혐오의 늪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상태로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어요.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못했습니다. 외고나 국제고에 가야지 어쩌려고 대안학교를 가느냐, 대학은 안가려고 그러는 거냐 등. 이우고를 선택했던 건 더 이상 사회의 기준에 저를 맞추고 싶지 않아서 였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모진 말들을 해대니 또 다시 나를 증명해야 할 것 같았어요. ‘대안학교에 가서도 역시나 명문대를 간 임금비’가 되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또 다시 저를 혹사시켰어요. 그리고 당연히도 고1 첫 시험이 끝나고 또 다시 펑펑 울고 말았죠. 사람들이 날 안 좋게 보면, 내 선택을 비난하면, 가족들이 실망하면 어쩔까 무서웠어요. 다행인 건 이우학교 사람들은 제가 문제 하나 틀렸다고 뭐라 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조금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그리곤 혼란의 18살 설을 맞이했습니다. 왕십리 할머니 댁에서 TV를 보던 중, 화면 가장 밑부분의 작은 광고글을 발견했습니다.


KBS 설 대기획 송골매 콘서트 40년만의 비행 - ‘장기하 출연’


저는 송골매가 누군지도 몰랐어요. 그저 영원한 제 마음 속 1순위 장기하님이 출연한다는 말에 혹해 송골매 콘서트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가 흘러나오자 마자 송골매 팬이 되어버렸지만요 하하. 송골매의 노래의 매료된 저는 누가 뭐라든 열심히 엉덩이 붙이고 앉아 노래를 감상했습니다. 그리곤 나와버렸어요. <세상만사>가.


세상 모든 일들이 되다가도 안되는 것

재수란게 그런거지 있다가도 없는거지

내가 지닌 얘기들을 내 스스로 엮는다면
세상살이 모든것이 그 얼마나 즐겁겠소


가사를 곱씹었습니다. 그리곤 드디어 깨달았죠. 세상의 모든 일은 당연히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던 나의 바람이 재수 있음 이뤄질 수도, 재수 없음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힘들었던 짧은 시절 또한 먼 훗날 바라본다면 여전히 즐거운 이야기라는 것을.


하지만 역시 17년의 세월 동안 들어온 말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는지 그럼에도 저는 주변의 시선이 두려웠어요. 그런 현실에서 잠시나마 도망치고자 유튜브를 보던 제게 오랜만에 장기하와 얼굴들의 공연 영상이 떴습니다. 도파민에 절여진 제 손가락은 바로 그 영상을 틀었고, ‘그 가사’가 나왔습니다.


내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니가 나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걔네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아니면 니가 걔네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그건 니 생각이고


또 곱씹어보니깐 그런거에요. 내가 뭐든 잘 할 거란 것도, 내가 ‘탄탄한 앨리트 코스’를 밟을 거라는 것도, 내가 그런 기대를 무시하고 대안을 선택한 게 실수일거라는 것도 모두 ‘니 생각’이었던 거에요. 그건 내 생각이 아니었죠. 나도 인간이기에 못하는 것도, 미흡한 부분도 있는 거고, 탄탄한 앨리트 코스만이 내 길은 아닐 것이라 믿고, 대안을 선택한 게 절대 실수가 아니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누가 뭐래도 난 열심히 살거고, 내 밥 값 하면서 살거에요. 내 생각을 믿고 내 인생을 꾸려나갈거에요. 니 생각 따위에 휘둘리지 않고. 그러니 상관 좀 마세요!


그리고 19이 된 지금, 어린 금비를 만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짧은 인생 살아보니 조금 무너져도,

기대에 못미쳐도, 실패해도 괜찮더라.

남들 시선과 말에 휘둘리지 말고,

높은 기준으로 너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너지지 말고, 힘듦을 발판 삼아 뛰어오르면 돼.

걱정 말고, 니 생각 대로 해. 알겠지?


비록 타임머신이 없어 어린 금비에게는 저 말을 해주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저에게는 자주 속삭이고 있어요. 물론 여전히 제 기준에 못미더운 저 자신을 바라볼 때 화가 나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그럴 때 마다 <세상만사>를 틀며 내 멋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인정하고, <그건 니 생각이고>를 들으며 ‘개썅마이웨이’의 마음가짐을 다집니다. 또, 저 자신을 다독여주기도 하고요.


긴 글 마무리하며, 이것도 '니 생각' 이지만 한 마디 얹어볼게요.


우리, 힘든 일 닥쳐오면 세상만사라며 인정하고,

누가 뭐라 하면 그건 니 생각이라며 짜증 좀 내봅시다!



송골매의 [세상만사]
장기하와 얼굴들의 [그건 니 생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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