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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우진 Aug 10. 2023

어느 잡지 에디터

박찬용 에디터

2021년 여름, 취업을 준비하며 네이버에 에디터를 검색했다. 수많은 정보 중 박찬용 에디터라는 사람이 과거, 브런치에 발행한 글을 골랐다. 내 친구와 이름이 같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동료의 직종 변경과 높지 않은 연봉을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해 그런데도 업을 이어 나가는 이유에 대해 밝혔다. 재화에서 벗어나 본인이 하는 일을 진지하게 살피고 표명하는 태도가 여느 회사원과는 달랐다. 전문을 읽고 난 다음 날부터 아무것도 모르면서 에디터라는 직무에 적극 지원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멋있더라.


그의 생활

과거, 스스로 무명이라 칭하던 ‘박찬용’ 이름 석 자가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외우게 된 에디터다. 완전히 그의 영향으로 동일한 직업을 가졌다고 말하기에는 머쓱하지만, 한 가지 도움은 확실하다. 덕분에 어떤 태도로 이 일에 임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의식한다. 지금도 내 업을 정의할 단어를 찾아 해맬 때면 어김없이 그의 글을 찾는다. 기꺼이 뺨 한 대 맞겠다는 다짐이다. 업계 선배로서 전하는 절절한 응원의 메시지나 에디터로서 자긍심을 가지자는 거룩함 같은 건 없다. 애초에 원하지도 않는다. 그는 오히려 건조하고 개인적이다.  


나는 매번 박찬용 에디터가 발행한 글 속에서 내게 대입해 볼 태도를 찾는다. 특히 그가 지닌 특유의 시큰둥한 진지함은 나를 침착한 번뇌로 이끈다. 예를 들면 이런 단락이다.

요기요 디스커버리, 마지막 레터 中
“나는 몇 년 전 모 언론사 기자 경력 공채의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 그때 마지막 코멘트에서 나는 그 회사 사장님을 바라보며 말씀드렸다. 귀매체에서 일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어딘가에서 내 저널리즘을 계속 하고 있을 거라고. 요기요 디스커버리와의 영광스러운 2년을 마치는 지금 그때가 생각난다. 뉴스레터든, 잡지든, 아니면 어디에서든 나는 어딘가에서 나의 정보를 계속 만들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쓸모 있고 예쁜 걸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박찬용 에디터가 실제로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정말로 이러한 관념으로 업을 이어 나가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어떻든 상관없다. 적어도 텍스트를 통해 만난 그는 이렇게 시큰둥하면서도 진지하게 본인을 서술한다. 대단하게 표현하지 않기에 감히 나도 같은 생각을 머릿속에서 굴려 볼 수 있다. 감사한 일이다. 개인적으로 영웅 코스프레라면 질색인지라 딱히 드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 그의 태도가 퍽 좋다.  



내 저널리즘

위에서 그가 말한 ‘내 저널리즘’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굳이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이 업 안에서 정의한 자신의 것이 분명히 있다는 것처럼 들린다. 허황된 해석일 수도 있겠다마는 뭐, 어쩌겠나. 제작자가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은 이상 해석의 주도권은 대중에게 있고 지금 내 위치는 대중1이다. 다시 돌아와서 나는 그가 서술한 ‘내 저널리즘’ 같은 것을 동태 눈깔을 하고 찾아 헤맸던 적이 있다. 이건 한때 박찬용 에디터에 기대어 직업을 넘어선 내 것에 대해 고민했던 나의 이야기다. 관심이 없다면 신나게 스크롤을 내려도 된다.


2021년에 나는 에디터를 출근하는 작가라 여겼다. ‘글을 시장에 내놓으면 작가다.’라는 멍청하고 단순한 등가교환으로 회사에서도 내 것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하며 이 업에 뛰어들었다. 전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 순간부터는 노동의 모멘텀을 찾지 못해 어려워했다. 심지어 일면식도 없는 건축 매거진에 몸을 던졌으니 매 순간이 장미밭을 구르는 듯 따가웠다. 잘 알지도 못한 채 몸부터 움직인 것은 나니까 응당한 일이다. 그나마 당시에 내게 직접적으로 방법을 일러주었던 회사 선배 에디터분들 덕분에 올곧게 고통을 견뎌낼 수 있었다. 다만, 1년을 꼬박 채운 날이 다가오자 헷갈렸다. 내가 뭘 하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더 할 수 있는 것인지 말이다. 당장 기사 하나 더 기획하거나 전문 지식을 익혀야 할 시기에 노동자로서 존재 이유를 고민했다. 낮은 연봉이나 어려움에서 기인한 심각한 반추는 아니다. 그냥 오래도록 스타벅스에서 벤티 사이즈를 주문할 수 있으려면 ‘에디터’라는 모호한 명사 안에서도 나를 적확히 설명할 개인적인 단어가 필요했다.


존재를 잃은 시기에 박찬용 에디터를 다시 찾았다. 과거에는 그가 적어 둔 정보를 훑었다면 이때엔 본인을 서술한 단락이나 페이지 최하단에 있는 소개글에 집중했다. 그중 내가 잘 이용한 것이 하나 있다. “제가 생각하는 제 직업은 글쓰는 일이 아닙니다. (…) 간단히 말하면 페이지를 채워 뭔가 전하는 일입니다. 글은 페이지를 채우는 방법 중의 일부고, 마침 저는 그걸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림이나 디자인을 잘 했다면 다른 방법으로 페이지를 채웠겠죠.” 거인의 어깨를 빌려 손 쉽게 고민을 해결해 보고자 이 말의 곳곳에 내 것을 끼워 넣어 봤다. ‘페이지’를 ‘화면’이나 ‘공간’, 또는 '브랜드'로 바꿔 보기도 하고 ‘뭔가’를 ‘이야기거리’나 ‘경험’으로 채워봤다. 이 외에도 다양한 단어를 욱여 넣었고 꽤 효과가 좋았다. 그가 완성도 높게 뱉은 문장 덕에 생각보다 깨우침이 빨랐다. 종이에 글을 쓰지 않아도 에디터가 될 수 있었고 내가 탐내는 것은 지면 너머에 있었다. 이후 나는 속 편히 잡지를 떠났다. 편집하는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활자를 이용해 기사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기획하고 만드는 에디터로 살고 있다. 여전히 완벽하게 내 것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뭐 어느정도 갈피는 잡았다. 어쩌면 스타벅스 벤티를 넘어 새로 나온 트렌타 사이즈도 꽤 오래 즐길 수 있겠다.


나는 지금도 그의 글 안에서 또는 기사 말미에 적어 둔 ‘박찬용’을 스스로 정의한 단락을 좋아한다. 무관심을 인지하는 듯 시큰둥하면서도 자유로운 서술과 절절한 감성으로 보이지 않으려 선택한 나름 따뜻한 단어가 유쾌하다. 무엇보다도 매번 매체나 결과물, 또는 시기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는 정의가 흥미롭다. 지금껏 내가 수집해 온 것 중 몇 가지는 이렇다.

- 기사 [두아 리파도 주목하는 ‘뉴스레터 서비스’] 中
나는 풀타임 잡지 에디터로 일할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직업을 (동영상이 아닌) 정지 화면 페이지 프로듀서라 생각하며 일해오고 있다. 종이 잡지라 치면 그 잡지 전체를 프로듀스하는 게 내 일이다.
- 요기요 디스커버리, [모던 감귤] 편에서 에디터로서 소개
잡지 에디터. 소비생활 곳곳을 구경하고 돌아다니며 글과 글 아닌 것으로 이루어진 페이지를 만든다. 세상에 재미없고 의미 없는 이야기는 없다고 확신한다. 현재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고, 단행본 작업 스케줄이 계속 늦춰져 연일 관계자들께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
- 각종 도서 구매 사이트에 사용된 저자로서 소개
(…) 2009년 12월부터 라이프스타일 잡지 에디터로 일했다. 일했던 5개의 매체 중 지금까지 출판되는 잡지는 《크로노스》와 《에스콰이어》 정도다. 직업 덕에 도시 생활의 여러 면모를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기까지 대가를 치러야 했다. 나름 균형을 잡는 과정에서 많은 걸 잃었다. 심야의 올림픽대로와 강남권의 아주 매운 야식과 고타르 담배와 함께 젊은 날을 보냈다. 그러다 저자가 됐다. (…)

잡지를 동경해서 일을 시작했다. 뭘 하는지 모르니까 이걸 하면 뭔가 멋있게 살 줄 알았다.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잡지 제작이라는 일 자체를 좋아하게 됐다. 신기한 걸 구경할수록 일상이 수수해졌다. 잡지 에디터를 둘러싼 세간의 편견과 반대로 살게 됐다. 저축 열심히 하고 술은 거의 안 마신다. 2010년대의 한국에서 잡지 에디터로 일하는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실에 감사하며 늘 최선을 다 하려 노력한다. 다 같이 만든 결과물을 보면 여전히 감격한다.

정지 화면 프로듀서라는 말은 특히나 반갑다. 해낼 수 있는 업의 한계를 한껏 넓힌 듯하다.  

큰 사건이 터지지 않는 이상 이름 없는 에디터로 살고 있는 내가 그를 독대할 확률은 희박하다. 그런 이유로 이곳에라도 감사함을 남긴다. 박찬용 에디터도 맛있는 점심 드시고 좋은 하루 보내시길. 아래는 그를 쫓은 내 소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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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점령한 공간과 브랜드, 그리고 사람을 이야기로 잇는 일을 한다. 그게 글이나 사진으로 채워진 화면일 때도 있고 공간인 순간도 있다. 2021년,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에디터가 되었다. 교수님이 디자인에 이야기는 필요 없다고 하셔서 디자인을 버렸다.


건축 재료를 소개하는 감 매거진에서 글을 다루는 에디터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크리에이터를 위한 워크&라이프 커뮤니티, 로컬스티치에서 콘텐츠 외에 브랜드와 공간도 기획하며 고군분투했다. 가장 최근, OTA 서비스 여기어때에서 프리미엄 호텔을 소개하는 ‘Black Editor Note’를 쓰고 데이터를 보며 널리 알리는 일을 아주 잠깐 했다. 지금은 해야 하는 일을 드디어 찾았다고 재수없게 자부하며 구직에 열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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