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석_배려의 자리

세월의 의자.

by 안명심

전철 문이 닫히자 객차 안의 공기가 가볍게 떨렸다. 철로를 따라 규칙적인 진동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와 온몸을 울린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경로석에 앉는다. 언젠가부터 몸과 눈이 먼저 이 자리를 찾게 되었다.


처음 경로석에 앉았을 때는 어색함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여전히 젊다고 생각되었던지

'아직 네 자리가 아니야'라는 속삭임 때문이었다


전철이 급히 흔들릴 때마다 다리가 제 역할을 놓치고, 손잡이를 붙잡는 힘마저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을 때 나는 스스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나도 여기에 앉을 나이가 되었구나.’



지팡이를 두 손으로 꼭 쥔 노인이 눈을 감은 채 흔들림을 견디고 있다.

나는 창밖의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바라본다.

건물 외벽에 비친 햇살이 번쩍 스치고, 곧 어둠 속 터널이 찾아온다.

마치 젊음과 노년이 교차하는 내 삶의 풍경 같다.


아이를 품에 안은 젊은 엄마가 객차에 오르면,

무심히 앉아 있던 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말없이 내어주는 그 몸짓이 짧은 울림처럼 퍼졌다.

나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언젠가 나 역시 젊은 날에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주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때는 당연한 일이었는데,.

이제는 그 자리를 받는 쪽이 되었다.

주고받는 시간이 돌고 돌아,

결국 우리 모두를 같은 길 위에 세웠다



경로석에 앉아 있으면 객차 안의 숨결도 다르게 들린다.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군 채 잠든 모습,

이어폰 너머로 새어 나오는 음악,

스마트폰 위에서 바삐 움직이는 젊은 손가락.

스피커폰임에도 큰소리로 통화하는 노약자.

나는 그들의 고단함과 상황을 이해한다.

나도 한때는 그랬을 테니까!

다만 누군가 힘겹게 들어설 때,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만큼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작은 움직임이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따뜻한 언행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는 단순히 늙은 몸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세월을 견딘 사람들,

무게를 짊어진 이들,

다음 세대를 품어 안는 이들이 잠시 머무는 자리다.


나는 이 세월의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내 안의 젊음을 보내고 세대를 맞이하는 마음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전철은 여전히 흔들리며 다음 역을 향한다.

나는 오늘도 그 흔들림 속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경로우대석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더 이상 쑥스러움이 아니라,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세월의 증거로 느껴진다.

그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삶이 남겨준 권리이자,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 작은 위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