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시,긴 여운

산책로에서 시민들의 마음을 읽다

by 안명심


세 줄이면 충분했다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엿보고, 그 마음의 결에 가만히 손을 포개기에.


우리는 흔히 위대한 예술을 거대한 미술관 안에서만 찾으려 하지만, 진정한 울림은 이렇듯 가장 평범한 일상의 언어에서 터져 나온다.

지난주, 늦가을의 스산함이 내려앉은 미술관 산책로에서 나는 '안산'이라는 도시의 진짜 속살을 만났다.

시민들이 직접 써 내려간 세 줄짜리 시들. 그 투박하고 진솔한 시패(詩牌) 하나하나가 발길을 붙잡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려주고 있었다.

​이 멋진 전시는 안산 시장님과 시의회 의장님의 따뜻한 초대글로 시작된다.

'안산여성문학회'에서 십수 년이 넘도록 해마다 꾸준히 이어온 뜻깊은 행사다.

예술을 시민의 곁으로, 일상 속으로 가져오려는 그 끈질긴 노력이 도시 전체의 진심이 되어 뿌리내린 것이다.




그저 장식품이 아니라,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모두가 함께 누리는 살아있는 예술. 그 깊은 역사를 확인한다는 생각에 '시찰'에 나서는 발걸음이 조금 더 묵직해졌다.

​단순한 산책이 아니고,

안산이라는 도시의 다채로운 지도를 마음으로 걷는 일이었다.

어떤 시패에는 주말 오후 아이 손을 잡고 찾았던 화랑유원지의 맑은 웃음소리가 담겨 있었다.

또 다른 시에는 대부도의 짭조름한 바다 냄새와

낙조를 바라보던 순간의 상념이,

어느 시에는 와 스타디움을 가득 채웠던 뜨거운 함성이 세 줄의 언어로 응축되어 있었다.

미처 몰랐던 풍도의 숨겨진 비경을 노래한 시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곳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세 줄에는 거창한 미사여구나 현학적인 은유가 없었다.

이것은 안산이라는 터전 위에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진짜 목소리였다.

우리는 그 짧은 글 속에서 놀랍도록 닮아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공감이 아닐까.

​시패들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는 일은,

이 도시에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안부를 묻는 일과 같았다.

얼굴도 모르지만, 우리는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기쁨을 느끼며 살아간다.

시는 결코 특별한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터져 나오는 감탄, 한숨,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다짐. 그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음을 이 산책로는 증명하고 있었다.

​이 특별한 시들은 1년 동안 이곳, 김홍도미술관

경기미술관 산책로에 머문다.

만약 안산을 찾을 계획이 있다면, 혹은 이 도시의 진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주저 없이 이 산책로를 권하고 싶다.

거대한 랜드마크를 둘러보는 것보다 더 깊은 안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벤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혹은 그저 천천히 걸으며 이웃들의 마음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보시라.

가장 짧은 시가 주는 가장 긴 여운이,

당신의 발걸음을 분명 따뜻하게 붙잡아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