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다는 말로는 부족한

빛의 파편을 줍는 빈손의 여행

by 안명심


나의 눈꺼풀은
지난 삼 박 사일의 여정 동안 광저우와 마카오라는 거대한 도시가 쏘아 올린 빛과 인파의 파편들로
가득 차 새벽이 될 때까지 감길 수 없었다.
이토록 눈부신 무게를 얹어준 도시들은 마치 살아있는 필름처럼 내 가슴을 끊임없이 재생시켰다.


멈춰 선 시간과 찰나의 긴장

​광저우 심천 공항에 도착해 예정된 호텔에 체크인 후 작은 반전을 만났다. 일행 중 한 명의 캐리어가 똑같은 디자인의 가방에 의해 감쪽같이 바뀐 것이다.

낯선 타국에서의 짐 분실은 곧바로 심장을 얼음물에 담근 듯한 차가운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CCTV를 통해 우리 측의 사소한 실수로 확인됐을 때 긴장감은 맥 빠진 웃음으로 변했다.

이 에피소드는 광저우에서의 첫 발걸음이 완벽한 계획을 비켜난 인간적인 틈과 함께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나는 곧장 역사와 인파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밀랍인형 전시관에서 마주친 유명 인사들의 얼굴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영원의 거울 속에 갇힌 듯했다. 그들의 눈빛은 너무도 생생하여, 살아있는 인간의 호흡과 정지된 밀랍의 부동(不動) 사이의 묘한 간극이 느껴졌다. 잠시 그들의 완벽한 복제 앞에서 가짜가 진실보다 더 진짜처럼 느껴지는 기이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그곳은 시끄러운 현실 세계와 단절된 채, 역사의 한 장면이 고체의 응축처럼 얼어붙어 있는 곳이었다.




​저녁이 되자 도시의 열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옛 거리와 이소명동 거리의 터져 나올 듯한 인파의 파동은 발끝에서부터 빠르게 열기를 올렸다. 사람이 가장 많다는 명동 거리에서 나는 도시의 심장이 박동하는 소리를 온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켄톤타워(Canton Tower) 107층 전망대로 솟아올랐다. 발밑으로 펼쳐진 광저우는 문득 숨을 멈춘 거대한 은반처럼 내려다보였고, 인파 속에서 얻은 피로를 순식간에 씻어주었다.



빛의 향연과 아쉬움

길이 2,320km의 주강 위에 유람선을 띄웠을 때, 세상의 모든 빛이 강물 위로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강물은 숨 쉬는 벨벳처럼 흐르고, 도시의 불빛은 천 개의 유리 파편이 되어 파문마다 금가루를 뿌렸다. 빌딩들은 젖은 구리처럼 어둠 속에서 빛을 반사했다.

​나의 눈은 이 황홀을 모두 담지 못해 아우성쳤다. 감각적인 기억의 용량은 한계가 있었고, 이 찬란한 풍경 앞에서 나는 단 하나의 불빛도 가져오지 못했다.



​해심사와 천고정에서 장예모 감독의 장엄한 예술 세계와 마주했고,

이소룡 거리에서 그의 강렬한 사진들을 감상하는 시간은 과거와 현재의 에너지가 교차하는 여운을 남겼다.




오페라하우스와 수직 상승하는 시선

​바다를 곁에 둔 도시의 첫인사는

해의 오페라하우스였다. 바다와 맞닿은 곳에 놓인 두 개의 거대한 조개 모양 건물은 마치 밤바다에 내려앉은 두 개의 영롱한 흰 진주 같았다.

조각가의 손에 의해 순간적으로 얼어붙은 파도처럼 매끄러운 곡선은, 그 안에 어떤 웅장한 소리를 침묵 속에 담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예술의 정지된 형태를 감상한 후,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케이블카가 공중으로 상승하자, 방금까지 발 딛고 있던 도시의 풍경은 장난감 블록처럼 작아지며 시선이 수직으로 상승하는 해방감을 선사했다.

빽빽한 빌딩 숲과 산의 녹음이 대비되는 모습은 마치 자연이 도시에게 내미는 푸른 손 같았다.


​ 마카오의 밤은 광저우와는 또 다른, 화려하지만 퇴폐적인 황금색 욕망의 냄새를 풍겼다.

거대한 호텔들이 뿜어내는 조명은 마치 하늘을 받친 샹들리에처럼 밤하늘을 수놓았다.



​마카오 여정의 백미는 분수쇼였다.

셀린디온의 노래에 맞춰 수백 개의 물줄기가 하늘로 솟구쳤다가 떨어지는 순간, 그 모습은 수많은 은빛 칼날들이 밤의 장막을 찢고 튀어 오르는 듯 격렬하고 아름다웠다. 분수가 최고 높이에 도달했을 때의 웅장함과, 이내 잔잔하게 떨어질 때의 애잔함은 찰나의 예술이었다. 내가 주강에서 놓쳤던 '수은' 같은 아름다움이, 이곳에서는 물줄기가 되어 잠시나마 중력에 의해 붙잡힌 듯 느껴졌다. 나는 그 물방울 하나하나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기 전에 영혼에 새기려 애썼다.



빈손의 충만함

​밀랍 인형의 정지된 눈빛, 캔톤 타워의 은반,

주강 야경의 금실,

오페라하우스의 침묵하는 조개, 그리고 마카오 분수쇼의 은빛 칼날들.

​결국 단 하나의 불빛도 가져가지 못하는 빈손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정한다.


하지만 물리적인 소유는 없더라도,

나의 무거운 시간들은 이 모든 풍경들을 압축하여


심장의 필름에 선명한 자국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