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의 무늬를 사랑하는 법
우리의 생은 언제나 떠나보내는 일에 능숙해져야만 하는 환절기의 반복이다.
무언가 차오르면 반드시 무엇인가가 비워졌고, 손바닥에 남은 온기가 채 식기도 전에 풍경은 계절의 옷을 갈아입었다.
이별이란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가장 연약한 지층을 깎아내어 단단한 화석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이 모든 이별의 시작은
'소녀인 나'와의 작별이었다.
꽃잎처럼 보드랍던 꿈과 세상의 모든 비린내를 향기로 믿었던 무구한 소녀는
어느 날 아침 거울 앞에서 낯선 타인처럼 서 있었다.
성장이란 이름의 도둑에게 내 소중한 소녀 시절을 내어주게 된 것이다.
발목이 굵어지고 목소리에 높낮이가 생길 때마다,
내 안의 소녀는 조금씩 짐을 싸서 떠나갔다.
이제 그 소녀를 박제된 사진 속에서나 마주한다.
그녀가 떠난 자리엔 타협이라는 능숙한 가면만이 남았다.
'사랑'이라는 열병의 퇴장도 있었다.
심장을 도려낼 듯 아팠던 그 이름들,
밤을 지새우며 써 내려갔던 연서들은 시간이 흐르자 그저 '오타'처럼 희미해졌다.
지우려 애쓰지 않아도 삶이라는 문장 속에서 자연스럽게 교정되어 버린 사랑의 기억은,
이제 날카로운 칼날이 아니라 둥근 조약돌이 되어
내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사랑이 떠나간 자리엔 그 사람의 그림자만 길게 남았다.
'친구'와 '시절의 벗들' 또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포말처럼 흩어졌다.
영원을 맹세하며 어깨를 맞대던 그 시간들은 이제 단톡방의 무미건조한 알림음으로 남았다.
그들은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이라는 이름의 섬으로 유배된 것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안부가 궁금해질 때쯤 우리는 이미 서로의 배경으로 물러나 있었고,
그 소원함은 이제 배신이 아닌 안도감으로 다가온다.
가장 묵직한 이별은 '아이들의 성장'이었다.
한때 내 몸의 일부였던,
내 심장 소리에 맞추어 잠들던 그 작은 생명들이
어느덧 문밖의 공기를 더 그리워하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알았다.
부모란 아이들이 스스로의 우주로 날아갈 수 있도록 기꺼이 자신의 중력을 포기하는 존재임을.
아이들이 제 갈 길을 찾아 떠나갈 때 내 어깨에 남은 것은 아이들의 무게가 아니라, 그들이 비우고 간 자리의 광활한 고요였다.
가장 시린 이별은 혈육의 부재였다. '형제의 죽음'은 내 유년의 절반이 뜯겨나가는 고통이었다.
함께 자라며 공유했던 그 수많은 골목길의 비밀과 사소한 다툼의 기억들이 이제는 나 혼자만이 짊어져야 할 짐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엄마와의 이별'.
그것은 내 세상의 지붕이 날아가는 일이었다.
엄마라는 거대한 우주가 소멸했을 때,
나는 비로소 이 세상에 홀로 던져진 완전한 고아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엄마의 부재는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내가 돌아갈 수 있는 모든 문이 닫혀버린 절벽의 감각이었다.
이 사실은 지금도 때때로 못 견디는 복받침으로
올라오기도 한다
이 모든 떠남은 비극의 서사가 아니라,
잎이 져야 열매의 속살이 보이고, 물이 빠져야 갯벌의 숨구멍이 드러나듯,
나를 떠나간 것들은 역설적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그리고 내가 그들을 얼마나 뜨겁게 품었었는지를 보여주는 훈장이다.
이제 나를 떠나는 것들의 뒷모습에 손을 흔드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것은 비단 타인을 보내주는 행위가 아니라,
남아있는 나 자신을 온전히 껴안는 의식이다.
비워진 공간만큼 더 깊게 숨 쉴 수 있고,
사라진 소음만큼 나의 내면에 고인 미세한 울림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나의 환절기여!
기꺼이 내 몸을 지나가라.
이제 떠나는 것들을 붙잡는 대신,
그들이 머물다 간 자리의 무늬를 사랑하며,
그 여백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