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나 사이

서툰 숨 고르기

by 안명심
왜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할까




세상의 속도는 빛처럼 빠른데,

낡은 태엽 시계처럼 삐걱거리며 멈춰 서 있는 기분. 어제까지 나를 지탱하던 문장들이 힘없이 흩어지고

그 자리엔 서늘한 무력감만이 고인다.


​최근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 보려 AI로 전자책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의욕은 앞섰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화면 속의 낯선 용어들은 마치 외국어처럼 겉돌고,

좁은 모니터에 웹브라우저와 AI 툴

디자인 프로그램까지 두세 개의 창을 겹쳐 띄워놓고 곡예를 하듯 오가야 했다.

단축키를 누르는 손가락은 갈 길을 잃어 자꾸만 엉뚱한 창을 열었고,

내용을 복사하고 붙여 넣는 단순한 반복 작업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배경에 근사한 그러데이션 효과 하나 주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한 기술이라고, 미세한 색 조절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기만 했다.


남들은 쉽게 건너는 징검다리를 나만 발이 빠진 채 허우적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왜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할까"라는 자책은 이내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스스로를 찔러댔다.

배움의 설렘은 간데없고, 기계 앞에서 작아지는 나를 보며 깊은 실망감에 잠기기도 했다.





​하지만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도 때로는 느슨하게 풀어져야 다음 화살을 낼 수 있는 법이다.


'잘해야 한다'는 과도한 압박감이 오히려 내 안의 본모습을 짓누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AI 앞에서 버벅대는 나의 서툶은 무능함의 증거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기 위해 기존의 나를 비워내는 과정인 것이다.

꽉 찬 컵에는 더 이상 물을 담을 수 없듯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이든 다시 채울 수 있는 백지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악보 위에서 쉼표는 소리의 단절이 아니라,

다음 선율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기 위한 가장 고요한 준비다. 이제 이 무력감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기로 한다. 대신 그 텅 빈 공간에 가만히 앉아 내 안에서 번지는 작은 울림에 집중한다.

비어 있기에 비로소 타인의 서툰 걸음이 보이고, 낮아졌기에 창가에 머무는 햇살의 온도가 더 절실하게 와닿는다.


​오늘도 여전히 기계 앞에서 헤매고, 때로는 자책의 늪에 빠지겠지만 스스로를 윽박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비어 있는 방에 햇살이 가장 깊숙이 들듯,



무력감은 다시 시작될 아름다운 문장을 위한 가장 담백한 여백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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