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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 Jan 10. 2022

나는 전생에 나라를 팔았습니다

순한 아이, 둔한 아이, 예민한 아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아이들이 있다. 순한 아이, 둔한 아이, 예민한 아이가 그것이다.

 

순한 기질의 아이는 전체의 6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 부류의 아이들은, 소위 부모 말을 잘 듣는 아이, 키우기 쉬운 아이, 철든 아이, 올된 아이로 평가받는다. 잘 놀고, 잘 웃으며,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또한 순한 기질의 아이들은 타협하고 수용하는 방법을 아는 편이다. 양보하고 나눌 줄 알며 또래와 잘 어울린다. 부모와의 갈등도 적고 달래기 쉽다. 자연히 집에서 큰소리가 날 일이 거의 없다.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노력할 줄 아는 것도 순한 아이들이 갖는 특징 중 하나다.

때문에 순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나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말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순하면, 열 명도 키우겠다!"   


실제로 첫째가 순할 경우, 부모가 둘째, 셋째를 계획할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순한 아이를 둔 부모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분들이다!

 

둔한 아이들은 매우 느리다. 이 부류의 아이들은 '느리다' 외에, 답답하다, 느긋하다, 우유부단하다, 멍하다, 둔하다, 무디다, 칠칠하지 못하다, 멍청하다 등의 서술어로 표현다. 어떤 일을 시작하고 마무리하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필요한 타입이어서, 부모로 하여금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하게 만든다. 실제로 둔한 아이들은 느리고 둔함 때문에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나무늘보 같다고 할까.  


"아휴, 속 터져! 그렇게 느려서 어쩌려고 그러니!"  


아이에게 이와 같은 말을 자주 쓴다면, 자녀의 기질이 둔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둔한 아이들은 '둔하기' 때문에 부모의 비난을 듣고도 대체로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즉, 반항적이고 공격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둔한 아이를 둔 부모는, 전생에 나라를 구하진 못했더라도, 나라를 구하는 분들 주변에서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었던 분들이다!

 

예민한 아이들 무척 까다롭고 신경질적이다. 충동적이고 부정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호불호가 분명하고 고집이 세고 때로 강박적인 면도 보인다. 생각이 유연하지 못해 최선 외에 차선이 있다는 걸 모른다. 알지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이 부류의 아이들은 감각까지 예민한 경우가 많다. 새로운 음식에 대해 거부반응이 심하고, 옷에 붙은 상표 때문에 양말 안쪽의 실밥 때문에 짜증을 내기도 한다. 자주 울고 자주 깨며, 한겨울에도 양말 없이 슬리퍼 차림으로 돌아다닌다. 

레고 블록 하나를 잃어버리면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난리를 피우다가도, 어찌어찌 다시 블록을 찾으면 180도 다른 얼굴을 한 채 방금 전까지 자신이 보였던 행동에 대해 반성하는 포즈를 취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얼마 뒤 다시 다른 블록이 없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 이 같은 일이 자주 반복되다 보니, 예민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양육 자신감이 바닥인 경우가 많다.  


예민한 아이들은 대체로 불안이 높다. 높은 불안감 때문에 까다롭고 신경질적이고 충동적이고 고집스럽고 강박적이고 변덕이 심하고 산만하고 부정적이고 지기 싫어하고 과잉행동을 한다. 이런 기질적 특징은 주변 사람들과의 잦은 갈등으로 이어진다. 과장을 좀 보태면 집이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다. 

그런데 정작 본인들은 자신이 예민하다는 걸, '갑분싸'라는 걸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화를 내는 것은, 네가 먼저 화를 냈기 때문이요, 네가 어떤 식으로든 도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의도가 담기지 않은 말과 표정에서도 가시를 찾는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는 부류가 바로 예민한 아이들이다.   

예민한 아이를 둔 부모는 야단도 친절하게 쳐야 한다. 때문에 속이 터질 수밖에 없다. 화가 나고, 우울하고, 미치겠는 복잡한 마음들은 자연히 화병, 우울증으로 발전한다.  


그러므로 예민한 아이를 둔 부모는 전생에 나라를 판 사람들이다! 그게 바로, 나다! 나라는 왜 팔아가지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나는 왜 전생에 나라를 팔았을까?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렇게 상상하는 것이다. 적어도 부를 위해 나라를 팔지 않았기를, 좀더 근사한 이유-사랑 같은-가 있었기를! 아이도 잘 못 키우는데, 상상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래야 우울함에 함몰되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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