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미운오리 Dec 23. 2024

관계맺음에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노인경 <곰씨의 의자>

<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 <책청소부 소소>, <기차와 물고기>, <고슴도치 X>그리고 <곰씨의 의자>, 아이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기에 정말 좋은 책들입니다. 특히 <곰씨의 의자>는 꿈오리의 모습을 보는듯하여 출간될 당시부터 공감하며 읽었던 책입니다. 그래서 한 도서관 한 책 읽기 '저자간담회'에도 참석하여 노인경 작가님을 만났다지요.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처음처럼 신나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깊어지는 관계 속에서 간혹 '싫어'라는 말도,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라는 말도 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 볼 기회가 없었고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저는 어렵습니다. _노인경

'작가의 말' 중~

     

오랜만에 다시 꺼내 읽어 보는 <곰씨의 의자>, 그때도 지금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그때처럼 "깊어지는 관계 속에서 간혹 '싫어'라는 말도,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라는 말도 해야 할 때가 있지만, 해볼 기회가 없고 그래서 지금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저는 어렵습니다."라는 작가님의 말은 여전히 마음에 콕 와서 박힙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신경이 쓰여서, 괜찮지 않음에도 괜찮다고 말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조차도,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차마 하지 못하고, 때로는 일어나지도 않을 상황까지 생각하고 고민하며, 그저 꾹꾹 눌러 담고 참아내던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더 이상 상처받는 것이 싫어서 관계를 끊어내고야 말았는데요. 가끔은 차라리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관계를 단절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곰씨처럼 말이죠.


    


곰씨는 시집을 읽고, 차를 마시며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곰씨의 모습이 무척이나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입니다. 어느 날 낯선 토끼가 곰씨 앞에 나타납니다. 커다란 배낭을 멘 그는 세계를 여행하는 탐험가라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왠지 지쳐 보이기도 합니다. 곰씨는 잠시 쉬어가라며 의자를 내어줍니다. 탐험가 토끼는 자신이 겪은 모험담을 들려주고, 곰씨는 토끼의 말에 빠져듭니다.

     

그때 둘 앞으로 무척이나 슬퍼 보이는 무용가 토끼가 나타납니다. 탐험가 토끼가 다가가 위로를 하고, 둘은 특별한 사이가 됩니다. 두 토끼는 결혼을 하고 숲속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곰씨는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곰씨는 자신이 힘들어질 줄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토끼 부부의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아이들이 또 태어나고 또 태어나고 또 태어나고...., 그러는 동안 곰씨는 차를 즐기는 것도 음악을 감상하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어려워졌습니다. 토끼 가족은 매일 곰씨를 찾아왔고, 모두가 즐거워보였습니다. 하지만 곰씨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곰씨는 토끼들에게 무언가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꾹꾹 눌러 담고 참아내기에는 좀 힘들었으니까요. 주저리주저리 이런 저런 말을 길게도 늘어놓았지만,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어쩌면 토끼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신경이 쓰여서일지도, 어쩌면 일어나지도 않을 상황까지 떠올리며 고민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도 이대로 있을 순 없었습니다. 차마 말은 하지 못했지만, 무언가 해야만 했습니다. 예전처럼 시를 읽으며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곰씨는 그 시간을, 그 공간을 지키려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토끼들은 곰씨의 의도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럴수록 곰씨는 점점 더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고, 더 이상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절망한 곰씨는 쓰러지고야 맙니다.


  


상대방의 기분이나 감정을 헤아리느라, 내 기분이나 감정을 무시(?)하며 살고 있지는 않나요? 솔직함을 가장한 말로 '나'의 감정을 무시하는 이들에게 상처를 입으면서도, 꾹꾹 눌러 담아내며 참고 있지는 않나요? 더 이상 어쩔 수 없음에 끝내 관계를 끊어내어 버리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나요? 혼자서 끙끙 앓고 있던 곰씨는 쓰러지고 난 뒤에야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지키면서도 토끼들과 더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6년이 지나 다시 읽어본 <곰씨의 의자>, 어쩌면 토끼들은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곰씨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모든 이들이 곰씨처럼 친절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며 공감하고 배려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괜찮지 않을 땐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