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어낸 듯 평범한 아파트를 우리만의 행복한 집으로 만들다
아파트를 계약하고 난 뒤, 작고 오래된 집을 사는 대신 깔끔하게 집을 고쳐서 이사 가겠다고 했던 아내와의 약속을 지킬 때가 되었습니다.
세상엔 예쁜 집이 많습니다.
계약서를 쓰고 난 이후, 우리는 티비에서 구해줘 홈즈를 보고 유튜브에서 오늘의 집과 집 꾸미기 채널을 봤습니다. 세상엔 예쁜 집이 왜 이리 많을까요. 어떤 집은 라운지같이 고급스럽고, 어떤 집은 초록색 노란색 장식이 화려해서 미술관을 보는 것 같습니다. 내가 만약 저런 집에 산다면... 이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고급스러운 라운지 같은 집 거실에 앉아 육개장 컵라면을 먹는 모습. 초록색 노란색 화려한 집 침실에서 흰 티에 아디다스 추리닝을 입고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고 있는 모습. 아무리 집이 멋져도 우리와 안 어울리면 남의 집에 얹혀사는 느낌일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와 어울리는 집과 분위기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다 어느 날 아내는 말했습니다.
정했어. 우리 집은 화이트, 심플함이 컨셉이야.
하얀색을 주로 사용해서 작은 집이지만 넓어 보이는 느낌을 주고, 꼭 필요한 가구와 가전만 배치하는 심플한 집을 만들기로 합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원하는 분위기의 인테리어 사진들을 스크랩했고, 아내의 휴대폰에는 깔끔한 분위기의 아파트 사진이 쌓여갔습니다.
우리도 이쁜 집에서 살 수 있을까요.
집을 산 순간, 우리는 도화지가 생겼습니다. 집주인이니 부수고 새로 지어도, 싱크대 위치를 바꿔도, 화장실 타일을 바꿔도 이제는 눈치를 안 봐도 됩니다. 우리 삶에 맞춰 꾸미기만 하면 됩니다. 외관은 작고 오래됐지만 내부는 쓰기 편하게 멋지게 꾸밀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돈이 문제입니다. 이쁘게 꾸미려면 누군가는 디자인을 해야 하고, 자재의 질이 올라가고, 시공자의 손길이 한 번이라도 더 들어가겠지요. 비용이 얼마가 들지, 공사가 가능은 한지 일단 인테리어 업체에 물어보기로 합니다. 인스타그램에서 화려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는 크고 유명한 업체들을 찾아보고 그중 맘에 드는 곳에 연락을 했습니다.
'아, 저희는 20평대 이상만 공사를 합니다.'
'작은 평수 하시려면 4월은 지나셔야 해요..'
12월에 잔금을 치르고 공사를 해야 하는 우리에게 작은 집은 공사를 하지 않거나 몇 달을 더 기다리라는 거절 아닌 거절을 했습니다. 작은 집을 고치면 마진이 많이 남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우리도 예쁜 우리 집을 만들 수 있을까요.
우리는 반 셀프 인테리어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동네에 있는 인테리어 업체들을 찾아갔습니다. 다행히 작은 집이어도 공사를 해주시고 원하는 일정도 맞춰주신다고 합니다. 공사했던 샘플을 보여달라고 말씀드리고 함께 앉아 사진들을 봤습니다. 깔끔하게 공사를 해주시는 것도 좋고, 제시한 비용도 나쁘진 않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찾아봤던 예쁘고 멋진 집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현실과 타협하기엔 우리의 눈이 너무 높아져버렸습니다.
아내는 셀프 인테리어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유명한 셀인(셀프 인테리어) 카페를 둘러보다 보니, 꽤나 많은 사람들이 직접 디자인부터 각 시공자들을 고용해 관리 감독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직접 인테리어 업체의 역할을 하는 만큼 많은 돈을 아끼고, 원하는 대로 집을 멋지게 꾸민 성공 사례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셀프 인테리어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내와 둘 다 회사를 다녀서 셀프 인테리어에 들일 시간도 기운도 부족했고, 카페 글에서 작업자들과의 마찰이나 하자 보수에 대한 문제로 다투는 사례도 많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민했습니다. 디자인이나 원하는 인테리어 정보들을 업체에 디테일하게 전달해주고, 시공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를 찾아가 손을 빌려 일을 하면 어떨까요. 셀프 인테리어보다 돈은 조금 더 들어도 유명한 업체보다는 돈을 적게 들이고 집을 고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내의 머릿속엔 원하는 디자인이 딱 정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고 오래된 우리 집도 꾸미기 나름입니다.
시공을 전문으로 하는 동네의 인테리어 업체들과의 미팅 자리에서 우리가 원하는 디자인을 말씀드리면 대부분의 사장님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차피 작은 집이고 아기 낳으면 이사 갈 텐데
저렴하게, 평범하게 고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작은 집은 꾸며도 티가 잘 안 나고, 그 돈 모아서 나중에 큰 집으로 이사 갈 때 보태는 게 어떠겠냐고 하십니다. 사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작은 집이고 언젠가 이사를 갈 텐데 적당히 오래된 곳 보수만 하고 살아도 됩니다.
하지만 조금의 돈과 시간을 더 들여서 집의 분위기가 확 달라질 수 있다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왔을 때 예쁜 우리 집을 보고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면, 주말에 거실에 앉아 햇볕을 맞으며 홈 카페를 즐길 수 있다면 인테리어를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작고 오래된 우리 집도 꾸미면 멋진 집으로 변할 수 있는데, 꾸미려는 시도를 안 해서 집의 역할을 100퍼센트 다하지 못한 게 아니었을까요.
아파트를 처음 지을 때 같은 호수, 같은 평형은 찍어낸 듯 똑같이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게 어떻게 다 똑같을까요. 결국 우리는 우리의 생활 패턴에 맞게 아내의 디자인으로 집을 고치기로 결정했고, 우리만의 작고 오래된 그리고 행복한 우리 집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