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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범생 Aug 29. 2021

누군가가 그랬지 자동차는 용기로 사는 거라고

가끔은 겪어봐야 후회하고 돌아보는게 있다

어쩌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어떻게 사는지, 연애는 잘하고 있는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어떤지 근황을 나눴습니다. 그러다 친구 두 명이 첫 차를 샀다고 자랑을 합니다. 우연인지 둘 다 쏘나타 신차를 샀답니다. 2년 전, 첫 차를 사고 느꼈던 설렘, 뿌듯함을 떠올리며 축하를 전했습니다.


근황 이야기는 자동차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신차로 산 쏘나타가 어떤 점이 좋은지, 어떤 점이 아쉬운지. 굳이 신차를 안 사고 중고차를 살 걸 그랬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같은 돈으로 살 수 있었던 중고 그랜저나 중고 제네시스 G70을 말하며 아쉽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다 K3 신차를 2년째 타고 있는 제게 친구들이 물었습니다.

“너는 다른 차 살 걸 아쉬웠던 적 없어? 다시 산다면 뭐 사고 싶어?”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큰 고민은 안 해봤는데. 지금 차가 작긴 하지. 그냥 그냥 무난해. 아쉽긴 하지 뭐.”

하지만 마음속으로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근데,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자동차를 안 샀을 것 같아.’


SONATA - 현대자동차 카탈로그


운전석에 앉아보니 '내 차'가 가지고 싶었다

자동차에 대한 로망은 언제부터였을까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제가 처음으로 차를 가지고 싶었던 때는 아마 ‘우리는 챔피언’이라는 미니카 만화를 볼 때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멋진 외관에 네 바퀴로 빠르게 달리는 미니카를 보면서 언젠가 나도 진짜 자동차를 가져야지 생각했던 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만화] 우리는 챔피언


그렇게 시간이 지나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친구들이 하나둘씩 면허를 따는 걸 보면서 내 차도 없으면서 1종 보통 면허를 땄습니다.

 

운전석에 앉아 보는 시야는 이전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전에는 아빠 차 뒷좌석에 앉아 옆 창문을 통해 도로 옆 가로수와 멀리 있는 풍경들을 구경했습니다.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도 뒤에 앉아 인도를 지나는 사람들, 길가 가게들을 구경하며 도로를 지났습니다.

운전을 하게 되면서 도로 앞을 바라보게 된 지금, 눈에 들어오는 건 풍경이 아닌 수많은 자동차 뒷모습입니다. 자연스럽게 자동차에 대한 욕심이 커집니다. 눈에 띄게 멋진 자동차들을 보며, 디자인이 내 스타일인 자동차의 꽁무니를 따라 운전을 하다 보면서.


그러다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나도 엄마 차나 렌터카 운전이 아닌 '내 차'를 운전하고 싶다는 생각을요.


운전석에 앉으면 뒷좌석과는 다른 시야가 펼쳐진다. @픽사 베이


20대에 차가 필요한 이유는 솔직히 없다

자동차가 한두 푼도 아니고,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게 바로 명분이 아닐까요. 모두가 그랬듯이 저도 왜 자동차가 필요한지 이유를 찾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는 출퇴근 핑계를 댔습니다. 자동차가 있으면 출퇴근이 더 가까워지고, 버스도 지하철도 안타도 되고, 회사에서 야근을 해도, 퇴근 셔틀버스가 끊겨도 집에 편하게 올 수 있다는 이유를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는 주말마다 여자 친구(현재는 아내)와 지금보다 더 많은 곳을 놀러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든 바다도 보러 갈 수 있고, 에버랜드나 민속촌 같이 대중교통 타고 가기엔 약간 먼 데이트 장소도 편하게 갈 수 있지요. 인스타그램에 자주 보이는 경기도 곳곳에 숨겨진 예쁜 카페들도 쉽게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는 부모님을 내 차로 모시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동안은 부모님이 운전해주시는 차를 타고 놀러 가고,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로 저를 데려다주셨다면, 이제는 내 차로 부모님을 가고 싶으신 곳으로 운전해드리면 얼마나 멋질까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 차가 생기면 그냥 멋질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주변에 차를 가진 친구들이 많이 없을 때 내 차가 생겨서 친구들을 태우고 놀러 간다면 괜히 으쓱해질 것 같았습니다.


20대에 첫 차를 사려고 계획했던 분들 모두 비슷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업무상 필요한 이유가 아니라면, 자동차로 돈을 버는 분들이 아니라면 저랑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들을 떠올렸을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보면 전부 다 아무것도 아닌 이유들입니다.


누군가가 그랬지 자동차는 용기로 사는 거라고

아무것도 아닌 이유들과 핑계들로 무장하고 내 차를 사기로 합니다.

수많은 자동차 리뷰들과 쏘카를 이용한 시승, 그리고 통장 잔고들을 고려해서 차종을 미리 머릿속에 정했습니다.

'K3'

K3  @네이버 자동차 2020 K3

차량 동호회 카페들에 가입하고 둘러보면서 보통은 딜러에게 어느 정도의 서비스를 받는지, 왜 직영점이 아닌 대리점으로 가야 하는지 공부했습니다.

일 년 중 어느 때가 차를 사기 가장 좋은 지도 알아봤습니다. 연말, '코리아 세일 페스타'라는 국내 버전의 블랙프라이데이를 할 때 3년 무이자 할부에 60만 원을 할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날을 정해서 집 근처 기아차 대리점으로 향했습니다.

차종도 정해놨고, 조건도 미리 알고 있으니 어느 정도의 서비스를 챙겨주실 건지 여쭤봅니다. 카페에서 들었던 조건과 거의 비슷합니다. 이제 제가 낼 돈을 알려드릴 차례가 옵니다.

"선수금은 얼마나 하실 건가요?"

딜러 아저씨가 제게 물어봅니다.


사실 여윳돈은 많지 않았습니다. 입사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을 때였기도 하고, 결혼을 준비하던 때라 돈 나갈 일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예비신부였던 아내가 보태준 돈으로 선수금을 하려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머뭇거리던 저를 보던 딜러 아저씨는 이런 젊은 친구들은 자주 보셨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선수금 조금 넣어도 어차피 3년 무이자 할부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이런저런 제 정보들을 이용해서 조회를 하시더니,

"어휴, 할부 충분히 다 나오시네 걱정 마세요."라고 흔들리던 마음을 잡아주십니다.


3일 정도 지난 뒤, 틴팅 업체 2층에서 딜러 아저씨가 사주신 커피를 마시며 차량 인수증에 사인을 했습니다.

20대의 사회초년생, 적은 선수금에 36개월 무이자 할부. 딜러 아저씨가 보시기엔 초보 운전자, 젊은 카푸어 친구였을까요. '연비를 아끼려면 트렁크에 많이 싣고 다니지 말아라, 연비를 위해 주유할 때 가득 채우고 다니지 말아라, 문콕 방지 스펀지는 떼지 않고 다녀도 괜찮다.' 등의 조언을 한 시간 넘게 듣고 차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꽤나 지나 며칠 전인 8월 25일, 21번째 할부금을 납입했습니다.

월급의 꽤나 많은 부분이 자동차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15번 더 남았습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자동차는 용기로 사는 거라고.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용기는 한순간이었고 흔적은 36개월 동안 통장에 남아 있다


자동차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처음에 자동차를 사려고 마음먹었던(핑계를 댔던) 이유들을 지금은 잘 실천하고 있을까요?

왜 핑계였는지 겪어보니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내 차가 생기고 무엇을 얻었을까요? 뿌듯함, 안정감, 편리함을 얻은 것 같습니다. 길 위에서도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아내와 이곳저곳 마음 편히 놀러 갈 수 있는 이동의 자유도 누릴 수 있었고, 캠핑이라는 취미도 가질 수 있게 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내 차가 생기고 무엇을 잃었을까요? 당연하게도 통장엔 족쇄가 채워졌습니다. 매달 할부금을 내고, 1년에 한 번 자동차 보험료를 내고, 연초에는 자동차세를 내고, 내 차의 바퀴가 굴러갈 때마다 기름값을 냅니다. 주행거리마다 돈이 나가는 건 기름값뿐만이 아닙니다. 10000여 km를 주행할 때마다 엔진오일을 갈아야 하고, 누적 주행거리가 40000 km를 넘어갈 때부터는 타이어 교체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어디를 이동하면 주차장을 찾아봐야 하고, 특히나 서울로 운전해서 들어가면 주차비도 부담이 됩니다. 추가로 내 차가 생기면 집을 구할 때 주차장 유무가 중요한 선택 요소가 됩니다. 사회초년생 때 회사 근처에 구하는 원룸도 주차가 되는 집을 찾아 조금 더 비싼 월세를 감당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좁은 주차장에서 생기는 문콕 자국과 속상한 마음은 덤입니다.


문제는 직접 차를 몰아보기 전까지, 내 차를 가져보기 전까지 차가 나에게서 가져가는 것들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월 할부금, 기름값 정도만 생각하겠지요. 저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먼저 차를 산 선배들의 말과 부모님의 걱정들은 다 괜찮다는 한마디로 넘겨버렸습니다.


가끔은 겪어봐야 후회하고 돌아보는 게 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차를 안 샀을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과연 그때로 돌아간다면 차를 안 샀을까요. 누군가가 나를 위해 만류하는 말들을, 조언하는 말들을 잔소리로 치부하고 넘어갈 때가 많은걸 자주 느낍니다.


자동차를 다시 팔려고 알아본 적이 있습니다. 요새는 '헤이 딜러' 같은 어플로 쉽게 조회가 가능하더군요. 막상 차를 팔려고 하니 일이 커집니다. 캠핑을 가려고 사뒀던 장비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그동안 애지중지 관리했던 자동차를 몇 백만 원 이상의 손해를 보고 파는 게 맞는 건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듭니다. 그러다 결국 못 팔았습니다. 장기적으로 차를 파는 게 제게 이득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습니다.


비데 있는 화장실에서 없는 화장실을 사용할 때의 불편함처럼, 신발을 신고 다니다 맨발로 길을 걸을 때의 두려움처럼, 내 차를 팔고 뚜벅이로 돌아간다는 결정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얘기했습니다. 다음번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될 때 예산이 빠듯하다면 그때 처분 1호 대상은 자동차라고. 항상 준비하고 다짐합니다.


얼마 전, 기특하게도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한 처남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주제는 첫 차. 후회했던 경험을 살려 차를 사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저축이 먼저고 집을 차보다 먼저 사야 한다고 다른 사람들이 제게 했던 조언들을 전달해줍니다.


아마도 한두 달 뒤면 다시 차에 대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겠지요. 그 고비를 못 넘기고 차를 산다면 똑같이 생각할 겁니다.


가끔은 겪어봐야 후회하고 돌아보는 게 있다는 걸요.


20대에 차가 필요한 이유는 솔직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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