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과 숙연함

by 고봉주

매년 연말이 되면 이러저러한 이유로 몇 군데 병원 순례를 한다. 건강검진도 있고, 그 외에 개인적인 이유로 안과와 치과는 매년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병원 검진은 연말에 몰리기 일쑤다. 나도 결국 미루고 미루다가 연말 즈음에 검진 예약을 잡게 되니까, 왜 사람들은 미리미리 검진을 안 받고 연말에 몰리느냐, 고 탓할 바는 못된다.


그나마 개인적으로 조금 나아진 점은, 12월은 정말 무슨 변수가 생길지 몰라서(내 일정과 병원이 가능한 날짜가 도저히 맞지 않는다든가, 예약 없이 갔다가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든가, 갑자기 연말 병원 휴가 일정이 겹치면서 정말 물리적으로 예약이 불가능해져 12월 31일 안으로 올해의 검진을 받을 수가 없다든가, 변수는 말 그대로 예상을 벗어나서 생긴다), 늦어도 11월에는 검진예약을 한다.


그리하여, 올해도 어김없이 11월 초에 병원마다 전화를 돌려서 예약을 잡았다. 통상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으로 예약이 되는 시스템처럼 해놓은 경우가 많으나, 홈페이지 개발 및 관리 업체와 고객사(병원) 간의 이러저러한 계약상 디테일의 사유로 홈페이지상 예약은 확정적이지 않은 경우가 꽤 많다. 반드시 유선으로 예약을 확인하거나, 처음부터 유선으로 예약을 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


역시 11월이라서 벌써 내가 원하는 날짜는 모두 안되고 2 지망 날짜들로 예약을 했다. 그래도 가급적 병원검진 주간을 만들 듯, 한 주에 예약을 몰아서 동선과 시간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데, 검진주간의 더 중요한 포인트는 검진결과로 받는 충격(?)도 몰아서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처음, 검진 결과가 예상보다(즉, 주관적 기준이고 객관적 기준이 아니다) 안 좋았을 때 솔직히 이해를 못 했었다. 아니 왜??? 평소 나의 음주와 흡연에 대한 태도를 고려하건대, 거기다가 나는 운동이라는 유익한 요소도 있는데 아니 왜?? 라면서 억울한 느낌마저 받았었다.


불과 몇 년 전 얘기지만, 돌이켜보니 정말 인간의 신체에 대한 이해가 일차원적이었던 것이다. 말인즉슨, 예를 들어 기계도 몇십 년을 돌리면 녹이 슬고 고장 나서 부품을 교체하거나 수리를 해야 하는데, 하물며 인간의 몸이라고 어떻게 태어난 그 상태 그대로 한결같겠느냐, 는 나름의 깨달음을 터득(?) 한 것이다. 즉, 불가능한 가정이지만, 이를테면 평생을 좋은 음식만 먹고 성실하게 운동하면서 살았어도 세월의 흐름 자체로 인간의 몸도 낡아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랄까.


그래서 이제는 건강검진 결과에 대해 그렇게까지 맘이 요동치고 감정이 고저를 오가면서 걱정이 솟구치진 않는다. 설령 진짜 내 예상 밖의 결과가 있어도, 솔직히 감정이 쫙 가라앉는 것만은 어찌할 수 없으나, 담담하게 설명을 듣고 이에 대한 원인(주로 내가 묻는다..), 객관적 전망, 진료 계획 등을 가만히 듣는다.


그리하여 매년 연말마다 맞이하는 건강검진 주간이 끝나면 저절로 숙연해진다. 올해는 심지어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매년 한 번씩 몸과 건강에 대해 강제로 숙연해지는 계기를 갖는 게 오히려 마음 건강에는 좋은 것 같다는.


덕분에 일 년 동안 내 몸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운동은 얼마나 성실했거나 또는 게을렀는지, 그래서 내년엔 이렇게 해야겠다는 마음이라도 한 번 먹게 만드는, 이게 그 숙연함의 가장 중요한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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