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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호 림 Jul 01. 2023

소비요정과 짠순이가 걷는 길은 다르더라도

2만원 가량의 리코타치즈 샐러드를 먹으며 깨달은 것

“네가 행복하면 됐어.”


효가 답했다. 퇴근길, 여기서 지금 효와 먹고 있는 리코타치즈 샐러드와 뜨끈한 커피 한 잔을 먹고 집으로 가는 게 남들의 퇴근 후 맥주 한 캔과 같다고 말하던 참이었다. 우리는 회사 근처 카페에서 브런치로 더 어울리는 저녁을 먹고 있었다.


“뜨거운 커피에 리코타치즈가 녹아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 하루의 피로도 함께 녹아 내려가는 것 같거든.”


거의 루틴처럼 주 3일을 이곳으로 퇴근한다는 나의 말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효를 보고 반사적으로 변명이 튀어나왔다. 효의 표정과 나의 변명에는 이유가 있다.


효와 나는 같은 해, 같은 날, 같은 지역에서 태어났다. 무늬 상 어른이 되어 우린 대학에서 처음 만났다. 같은 학과였고, 운명인지 우연인지 같은 기숙사로 배정받았다. 그 후 우리는 3년을 같이 살며 삶을 공유했다. 효와 나는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성격, 가치관, 취향 등에서도 비슷한 구석이 참 많았다. 그중 함께 살며 비슷해진 것도 있다. 그런 우리가 양극단에 있었던 것 있었으니, 바로 ‘돈’이다. 아직은 사회의 쓴맛을 경험하지 못한 어른 새내기라, ‘소비’에 대한 각자의 생각은 너무나도 개성 졌다.


나는 지당돈파다. ‘지금 당장 돈 쓰고 행복하기 파.’ 그렇다고 흥청망청 쓰는 과소비를 생각하면 조금 억울하다. 열리는 지갑에는 다 이유가 있었고, 나간 돈의 곱만큼 소비의 순간은 합리적이었다 믿으니깐. 나는 과일을 좋아한다. 매일 아침 과일을 잔뜩 넣은 오트밀이나 요거트를 먹는다. 과일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가면 매대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어쩜 딸기 하나도 어떤 이름인지, 누가 키웠는지, 어디서 자랐는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일까. 양 많고 저렴한 이걸 살까? 개수도 조금 적고 몇천 원 더 비싸지만 싱싱한 저걸 살까. 저울질이 머쓱하게도, 나는 늘 후자를 택한다. 양이 많으면 끝엔 물러터진 딸기를 먹게 될 것이니. 이미 양 많고 싼 친구들은 몇 알은 흐물흐물 일보 직전이다. 포장된 마트 과일 양이 어마해 맘에 들지 않을 땐, 소포장이 많은 백화점으로 간다. 그렇다. 나는 지출 선택의 순간이 오면, 돈을 조금 더 주고서라도 지금 당장의 삶의 질을 1도 올리는 쪽이다.


효는 일돈모파다. ‘일단 돈 모으고 행복하기 파.’ 효는 소비와 저축에 다 계획이 있었다. 그렇다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포기했다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이다. 양보할 수 있는 쪽은 그렇게 했다는 것이 더 맞다. 효는 알뜰하다. 효를 따라다니면 저렴하게 줍줍할 수 있는 게 참 많았다. 효도 과일을 좋아했다. 기숙사로 돌아오는 효의 손에 들린 과일은 항상 한 사발이었다.


“시장 과일가게에서 사과를 싼값에 이만큼이나 팔더라고.” “마트 문 닫을 때 가면 득템할 수 있지.”


그렇다. 효는 전략적인 지출가였다. 효의 마음속엔 지출의 중요도를 매긴 메뉴판이 있었고, 효는 그 메뉴판에 따라 얼마를 투자할 것인가 선택했다. 효는 훗날의 삶의 질을 1도씩 쌓는 쪽이었다.


한 번도 부끄럽지 않던 나의 소비와 가치관이, 효와 함께하는 해가 쌓일수록 흐무러졌다. 효는 부동산학과를 복수 전공으로 선택하는 등 건설적인 미래 설계를 이어갔고, 나는 주에 한 번씩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탕진 서울 여행)을 떠나는 등 현재의 만족을 쫓았다. 분명 돈 쓸 당시에는 행복했는데, 기숙사로 돌아와 효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쓴 것을 숨기기 급급했다. 비교로 시작해, 자책으로 끝났다. 효보다 용돈도 많이 받으면서, 늘 텅장인 내가 한심했다. 그 마음은 ‘효도 나를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로 귀결됐다. 부끄럽지만 그런 마음이 들 때, 지금의 내가 더 행복하다고 괜한 질투도 했었다. 한편 존경도 했기에, ‘나도 효처럼 살아야지!’ 조금 덜 사고 절약한 적도 있다. 불편한 마음에 시작한 챌린지였는데, 오히려 우울함과 불행이 심해졌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소비 인간인가, 이렇게 한심한 하루살이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 슬퍼질 때쯤, 효에게서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효는 부모님을 ‘구두쇠’라고 소개했다. 효 부모님의 근검절약은 효의 상위 버전이었다. 세탁소를 하시는 효의 부모님은 우리 가족이 심심해 마트에 가듯, 부동산에 가서 이땅 저땅을 보신다 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후, 나는 효의 부모님을 머릿속에 저축왕, 절약왕으로 저장했다. 효의 부모님은 돈을 모으고 굴리는 대부분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그건 효의 부모님에게 즐거움이었다.


반면, 우리 엄마는 “나 이거 사고 싶어” 하면 거의 사주는 쪽이었다. 엄마는 공무원으로 집안을 일으킨 할아버지 아래 자라다 대기업에 취직했다. 내가 버는 돈은 오직 용돈인 삶을 사다가, 같은 회사의 남자와 결혼해 주부로 이직했다. 토끼 같은 자식을 낳아 먹고 싶단 거 먹이고, 하고 싶단 거 해주고 모자라지 않게 길렀다. 지금도 서울살이를 하며 돈 걱정을 하는 나에게 엄마는 “돈은 필요할 때 신기하게도 척하고 생기더라. 그러니 써!”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특별히 모아둔 돈도, 재태크 경험도, 그 흔한 주식도 없다. 그런데도 엄마와 나는 행복한 하루를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


엄마가 나에게 20년간 몸소 보여준 돈 대하는 법과 효의 부모님이 효에게 알려준 돈 다루는 법이 이제 막 어른이 된 20대 초반의 우리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콩 아래 콩 나고, 팥 아래 팥 나듯. “엄마 나 이거 먹고 싶어” 하면 “안돼”는 들을지 몰라도, “네 돈으로 사 먹어”는 듣기 어려운 미성년자를 지났다. 우린 내 맘대로 지갑을 여닫는 어른이 되었다. 싫든 좋든, 주어진 기간과 범위 안에서 효와 나는 수십 년간 시나브로 배운 방식대로 쓰고 모으는 중이었다.


졸업하고, 돈을 벌어 쓰는 진짜 경제 활동인이 되어 우리는 다시 만났다. 어쩜 선택한 직장에도 각자의 색깔이 묻어있던지, 나는 휴대폰을 켜 잘 사용하는 앱의 회사(스타트업)에 지원해 출근하고 있었고, 효는 오랜 기간 드라마 미생을 연상시키는 치열한 준비와 경쟁 끝에 은행에서 일하고 있었다.


우리가 먹은 리코타치즈 샐러드와 커피 한잔은 2만 원이 조금 넘는다. 그간 모은 효 데이터로 생각하면, 이 조합은 효에게 가성비가 매우 나쁜 음식이리라. 그래서 효 앞에서 오늘의 소확행을 숨겼던 지난날의 나처럼 ‘피로’라는 그럴듯한 변명으로 자신을 방어했다. 올라올 감정으로부터. (정확히 정의할 수 없지만 부끄러움, 자기 환멸, 자격지심과 비슷한 감정)


하지만 진짜 방어는 효가 해줬다. “네가 행복하면 됐어”라는 한 마디에 몇 년간 삭혀 둔 뒤엉킨 감정이 튀어나와 치즈처럼 녹아내렸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돈을 썼고, 그 방식은 평행선을 그리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그리는 선은 만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각자의 선이 만나는 것은 같은 감정인 ‘행복’이라는 그 단순한 것을, 효가 샐러드를 먹으며 알려줬다.


내가 효처럼 살면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효는 나처럼 살면 괴로워할 것이고. 우리 엄마가 효의 부모님처럼 살면 힘들어할 것이며, 효의 부모님이 우리 엄마처럼 살면 불안해할 것이다.


나는 오늘도 퇴근길 뜨거운 커피로 리코타치즈를 녹이며, 스트레스와 피로를 함께 녹인다. 이전보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비워진 스트레스와 피로의 자리엔 만족과 행복이 차고, 그 채워진 새로운 에너지로 행복한 삶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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