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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Nov 20. 2022

나와 ESG(1)_나는 왜 이런 길로 빠져들게 되었을까

    이 글은 ESG나 환경, 노동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관심을 갖고, 행동을 시작하게 되었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글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가 나는 왜 이런 길로 빠져들게 되었나에 대해서 한 번 돌아보는 글이기도 하다. 이제 겨우 시작점에 있지만, 언젠가 내가 하려는 일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미래의 그 어느 때 다시 이 글을 보면서 무엇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는지 스스로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꽤 평범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에서도 선생님 말을 곧 잘 듣는 편이어서 특별히 혼나는 일도 없었고, 시키는 일은 열심히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대학도 평범하게 갔었고, 대학에서도 사회문제라든가 대외활동에 열심인 학생은 아니었다. 학문을 하기 위해 잠깐 대학원을 갈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냥 취직하기로 마음먹은 이후에는 잘 취업을 해서 지금까지 회사를 다녀오고 있다. 이렇게 평범하게 체제에 순응하며 살다가 어째서 ESG나 환경,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고 노조 활동을 하고, 환경 단체에 들어가서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하고 있을까. 


    회사에 취직하고서는 삶이 많이 편해졌다. 평일에 8 to 5로 9시간 정도만 일해도 대학 시절 맥도널드에서 밤샘 알바를 하는 것의 몇 배를 벌었고, 먹고 싶은 것이나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크게 구애받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적어도 혼자서 삶을 꾸려가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특별히 거창한 꿈이나 많은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주어진 일만 하면서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삶이 무척 감사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 보니 삶에 대한 공허함이 몰려왔다. 회사는 계속 그대로 흘러갈 것이고, 나는 그 안에서 수동적으로 일을 처리하면서 그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게 되었다. 22년 5월쯤 씽프로젝트라는 모임을 하게 되면서 스스로에 대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집중적으로 많이 하게 되었다. 내가 소망하는 바와 인생의 의미 같은 것 말이다. 결국 내가 도달한 곳은 여기저기 산적해 있는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해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기준에서 제일 급한 문제는 환경 문제나 노동 문제 같은 일들이었다. 

    

    환경이나 노동 문제에 대한 관심과 활동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걸 왜 ‘내’가 해야 하는가는 논리적인 설명이 어렵다. 혹시라도 환경이나 노동 문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문제들의 심각성에 대해 듣는다면 적어도 ‘아, 문제는 문제구나.’ 정도는 생각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들을 위해 내가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나라는 사람은 그냥 이런 문제들을 두고 보지 못하는 사람이니까’였다. 남들보다 조금 더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할까? 이게 문제인데, 그러면 이렇게 저렇게 한번 해보면 어떨까를 한번 더 생각하고, 모두가 조금씩만 노력하면 우리는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믿음. 그게 ‘나’라는 사람의 본질이고, 내가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환경이나 노동문제에 신경을 쓰면서 그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산다고 한들 엄청난 부귀영화가 따라오거나 권력이 생기는 일도 없을 것이다. 단지 나는 이게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고, 문제들을 보면 해결을 해야 하는 사람이며, 아무도 안 하는 일이면 내가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단순히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다. 


    결국 나를 이런 활동으로 이끈 것은 스스로의 내적인 동기라고 생각한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라는 생각 말이다. 나와 같은 방향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불편함이나 부당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그런 불편함과 부당함을 일단 문제로써 인식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 불편함과 부당함이 환경 문제와 노동 문제였다.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해결을 위해 하나씩이라도 행동을 하면 된다. 거창할 필요도, 그 해결을 위해서 삶을 갈아 넣을 필요도 없다. 할 수 있는 선에서 하나씩이라도 먼저 해나가면 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 역시 나의 삶을 지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고 있는 것일 뿐이다. 사회의 변화는 커다란 것이지만, 결국 모든 변화의 시작은 개개인의 변화에서 온다. 각 개인이 하는 일 하나하나가 모여서 사회의 변화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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